유신론과 무신론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어차피 대화도 되지 않을텐데 굳이 만날 필요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답한 목사가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폴 틸리히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각 입장의 대표격인 기독교와 철학에서 그 접점을 찾아낸다. 우리가 ‘존재’라는 토대 위에 서 있는 이상, 존재 해석의 두 갈림길의 만남은 필연적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그의 대학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도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오늘날 그 의미를 더해준다. 비록 그의 대표 저서인 『조직신학』의 개요에 불과한 분량이지만, 핵심 뼈대를 담고 있어 앞으로 그의 이론을 공부할 때 많은 참고가 될 듯 싶다.
1. 개요
폴 틸리히 (1886 – 1965)
- 1910년 브레슬라우 대학 철학 박사 학위
- 1912년 할레 대학 목회학 석사 학위, 같은 해 루터교회서 목사 안수
- 칼 바르트, 루돌프 불트만 등과 더불어 20세기 대표 개신교 신학자
- 주요 저서 : 『조직신학』, 『문화의 신학』, 『흔들리는 터전』, 『경계선 위에서』 등
책 내용
- 1951년 버지니아 대학 강연 확장한 버전 (1995년 출간)
- 책 내용, 조직신학과 저자 신학 사유에 매우 중요
- 저자 신학 작업시 철학 언어로 성서 형상 언어와 비판적 대조
- 비판자들 ‘신학에서 철학 용어 사용 자제’ 입장 펼치나 바람직하지 않고 불가능. 신학 자기기만, 낙후 낳음 확신
- 성서 상징들 존재론적 물음 유발, 답변 또한 필연적으로 존재론 요소 포함
2. 개념 정리
- 기독교에 ‘반드시’ 철학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 책
- 책 제목에 의미 담김. 『성서 종교와 궁극적 실재 탐구』를 거칠게 번역하면 ‘기독교와 신 탐구’
- 하지만 그럴 경우 전형적인 기독교 서적이 되어 저자 의도를 충실히 담을 수 없게 됨
- 따라서 양측의 중첩된 영역을 설명해 줄 개념이 필요했고, 아래 도식은 그에 대한 설명, 저자 주장 관통하는 뼈대

2.1. 성서 종교
- 기독교의 ‘성서’는 신으로부터 받은 ‘계시’, ‘종교’는 인간이 이를 자기 언어로 수용한 것 의미
- 즉, 신과 인간의 상호작용의 결과임을 분명히 함
- 인간의 수용 없는 순수 계시는 없기 때문
- 일방적인 신의 명령만 담겨 있는 ‘계시종교 (칼 바르트)’나, 인간 이성에만 기댄 ‘자연종교 (데이비드 흄)’와 구분
- 이러한 ‘인간의 수용 (신앙)’이란 측면에서
- ① 기성 기독교의 입장과는 분명한 차이를,
- ②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과는 필연적인 접점 갖게 됨
2.2. 존재론
- 철학 (philosophy) ‘지혜(sophia)에 대한 사랑(philos)’ 의미,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활동
- 본질적으로 모든 철학, 존재 물음에 대한 부분적 대답
- 존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존재 자체의 본질과 구조 밝혀내는 것
- 그 과정에서 모든 존재의 근거, 근본 원인 (궁극적 실재) 탐구할 수밖에 없음
- 칸트의 ‘신은 존재하는가’란 질문과, 아이의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어요’란 질문 형태 다르나 내용은 존재 본질 묻는 질문으로 동일
- 유한한 존재인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 물을 수밖에 없어 우리 모두는 본성적으로 철학자 (철학 피할 수 없음)
- 철학하는 이유 : 비존재를 극복한 존재 형식 열망 (비존재 : 인간 정복 못한 영역 – 분열, 죽음, 죄책감, 의심 등)
- 참고로 존재론, 애초 아리스토텔레스의 제1철학이었으나, ‘형이상학’으로 잘못 불리며 자연철학 뒤에 위치. 존재 너머 상상 영역으로 치부되는 문제 있음
2.3. 철학을 배제하려는 입장에 대한 비판
- 일부 신학자들이 종교, 철학 용어 비판하는 이유 – 인본주의 ‘신이 되려는 인간의 헛된 시도’
- 그러나 신본주의만 인정하려는 것은, ‘기독교 자체도 계시를 수용한 인간의 특수한 기록’임을 부정하는 태도
- 성서 종교 : 특정 시기, 환경, 인물, 문화적 배경 아래 자신의 종교 언어로 쓰여진 기록으로 보편적이나 일반적이지 않음 (이스라엘 특수한 배경, 인류 보편성 띌 수 있으나 모든 이 동일하게 경험하는 것 아니므로 일반적일 순 없음)
- 따라서
- ① 성서를 문자 그대로 수용 (제한된 형식을 신적인 것과 동일시) 하려는 근본주의적 태도 비판
- ② 계시를 통해 진리를 가졌기 때문에 철학이 불필요하다는 주장과도 거리 둠
- ③ 특히 일부 신학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진리나 계시라는 개념을 정의한 것이 철학의 공로인 점을 알지 못한 채 값싼 비난, 무시하는 행태 보이는 것 비판
- 그러나 갈등 해결 안보여 극단으로 치우치게 됨
- 성서 종교 : 존재론 물음 회피
- 철학 : 성서 종교 완전 거부
- 기독교와 근대 정신 위대한 종합 (슐라이어마허, 헤겔, 19세기 자유주의) 붕괴 후 무기력해졌으나,
- 제 3의 길 가능. 성서 종교의 태도, 개념은 존재론의 궁극적 실재 탐구, 종합 요구함. 다른 선택 있을 수 없어 재도전 필요
3. 성서 종교와 존재론의 차이점
- 저자 성서 종교만의 독특한 위치를 보편 종교, 존재론과 비교해 설명
3.1 성서 종교와 보편 종교와의 차이점
- 성서 종교 신, 계시 받은 공동체 무조건적 지지로 철저히 인격적 관계 형성 (인격 – 사물 관계 제거)
- 이를 통해 ① 인격적 관계의 의미와 ② 비인격과의 차이도 알게 됨
- 이러한 ‘자유로운 상호성’은 성서 종교의 비결정적, 역동성의 뿌리가 됨
3.2. 성서 종교와 존재론의 차이점
- 이후 책 전반에 걸쳐 존재론과의 차이 언급함
- 인격적 존재로부터 아가페적 사랑 경험한 인간, 충만한 기쁨 경험하나 시대, 상황 변화 따른 존재론적 해석 한계
(갖고 있으나 갖고 있지 않음) - 철학적 탐구 통해 깨달음 얻은 인간, 현상, 본질 일부 설명 가능하나 충만함 얻지 못함
(갖고 있지 않으나 갖고 있음)
- 인격적 존재로부터 아가페적 사랑 경험한 인간, 충만한 기쁨 경험하나 시대, 상황 변화 따른 존재론적 해석 한계

4. 성서 종교와 존재론의 유사점
- 앞서 객관적 측면 차이 설명 후, 주관적 측면에서 긍정적 관계 발견 이야기
4.1. ‘존재’, 보편적 탐구 대상
- 인간의 모든 답 필연적으로 존재론적
- 모든 사람, 존재와 비존재에 참여하는 상황에서 궁극적 실재 찾음 (인간 언제나 비존재 극복한 존재 형식 열망)
- ‘무엇이 진실로 궁극적인지’에 대한 관심, 존재론적 물음 품음
- 자기 존재, 의미 근거, 드러나는 상징들 속에서 실재 답 찾기 가능
- 존재 물음, 인간 상황 자체 표현하는 것으로 보편적으로 적절함
- 구원 물음, 필수적으로 존재론적 물음 품음
- 무엇 아는지 의심하는 것, 알고 있는 무언가 기초로만 의심 가능 (긍정 토대로만 부정 가능)
4.2. ‘구조적 유사성’, 서로 향해 자신 열게 함 (철학자도 신앙인)
- 신앙 : 궁극적 관심 사로잡힌 상태 (우리 삶의 궁극적 기원, 목적 탐구)
- 성서 신앙 : 하느님에 대한 사랑
- 철학 신앙 : 궁극적 실재에 대한 사랑
- 회심
- 존재론 : 무언가 깨달음, 종교적 회심으로 묘사 – 동굴 그림자에 얽매이지 않고 참된 실재 봄
- 성서 종교 : 계시 통해 눈 뜸. 인간 영 내 하느님 영이 계시로 현존해 이성 눈이 열려야 진리 수용 가능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과 철학자의 하느님은 같은 하느님입니다. p. 128
4.3. 궁극적 실재에 대한 열망, 갈등 포용 가능케 함
- 신앙, 존재에 대한 철저한 의심 전제하며, 긴장 관계 포용 (신앙 – 의심 모순 관계 아님)
- 신앙, 본성상 저항적으로 궁극적 실재 탐구 두려워 할 필요 없음
(초대 교회 당시 존재론의 궁극적 실재 수용, ‘복음의 헬라화’라 비판했으나, 존재에 대한 인류 보편적 질문임) - 부정, 불안, 의심에도 불구하고 긍정 이야기 가능케 됨
- 신앙, 본성상 저항적으로 궁극적 실재 탐구 두려워 할 필요 없음
- 가장 높은 곳 향한 열망 (아가페), 앎 향한 열망 (에로스) 포괄함
- ① 아가페 : 사랑 자체인 하느님 향한 열망
- 고대 후기 궁극적 실재 탐구, 사랑 일치 ‘그노시스 (지식, 성적 관계, 신비 연합)’로 표현
- 기독교 결정적 요소 더함 : 가장 낮은 곳 내려와 소외된 인간 용서, 가장 높은 곳과 재연합 이루게 함
- ② 에로스 : 진리 자체인 하느님 향한 열망 (성적 의미 아닌 플라톤 『향연』의 에로스 의미)
- ① 아가페 : 사랑 자체인 하느님 향한 열망
5. 성서 종교에 철학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 : 해석
(가장 중요한 부분이나 설명 불충분한 면 아쉬움)
- 존재론 묻는 철학 없었다면, 기독교 신학 ‘하느님 존재한다’ 의미, 존재 본성 해석 못했을 것
- 성서 인격주의, “하느님 존재한다” 경험 가능 = 존재, 존재론적 물음 불가피
- 사랑에도 존재론 필요. ‘참여, 개체화’ 존재론의 기본 범주 사용
- 신 자기 현현 세 상징 (창조, 그리스도, 종말) 존재론적 해석 요구, 수용 가능
- 성서 상징 의미 생각하는 순간 이미 존재론적 물음 품은 것
- 위대한 종교, 종교체험, 인격, 비인격 요소 긴장 깊이있게 묘사
- 신학, 존재론 통해 말 본성 파악해 신과 함께 있는 로고스, 말씀 본성에 대한 의미 가르침 가능
- 로고스 : ‘말씀’보다 ‘이성’, ‘현실 의미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 기독교 이 원리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남 고백 (신의 자기 현현)
- 신 궁극적인 자기 현현만 영원한 신성과 인성 보여줌
- 보편적 로고스 (구약 하느님) 배경 시에만 성육신 로고스 (신약 하느님인 그리스도) 의미있는 개념 됨
- 다만 성서 인격주의에도 주의 필요
- 신 현실에서 발견, 현실 틀에 묶는 일 (기독교 내에서도 문제되는 일)
- 그리스 종교 숙명, 제우스와 그 결단 결정 (신 자기 숙명 만드는 양극, 범주에 종속)
6.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에서는 인간이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오류 없는) 대상 찾기에 번번히 실패하는 여정을 다룬다. AI에 대한 의존이 심화되고 있는 흐름에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유대인인 그가 살펴 본 사례는 ’책의 종교‘라 불리는 ’유대교‘와 ’기독교‘였다. 이들 종교는 문서의 전승을 통해 구전의 한계를 성공적으로 극복했지만, 한계점도 명확했다.
먼저 성서 종교의 뿌리 (기독교의 《구약》) 인 유대교를 살펴보자. 필사를 통해 전승된 고대 성경은 발견 당시 완결된 것도 아니었고, 사본 간에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도 없었다. 더 큰 문제는 해석이었다. 별도의 개념 정의 없이 메시지만 있다보니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었다. ‘안식일에 일해서는 안된다‘는 명령에서 ‘일‘이 무엇인지가 대표적인 예다 (오늘날 독실한 유대교인들은 안식일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도 일에 속한다고 여겨 그들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모든 층에 멈추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이에 가장 지혜로우며 신뢰할만한 사람으로 꼽힌 랍비들이 모여 구약 성서를 해석한 《미시나》가 3세기에 정경화 되었고, 곧이어 이 책에 대한 해석 문제가 다시 불거져 5, 6세기에 《탈무드》로 정경화 된다. 이처럼 ‘오류가 없는 책’에 대한 신뢰는 늘 ‘해석하는 인간에 대한 신뢰’로 바뀌게 되었고, 이는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대교에서 《미시나》, 《탈무드》가 만들어지던 시점에, 기독교에서도 예수 사건 이후 복음서, 편지, 예언서, 비유, 기도서 등도 우후죽순 등장해 선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아타나시우스 주교가 서기 367년에 쓴 편지에서 ‘신앙심 깊은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27개 텍스트‘를 추천했고, 이후 히포 공의회(393년), 카르타고 공의회(397년)에서 주교, 신학자들이 모여 이 추천 목록을 정경화 해 《신약》이 완성 된다.
공인된 기관이 인정한 정경화의 효과는 매우 강력했다. ’해석할 수 있다고 가정된 주체‘인 교회의 힘이 갈수록 커지면서 이들은 성서의 본질을 벗어난 해석, 예를 들어 이단자를 화형시키는 것이 그들을 구원하는 사랑의 행위라는 해석으로 전쟁을 정당화 했고, 마녀 사냥이란 비극으로 얼룩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성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면 그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한편 신약 정경에서 제외된 문서 중 《바울과 테클라 행전》에서는 바울의 여제자인 테클라가 이적을 행하고,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 역할을 하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여성이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받기 전이었던 그 시기에 만약 해당 문서가 정경화에 성공했다면, 기독교의 가부장적 전통은 어떻게 변화될 수 있었을까? 공인된 문서의 효과란 것이 얼마나 큰지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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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책 속의 책 같은 설명이 되었는데, 이 내용을 덧붙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있는 무언가도 ‘유한한 인간’이라는 존재 토대 위에 세워진 것임을 늘 기억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잘 뒷받침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은 한편으로 우리를 맹목적인 믿음과 거리를 둘 수 있게 해주지만, 그만큼 인본주의적 혼란과 의심에 빠질 여지도 덩달아 안게 된다. 내 불안을 잠재워 줄 대상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약화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이 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계시를 직접 내려주는 게 아닌 이상, 우리는 늘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런 요소들이 양립 불가능한 게 아니라 서로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존재론적 한계야말로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자 삶을 추동하는 원동력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언제나 변화되는 현실에 발맞춰 ‘믿음의 탐구’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두뇌의 외주화로 존재의 영토가 급속히 줄어드는 오늘날, 많은 분들이 영적, 정신적으로 충만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길을 다양하게 찾아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 표지 이미지 출처 : Midjour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