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의 고전 100권 읽기, 정말 괜찮을까?, 『다시, 초등 고전읽기 혁명』, 송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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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빽빽한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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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 「2019년 국민독서 실태조사」 에서는 독서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원래 이 글에 참고할만한 자료를 찾다가, 의미 있는 내용이 많아 별도로 작성하게 되었다). 덕분에 학생들은 책을 꾸준히 읽고 있지만, 어른들은 독서의 즐거움을 회복하지 못한 채 갈수록 멀리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90%가 넘는 매우 높은 독서율을 보이는 학생들에 대해서도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있었다. 분명 이들의 독서율은 지난 10년 간 큰 변화가 없었음에도, 언어 이해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PISA 2009에서 21.2%에 불과하던 최하위 수준 학생 비율이 PISA 2018에서 34.7%로 증가, 자세한 내용은 이전 글 참고) 이런 결과는 현재 아이들의 읽기 방식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1. 아이들의 독서 수준이 향상되지 않는 이유

아마 이런 의문에 대해 저자는 십중팔구 책을 흥미 위주로 읽어서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가 ‘흥미 위주’라고 표현한 것은 사실상 ‘만화책’을 의미한다.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긴 하지만 대부분 만화로 구성된 책들 위주로 읽는다는 것이다.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자리를 잡고 있는 아이들 대부분이 이런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던 그의 지난 경험은 요즘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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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첫 주 베스트셀러, 떡집 시리즈 3권 빼고 모두 만화책이다.
(출처 : 소년한국일보 [1])

어쩌면 1년에 70권을 넘게 읽는다고 대답한 초등학생들의 대다수가 이런 만화책만 읽었던 것은 아닐지, 문득 독서의 질에 대한 연구도 함께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편하게 읽을 수 있고, 읽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이런 타협적인 선택에 대해 저자는 차라리 읽지 않는 것이 낫다며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어휘력과 이해력이 부족한 상태에 있음에도 책을 읽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긴 호흡이 필요한 책들을 점점 더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난 20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향상된 독서 환경 대비 아이들의 이해력이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을 목도해 온 저자가 새로운 독서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 초등학생들이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만화와 베스트셀러 위주의 책을 골라 보는 것에 대한 염려에는 깊이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어린 친구들에게 꼭 고전을 읽혀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한편으로 아이들에게 괜한 부담감만 더하는 게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가 고전에 대해 확신을 갖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이들도 충분히 자기 수준에 맞게 이해하고 감동받을 수 있다는 것을 지난 8년간의 고전읽기 프로젝트를 통해 수 없이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그 확신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고전에 대한 그만의 정의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1. 고전의 정의

저자에게 있어 고전이란 30년 이상(古典)된 수준있는 책(高典)을 의미한다. 현 시점에서 1990년 이전에 쓰여진 책들은 모두 고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보고 그 기간동안 사랑을 받았다면, 10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어려운 책들 뿐 아니라 ‘어린왕자’와 같은 책들도 얼마든지 의미있는 고전으로 소개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전에 대한 선입견을 털어내는 것은 고전읽기 경험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2.2. 기술이 발전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

저자는 요즘처럼 학부모들이 갈피를 잡기 어려운 시기가 없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급격한 변화를 거듭하는 기술의 변화 (특히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을 인공지능의 대두) 탓에 불안함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아이를 사교육에 내몰며 불안함을 달래기보다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의 본질적인 면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함께할 수 밖에 없는 근원에 대한 질문들, 인류의 행복, 공동체의 번영에 대한 생각 등은 종교, 철학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기술은 이러한 생각의 토대 위에서 발전해 왔으며, 기술이 야기할 새로운 문제들 또한 이런 맥락에서 풀어가야 하기에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는 갈수록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 저자가 보기엔 고전이야 말로 이러한 인간 이해에 가장 깊이 다가갈 수 있는 책들이었다.

2.3. 시대에 맞춰 변화되는 교육 과정

한편 한국의 초등교육에도 많은 변화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2015년에 개정된 교육과정이 2017년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는데, 단순 암기식 수업을 탈피하기 위해 객관식 문제를 폐지하고, 논술, 서술형 수행평가 비중을 높이는 창의적인 인재로 키우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업 과정에도 기존 방식을 탈피한 블록 수업, 프로젝트 조별 발표, 수학, 과학 교과 과정을 융합한 교육(STEAM) 등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비중도 늘리고 있다고 한다. 결국 이런 교육 환경에서는 생각을 깊이하고 이를 조리있게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아이들이 부각될 것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중,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지문의 난이도가 부쩍 높아지기 때문에, 만화의 단답형 문장이 아닌 보다 긴 호흡의 글들을 꾸준히 읽는 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 밖에 없다.

3. 고전읽기 프로그램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했나?

서울 동산 초등학교에서 2011년부터 꾸준히 진행해온 (현재 학교 사이트에도 소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올해로 10년차라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전교생 고전읽기 프로그램 (The Great Book Dongsan Program) 은 아이들 나이에 적합한 약 100권의 고전을 읽고 졸업할 수 있도록 한 프로젝트라고 한다.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일단 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독서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하며, 비용도 학교에서 대부분 지원해줘 프로그램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프로그램은 ① 매일 아침 독서 시간 20분과 ② 일주일에 2시간씩 정규 시간에 고전읽기 시간을 별도로 할애해 책과 함께하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늘려주는 방식이었다.

3.1. 도서 선정 기준

아무래도 가장 많은 노력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학년 별 도서 리스트의 선정은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준비했다고 한다.

① 특정 분야에 편중되지 않는 도서와 다양한 작가들의 혼합
② 저학년일수록 동화 비중 높임
③ 원전에 가까운 책 (내용이 너무 어려운 경우 아이들 수준으로 번안된 수준까지만 허용)
④ 선호도 높고 많이 알려진 작품 ⑤ 초등학교 교육 과정과 연계된 도서

위 내용들에 더해 저자가 좋은 책이라고 언급한 다음의 기준들도 함께 적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깊은 감동과 공감을 줘 책장을 자주 덮게 하는 책,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어 나라나 인종, 세대를 초월해 주목받는 책, 그리고 물질, 쾌락주의에 빠지지 않고 바른 삶으로 이끌어주는 책들 말이다.

3.2. 어떻게 모든 아이들이 고전을 읽을 수 있었을까?

한편 당연히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이 모인 곳이었기에 프로그램의 정착 과정이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의외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아직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르는 어린 아이들이라는 점과 집단의 힘이 발휘되는 학교라는 특성이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역시 아이들은 어릴 때 어떤 습관을 들여주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는 건 아니었기에 호기심을 일으키기 위한 설득 장치는 필요했다. 저자의 경우에는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닌 책이고, 한 권을 읽으면 100권 이상을 읽은 효과가 있다는 얘기를 했을 때 아이들이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4. 프로그램의 성과는 어땠나?

4.1. 성장의 즐거움 경험

프로그램의 효과는 한 두가지가 아니었지만 크게 두 가지 예를 들 수 있을 듯 싶다. 일단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의 소감을 읽어보자.

이번 주 들어 『플라톤의 대화편』 중 「에우튀프론」을 읽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특히 소크라테스가 하는 말들은 어렵다. 왠지 말장난을 한다는 느낌이 들지만 오랫동안 집중하여 읽다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물음표 3만 개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을 반복하여 읽다 보면 그 물음표가 단어로 변하면서 이해가 된다. 이때 나의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뿌듯하다. 그래서 이 책이 정말 재미있는 것 같다. 이렇게 말도 안 될 것 같은 말에 깊은 뜻이 있다는 것도 참 대단하다.
나는 이런 책이 참 좋다. 왜냐하면 보통 하는 대화 같은 말에서도 깊은 뜻을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무리 이해하기 힘들다 해도 계속 읽게 된다.
p. 133

초등학생의 깨달음이라고는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이런 경험이 너무나도 소중한 것은 필자가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이유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해한 책을 읽는 과정은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이다. 하지만 고심 끝에 깨닫게 됐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자아가 새로워지는, 영혼이 회복되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이러한 감동을 초등학생이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인생 책을 발견하게 된 아이들은 그 기쁨을 알기에 이런 과정을 반복해 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그 감동이 큰 만큼 자발적으로 글이나 그림 등으로 느낀 바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하는데, 이 또한 책의 감동을 나누기 위해 글을 쓰는 필자의 경우와 정확히 동일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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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기쁨이란 (출처 : Pexels)

4.2. 성적의 자연스러운 향상

이런 깊이 읽기 (정독) 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거치며 자신의 이해력을 증진시켜 온 아이들은 (당연한 얘기지만) 교과서의 내용을 시시하게 여기는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자신의 반에서 거뒀던 사례를 소개하는데, 사립초등학생 간 공동학력평가가 존재했을 때 자신이 담임으로 있던 반의 국어 평균 점수가 95점을 기록했다고 한다. 모든 아이들이 1~2개만 틀려야 하는 상당한 결과였다. 하지만 난이도도 평이했고, 아이들도 특별히 국어에 신경썼던 것도 아니며, 교육 방법이 달랐던 것도 아니어서 의심(?)되는 것은 고전읽기 밖에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오전읽기 이후 자신의 수업 시간을 20분 가량만 할애해 아이들과 나눔을 했을 뿐임에도 오히려 교과과정에 충실했던 것보다 효과가 좋았다는 것이다.

4.3. 그 밖의 다양한 사례들

그 밖에도 책에는 고전읽기를 통해 변화된 삶을 증언하는 부모들, 학생들의 고백이 넘쳐났다. 아이가 어른스러워졌다는 부모, 꿈이 없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 없이 지내던 아이들의 눈빛이 살아나고, 자기 밖에 몰랐던 아이들이 다른 친구를 배려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까지 말이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일종의 사이비 종교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사실 고전읽기와 관련해서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유의미한 결과가 많이 알려져 있다. 필자가 이전 글을 통해 소개했던 유대인들 또한 어려서부터 경전을 암송하고 토론하면서 삶의 기준을 정립하고, 고전 100권을 읽고 졸업하는 세인트존스 대학과, 가장 많은 노벨상을 배출한 시카고 대학도 고전읽기 프로그램을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배출해 그 성과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5. 우리 가정엔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까?

앞서 설명한 내용들을 참고해 가정에서도 실천해볼 수 있다. 일단 온 가족이 함께 책읽는 시간을 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대체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여유있는 시간인 9시에서 9시 30분 정도를 추천하는데, 어느 정도 함께 읽다가 고전으로 넘어갈 때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주일에 2~3회 정도는 부모님이 직접 읽어주고, 그 이후에는 원하는 책을 읽는 식으로 아이의 독서 경험에 조금씩 스며들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읽은 내용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필수이고 말이다. 사실 부모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기만 한다면 굳이 규칙을 정할 필요도 없다. 위의 과정들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같이 지키기는 어렵다는 점과, 무엇보다 아이에게 좋은 습관을 들여준다는 차원에서 온 가족이 함께 노력해 볼만한 가치가 있을 듯 싶다. 이전에 리뷰했던 유대인 부모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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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모삼천지교 (출처 : 어린이조선일보[2])

책을 읽고 나서 이 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학교에서 나서서 독서를, 그것도 깊이있는 책들을 즐겁게 읽고 나눌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 소중한 독서 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학교에서 독서 경험을 나누고, 집에서도 그 경험을 보다 풍부하게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교육 과정이 또 있을까? 이 학교의 전 교장선생님이 남겨주셨듯 아이들은 분명 이끄는 대로 따라오기에 무엇보다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 절대적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의미있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지 실천하는 것이 어려울 뿐, 이를 모르는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한 번 유대인들의 교육 노하우를 빌려보면 어떨까? 아이가 성년 (13세) 이 되기까지 최선을 다해 양육하다 13세 이후부터는 아이에게 온전한 자유와 책임을 허락하는 것을 통해서 말이다. 초등학생 시기의 좋은 습관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한 번쯤 노력해볼만 하지 않을까?


[1] 소년한국일보, [예스24 어린이 베스트셀러] 9월 첫째 주
[2] 어린이조선일보, [역사 속 법 이야기] 맹모삼천지교

* 표지 이미지 출처 : Unsplash
* 본문 이미지 출처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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