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책의 저자는 배경이 조금 독특하다. 이스라엘에서 우연히 유대인 남편을 만나 세 딸을 키우고 있는 대만 여성의 육아일기이기 때문이다. 동양 엄마의 유대 문화 경험기라고 할 수 있을 그녀의 글은 육아로 인한 어려움과 극복 과정을 편안한 문체로 소개해주고 있었다.
기존에 소개해드렸던 유대인 관련 책들이 관찰 또는 대화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이 주였다면, (① 유대인 가정교육 방법, ② 유대인 교육의 4가지 가치관) 이번 책은 본토에서 유대인 가족의 일원이 되어 경험한, 조금 더 ‘찐한’ 삶의 이야기라고할 수 있다. 또한 내용 자체가 ‘교육’보다는 ‘육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7세 미만의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분들께는 매우 실질적인 안내서가 될 수 있을 듯 싶다.
1. 지식 전수의 중요한 매개체, 교육 기관
주대만 이스라엘 대사 시모나 할프린은 추천사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사회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끊임없는 질문, 기존 진리에 대한 도전, ‘불가능’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 그리고 나이와 문화를 뛰어 넘어 모든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P. 11
어느 곳이든 위와 같은 사회를 목표로 하지 않은 곳이 있을까 싶은데, 그는 이스라엘이 이미 그런 사회라며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지향점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이다. 사실 이들의 삶을 가까이서 경험해 본 사람들이나, 거둬온 열매를 보면 그들이 갖고 있는 이런 자신감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어쩌면 당연한 듯 보이지만, 이루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이런 양육, 교육 문화를 유대인들은 어떻게 갖게 된 것일까? 그들이 목숨을 걸고 전승해 온 토라와 탈무드, 그리고 이방인으로 살면서 겪었던 소외와 고통의 역사가 가정 중심의 교육으로 자리잡도록 이끈 것은 유대인 이야기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으로, 그만큼 중요하게 다뤄야 할 요소임엔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유대 민족만의 특수성이 진하게 배어있다 보니 다른 사회에 일방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는데, 이 책의 가치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방인으로서 저자의 경험이 유대인 사회의 지식과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전파되고, 각 가정에 뿌리내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에서는 양육에 어려움이 있을 때 주로 어디에서 해결 방법을 찾을까? 아마 많은 경우 부모님이나 육아 선배, 인터넷, 관련 도서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빠진 것은 무엇일까? 사실상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교육기관, 즉 제목에서 보다시피 ‘유치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많은 부모 교육 프로그램이 있고, 각 가정에 맞는 조언을 해주는 유치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필자가 느꼈던 유대인 유치원은, 육아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각 가정의 삶에 깊숙이 연결되어 있었다. 아이를 생후 3개월부터 유치원 영아부에 맡기게 된 저자는 이후 겪게 된 다양한 문제를 유치원 선생님들과 함께 풀어 나간다. 선생님들은 초보 엄마의 고민을 듣고 전문적인 조언을 해주고, 필요한 경우 가정을 직접 방문해 아이와 부모간의 상호작용을 관찰한 뒤 원인 진단과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오은영 박사님 처럼 말이다). 책을 보면 저자가 소개한 육아 지식의 상당수가 유치원 선생님과의 면담을 통해 알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1. 수유를 통해 본 존중의 의미
3개월 된 첫째 딸이 유치원 영아반에 들어갔을 때 아이가 3 ~ 3.5시간마다 젖을 먹는다고 이야기 했음에도 담당 선생님이 연락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불안한 마음에 선생님을 찾아가 본인은 아이가 울기 전에 알아서 줘서 배고파 운 적이 거의 없었다고 설명하자 영아반 선생님은 곧바로 상담을 요청하게 된다. 선생님의 요지는 아이에게 ‘배고픔을 알릴 기회를 주라는 것’이었다. 이 시기의 아이는 울음을 통해 자신의 기분을 전달하면서 의사소통 기술을 연마하는데, 요구 이전에 엄마가 미리 처리해 놓는 것은 아이의 학습 기회를 빼앗는 일종의 폭력이라는 것이다. 유대인 교육 전반에 걸쳐 형성되어 있는 이러한 자율성에 대한 믿음은 저자의 실수를 깨닫게 했고, 이후 확신에 찬 말투로 부모 중심의 양육방식을 비판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정해진 시간마다 분유를 먹이고, 울면 울다 지칠 때까지 내버려두는 육아법이 과연 아기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어른인 부모를 위한 것일까?
p. 36
1.2. 표현이 서툰 아이 받아주기
또한 부모님과 대화가 가능한 아이가 아직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심통을 부리거나 소리를 지르고, 또 성질을 내는 상황에서도움을 준 것도 유치원 담임 선생님이었다. 아이가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울 때 필요한 것은 부모의 꾸짖음이 아닌 관심으로, 수 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인내심’을 가지고, 더 자주 안아주고 사랑을 표현해 줄 것을 당부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미 상황이 벌어진 다음에는 아이의 감정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난 후 차분히 대화를 나눠볼 것을 조언해 주었다. 물론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은 저자와 남편이 머리를 맞대 그들만의 해결방법을 찾아낸 것이었지만, 출발선 상에는 늘 유치원 선생님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1.3. 카인 컴플렉스 극복하기
사례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둘째가 태어나면서 첫째가 겪게 되는 문제인 카인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카인 컴플렉스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첫째가 동생이 태어난 후 불안, 두려움, 분노 등의 감정을 느껴 청개구리처럼 굴거나, 눈치를 보고, 때론 어린아이처럼 행동해 부모님의 애간장을 태우는 시기를 일컫는다.
저자의 가정에서 둘째가 태어났을 때 주변의 반응은 놀라웠다. 유치원에서는 ‘나는 언니예요’ 메달을 달아줘 하루 종일 자랑스럽게 걸고 다니게 했고, 이를 본 이웃들은 만날 때마다 축하를 건네 어깨를 으쓱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출산 후 2주 간에 거쳐 직장 동료, 이웃들이 축하를 해주러 왔는데 한결 같이 첫째에게 먼저 선물을 주면서 축하를 해주었다고 한다. 이런 섬세한 배려에 첫째가 동생을 자랑스럽게 소개시켜줬음은 물론이고 말이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앞선 경험과 부모님의 배려를 통해 첫째는 동생을 잘 받아들였지만, 처음 한 두 달 엄마가 둘째 아이를 중점적으로 돌보면서 자신에게 소홀해지자 여지없이 서운함을 드러냈던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바닥에 누워 울고, 식탁을 어지럽히기도 하고,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 버티다 바지에 싸는 경우까지, 결국 이 때문에 윽박지르는 횟수가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다. 아빠가 공원이나 수영장, 동물원을 데리고 다니며 놀아주고, 엄마가 동화책도 읽어주고 자장가를 불러줘도 소용 없었다. 그 때 마침 유치원에서도 연락이 왔다. 아이가 퇴화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잘해줘도 소용이 없다는 하소연에 가정을 방문해 두 사람의 대화와 행동을 관찰한 선생님은 다음날 저자에게 전화를 걸어 관찰 결과를 알려준다. 일단 첫째 아이는 예외없이 카인 컴플렉스를 겪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이 때 부모가 할 일은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임을 먼저 이야기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한 엄마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많은 엄마들이 저지르는 실수인 첫째를 너무 엄하게 대하지 않을 것을 요청했다. 엄마가 둘째를 안고 첫째를 따라다니며 주변을 정리하라고 지속적으로 잔소리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엄마 스스로가 힘들다보니 첫째가 좀 더 성숙하게 행동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부담으로 작용해 역반응이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선생님은 아이가 아직 만 네 살일 뿐임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하며 대화를 마무리 짓는다.
그렇게 문제의 원인을 분명하게 알게 된 저자는 곧바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아이와의 일과를 조정하며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아이들을 재우고 씻었던 것에서 둘째를 남편에게 맡기고 첫째와 목욕을 하는 등 아이와의 애착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런 변화가 있은지 한 달 뒤 유치원에서는 아이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전해주었고, 동시에 또 다른 갈등도 준비해야 된다고 알려주었다. 앞으로 둘째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장난감을 빼앗고, 그림을 찢는 등 첫째의 사적인 영역에 침범하게 될텐데, 그 때도 첫째의 마음을 잘 도닥여주지 못하면 카인 컴플렉스는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2. 아이가 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이유
아마 이런 과정을 통해 저자는 위기의 순간에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믿음과 큰 안도감을 느꼈을 듯 싶다. 다양한 방법들이 한 가지 가치로 향해있다는 것을 알면서부터는 분명한 확신을 갖게 되었을 것이고 말이다. 그 핵심 가치란 무엇일까? 바로 아이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자아실현을 돕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가 주체적으로 성장할수 있기 위해서는 부모의 입장에서 전혀 이해되지 않는 아이의 수많은 요구들에 민감하게, 또 최대한 긍정적으로 반응해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가 바라본 이스라엘 교육의 핵심 키워드인 사랑 (비폭력), 존중 (자유, 선택의 기회), 포용 (느림, 혼란에 대한), 요약하면 ‘기다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양육 방식은 당근과 채찍의 양육태도를 철저히 배제하는 태도로 드러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된다. 아이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또는 벌을 피하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표를 이룰 때마다 만족감, 자신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소개한 모든 육아의 과정들은 이 원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식사에 있어서는 어른이 언제 먹고, 무엇을 먹을지를결정한다면, 아이는 먹을 것인지 먹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한다. 억지로 먹이는 것은 앞서 밝혔듯 사랑을 가장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또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더라도 아이 스스로 먹는 즐거움을 느길 수 있도록 기다려 준다 (저자의 경우는 아예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욕조에 물을 받아놨다고 한다). 아이가 기어다닐 때도 보행기에 태워 억지로 걷는 연습을 시키지 않는다. 안전사고의 위험은 차치하고, 오랫동안 기어 본 아이가 상체 근육의 발달로 인해 더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두 돌이 지나 기저귀를 뗄 때도 마찬가지다. 기저귀를 떼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게 한 후, 아이가 기저귀에 대한 불편함을 느낄 때 유치원과 가정에서 함께 시작해 (이 때도 원장 선생님과 상담을 한다) 그 뿌듯함이 온전히 아이의 것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식으로 말이다.
이처럼 아주 어린 시기부터 보호자들의 배려와 존중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배워온 아이가 자라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이지 않을까? 앞서 주대만 이스라엘 대사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마음껏 질문할 수 있고, 당연시 여기는 것과 권위에 도전할 수 있으며, 순수하게 문제를 해결하는데 머리를 맞대는 사회가 가능하게 것은 바로 이런 과정 덕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적자생존, 주먹구구식으로 살아 남아야 하는 우리 사회가 심리적 안정을 찾고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더불어 출산율도 높이는), 손에 돈을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심리적 안전망을 구축해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더욱 굳게해 준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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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엄마의 유대 문화 경험기….유대 이스라엘이 아시아고 곧 동양인데 이게 무슨 말인지…동양 엄마의 일본 문화 경험기같은 모순형용이 아닐수가 없네요…
안녕하세요~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동양을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생각해서 서술했던 것인데, 넓은 관점에서는 말씀주신 부분이 맞습니다. 다만 유대인을 동양인에 포함시키기에는 정서적인 거리가 크다보니 그렇게 표현한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실제로 책의 표지에도 써있는 내용이기도 해요. ‘현장에서 동양인의 눈으로 본 유대인 육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