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늙어서 의존할 수 밖에 없을 때, 어떻게 삶과 죽음을 대해야 할까?,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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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
어떻게 죽을 것인가 300

이 책은 평소에는 잊고 지내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주제를 다룬다. 한 번은 부모님을 통해, 다른 한 번은 직접 경험하게 될 ‘노화와 죽음’이 그것이다. 인도계 미국 의사인 저자는 먼저 자신들의 문제를 고백하는 것으로 서문을 연다. 의사는 노화와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말이다. 그래도 인류 평균 수명 증가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며 노화와 죽음을 극복해 온 것이 의학 덕분인데 너무 겸손한 게 아닐까? 물론 저자도 이런 성과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의사로서 자긍심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가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성공의 후광에 가려져 있던 한계였다. 우리가 잘할 수 있게 된 것은 어떻게든 죽음을 뒤로 미루는 방법일 뿐, 삶의 마지막 경계선을 어떻게 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오히려 전보다 못하게 되었음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병들고 약해져 스스로를 돌볼 수 없게 됐을 때에도 삶을 가치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은 무엇일까? 의사로서 환자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진정한 치료 방법을 찾고 싶었던 저자는 책을 통해 자신의 탐구 여정을 찾아 나간다. 죽을 때까지 치료로 연명하거나, 조금 더 건강하다면 획일화 된 삶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나은 대안 찾기. 현장의 최일선에서 누구보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씨름했을 저자의 고민은, 같은 삶의 궤적을 그려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1. 독립성의 시대와 그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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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죽음과 오늘날의 죽음

위 도표는 죽음을 맞는 과정을 기술의 발달이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의학과 공중보건의 발전은 갑작스레 다가왔던 죽음의 시기를 연장시켜 오랫동안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었다. 만성질환 정도는 언덕 수준의 경사로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불치병에 걸리더라도 상당 기간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전반적으로 오랜 기간 건강하게 살다 나이들어 죽을 확률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고령 인구 증가 추세는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의 경우 65세 인구 비율이 1790년 2%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15%를 넘는 수준이 됐고, 독일, 이탈리아, 핀란드, 일본의 경우 이미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 (일본은 22년 현재 29.1%) 에 진입했다. 서글프지만 우리나라도 2025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입할 것이 확실시 되는 상황이고 말이다.

이처럼 주변에서 노인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됐지만 희소성이 사라진 만큼, 또한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로 인해 그들의 권위적 지위 역시 빠르게 약화되었다. 인도에서 생을 마친 저자 할아버지의 경우, 본인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면 함께 사는 가족들이 이를 돕는 전근대 사회 모습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산업화로 인한 세대간 분리 (핵가족화), 노령 기간의 연장, IT 기술 고도화로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독립성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게 되었다. 자연히 가족 공동체가 감당해 온 많은 일들도 병원과 요양원이 분담하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독립적 자아의 숭배’가 독립 불가능한 시기가 반드시 온다는 삶의 현실을 망각시킬 수 있음을 지적한다. 오랜 기간 쇠약해지면서 도움이 필요한 시기를 ‘정상이 아닌 나약함‘으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에게는 좌절을, 타인에게는 연민을 심어줄 수 있는 이러한 인식은, 사회 전반적으로 죽음의 과정을 외면하는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보고 있었다.

2. 노화의 현상들

그동안 노쇠한 분들에 대해서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알고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이런 무지를 일깨우는데도 이 책은 상당한 도움을 준다. 먼저 노화는 우리 몸의 각 부품이 노쇠해진다는 것, 즉 무언가를 계속 잃어간다는 뜻이다. 노화의 원인에 대해서는 크게 ① 신체 마모설과 ② 유전적 프로그램 등이 있지만 여전히 논란 중으로 저자는 이 분야 전문가를 통해 일갈한다. 24년간 노인병 전문의로 일하면서 노화를 연구, 직접 경험한 펠릭스 실버스톤 박사에 따르면, 노화 과정에 관여하는 단일하고 일반적인 세포 메커니즘 (노화 경로) 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리포푸신과 활성산소로 인한 손상, 무작위로 벌어지는 DNA 변형, 수많은 미세포 문제가 축적되면서 그저 허물어질 뿐이라는 것이다.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인 치아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혈액 공급 위축, 침 분비량 감소 등으로 염증이 생기면서 잇몸이 내려앉게 된다. 치아 아랫부분이 드러나게 되면 잇몸이 흔들리고 더 길어 보여 치아 하나만으로도 오차범위 5년 내에서 나이를 맞출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일생 동안 턱 근육은 40%, 아래턱 뼈는 20%가 손실되면서 약화되어 점차 부드러운 음식을 찾게 되는데, 이런 음식들은 발효성 탄수화물 함량이 높아 충치 확률이 올라간다 (참고로 미국 등에서는 60세가 되면 치아의 1/3을, 84세 이상의 40% 가량이 모든 치아를 잃는다).

뼈와 치아는 물러지지만 나머지 부분은 경화된다. 혈관, 관절, 근육, 심장판막, 심지어 폐에도 칼슘이 축적되면서 딱딱하게 굳어가 노인을 수술할 때 주요 혈관들이 바삭거리는 느낌을 줄 정도라고 한다. 마치 뼈에서 칼슘이 새어 나와 각 조직들로 옮겨가는 것처럼 말이다. 심장은 30세 이후로 최대 출력이 꾸준히 감소하는데, 탄력이 줄어든 혈관에 같은 양을 흐르게 하기 위해 65세 무렵에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고혈압을 앓게 된다.

29개의 관절을 갖고 있는 손의 경우에는 관절 사이의 공간이 사라져 골관절염 위험이 높아진다. 자연히 관절 주변이 붓고, 손목 움직임이 제한되며, 물건을 쥐는 힘도 약해진다. 손 끝의 기계수용기 (물리적 자극을 감각신호로 바꾸는 기관) 능력이 저하되면서 촉감에 대한 민감성도, 손놀림도 둔해져 글씨체는 나빠지며, 조그만 자판과 터치 스크린 등도 다루기 어려워진다. 심지어 뇌도 줄어들어 70세가 되면 두개골 안에 거의 2.5cm 정도의 공간이 생겨 작은 충격에도 뇌출혈을 일으킬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머리 안에서 뇌가 덜거덕거리며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이 모든 증상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노화 현상이다. 건강한 식생활, 신체 활동 등으로 그 과정을 늦출 수는 있지만 완전히 멈출 수는 없다. 분명 갑작스러운 죽음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상당 기간을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쇠약한 상태로 보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독립성 추구의 문제 – ① 기술 발전이 죽음에 대한 인식을 희미하게 만들고, ② 외부 기관에 의탁하는 것을 전제로 해 대책 없이 의존 단계에 이르게 되며, ③ 노쇠한 상태에서는 자율성이 불가능 (어쩔 수 없다) 하다고 여겨 대표 기관들의 문제와 공명하는 것 – 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기하는 두 기관들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3. 노환을 대하는 기관들의 문제 : 서로 다른 우선순위

이런 노환을 다루는 일반적인 방식은 병원이나 요양원에 의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학계는 자신의 전문성 (생명 연장) 을 위해, 요양원은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주로 헌신하면서, 정작 당사자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노인들에게 진정으로 의미있는 가치는 뒤편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3.1. 의학계의 문제

① 치료에 초점

특히 의학계의 문제는 의대 교육의 목표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신들이 배운 것은 생명을 구하는 방법, 더 정확하게는 병을 멈추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있었지, 꺼져가는 생명을 돌보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경우 어떻게든 치료할 방법을 찾는 쪽으로 전문성을 발휘하게 된다. 마치 노환이 질병처럼 취급되는 것이다.

② 개별 증상 치료에 특화

게다가 개별 증상 치료에 특화되어 있는 의사는 질병의 수준을 넘어 환자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보통 서너 개 이상의 증상을 복합적으로 앓고 있는 고령 환자의 경우에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 일쑤라고 한다. 의료 재정의 상당액이 이미 손 쓸 수 없는 환자들에게 과도하게 지출되는 문제가 이를 잘 보여준다. 노인 의료보험인 메디케어 비용의 25%가 생애 마지막 1년을 앞둔 5%의 환자에게, 또한 그 중 대부분은 효과가 전혀 없는 최후 1~2개월 환자에게 집중되는 문제를 갖고 있다고 한다. 뇌사 상태에서도 기관 유지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오늘날의 의학 기술이 죽음에 패배하는 것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삶을 연명하는 것 외에도 중요한 일들이 많은 노환자들이 죽을 때까지 싸움을 이어가는 지금의 방식은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비극이 될 수 밖에 없다.

③ 탈권위주의

다만 이 부분에 있어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환자들이 죽을 때까지 치료하는 게 단순히 의사들의 전문성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세계적인 트렌드인 듯, ‘권위적인 태도를 꺼려하는 분위기’가 환자와 가족들의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말기질환자들의 가족들에게 사실과 선택지를 나열하는 것에 그치면서 불안감만 증폭시키는 식이다. 치료 과정을 멈추고 싶을 때 알려 달라고 하는 것은, 미처 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가족들에게는 너무 큰 요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2. 요양원의 문제

요양원은 의존도가 높아지는 시점에서 택하게 되는 현재로썬 최선의 선택지 중 하나이다. 하지만 입원의 주 목적이 부모들의 삶의 유지를 돕기보다, 자녀들이 안심할 수 있는 ‘안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문제가 된다. 거동이 불편해졌음을 감지하면 낙상을 대비해 곧바로 보행 보조기 또는 휠체어를 사용하도록 하는 식으로 말이다. 참고로 노인에게 가장 큰 위협은 낙상으로 인한 골절상이라고 한다. 매년 35만명의 미국인이 골절상을 입는데, 이 중 40%가 요양원으로, 20%는 다시는 걷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들 – 식사, 식단, 약 먹는 것, 프로그램 등 – 을 따라야 하는 것도 환자의 행복을 돕기보다 제한하는 쪽으로 다가갈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정신, 신체적으로 쇠약한 분들을 집단으로 돌보는 일이다 보니 문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인 듯 보인다. 다만 이들의 자유를 제한한 결과는 생각보다 큰 문제로 되돌아온다. 자신의 삶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느낀 어르신들이 삶에 의욕을 잃고 무기력증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① 애초에 병원 입원실을 비우는 것에서 출발했고, ② 가족 부담을 덜기 위해, 그리고 ③ 노년층의 빈곤을 극복하는 등 다양한 사회적 목적 달성에는 성공했지만, ④ 들어가 사는 사람들의 목적 달성에는 실패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

4. 어떻게 늙어서도 주체적인 삶을 지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제는 저자가 찾아 낸 의미있는 해결 방법들을 살펴볼 차례다. 저자가 소개한 다양한 사례들의 핵심을 추려보면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4.1. 자율성의 존중

자율성은 독립적인 삶이 가능할 때는 노인 본인의 몫이었지만, 의존적인 삶으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나머지 모든 조력자들의 핵심 가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아무리 의존도가 높거나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잊지 않아야 한다. 요양원의 대체 개념으로 등장한 ‘어시스티드 리빙’처럼 말이다.

① 방문하기

어시스티드 리빙은 병이 있으나 요양원에 가고 싶지 않은 노인들을 위한 주거시설이다. 1980년대, 규율에 따라 보호시설에 감금된 느낌을 주는 요양원의 방식에 반대해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서비스로, 파크 플레이스라고 이름 붙여진 단지 내에 독립된 주거공간이 제공되고, 누구도 환자가 아닌 거주민으로 대우받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 덕분에 직원들조차도 그들의 집에 ‘방문’하도록 하면서 많은 부분이 변화될 수 있었다. 응급 상황에 처했을 때 적절히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음 (처음 등장했을 때 수 없이 공격을 받았던) 에 서로가 공감했고, 자주 넘어진다고 개인 의사와 관계 없이 도구를 사용하도록 강제하지도 않으며, 식사나 약에 대해서도 때로는 거부 의사를 드러낼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자유를 위해 건강을 희생한 것도 아니었다. ‘사적인 공간’, ‘내 집 같은 느낌’을 준 이러한 방식은 주민들의 삶의 만족도를 끌어 올렸고,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신체 기능과 인지 능력은 향상되고 심각한 우울증 발생 건수는 감소했으며, 정부의 보조 비용도 일반 요양원 대비 20% 가량 절감하면서 그 효과가 입증된 것이다. 비록 여기저기서 이 개념을 남발하면서 가치가 훼손되긴 했지만, 세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만한 것이었다.

② 노인병에 대한 이해 높이기

의사들의 경우에는 지금도 많이 늦었지만 갈수록 늘어날 노령 세대를 맞기 위해 노인병 전문의를 양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한다. 물론 이 방법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할 것이기 때문에 기존 의사들에게도 초고령 노인들을 돌보는 방법을 교육시켜야 한다. 노령 환자들이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일들이 많음을 알아야만, 어떻게든 증상을 해결하려는 충동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③ 안전과 자율의 조화

부모님을 모셔야 할 가족들에게도 중요한 당부를 전해 준다. 그 분들을 직접 모시기 어려운 상황에서 불가피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될 수 있는 한 부모가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만한 곳을 찾아 달라고 말이다. 부모가 안전하게 지내길 바라는 것은 모든 자녀의 한결같은 마음이겠지만, 이 선택이 부모의 행복까지 짓누르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오히려 이 둘이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오히려 가장 안정된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염두하고 거기에 맞는 방법을 찾아나서길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었다.

4.2. 책임감 (목적의식)

인간이 살아가야 할 이유 (목적의식) 는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오랜 기간 다양하게 다뤄졌지만, 책에서는 이 시기에 맞는 성공 사례들을 소개한다. 앞서 언급한 노인병 전문의인 실버스톤 박사는 병약한 아내를 돕는 것을 통해 삶의 의미, 그리고 이전보다 더 큰 사랑을 느끼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생동감 넘치는 의사 빌 토머스는 요양원의 모든 환자들에게 반려 동물을 제공함으로써 많은 노인들이 잃었던 의욕을 되찾아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반대했던 이 시도의 결과로 처방약은 50%, 약 구입비는 38%, 사망률도 15%가 감소하면서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살아야 할 이유를 갖고 싶어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는 삶에서 무언가를 책임지는 일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독립성의 시대에 발맞춰 득세한 개인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철학자인 조시아 로이스 교수를 인용해 ‘해야 할 일’, 또는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나 자신을 넘어선 무언가 (대의) 에 헌신하는 것 (충성심 loyalty) 임을 이야기 한다.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자신의 안위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지만, 그렇게 해서는 삶의 이유, 반대로 죽는 것조차 의미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음도 지적한다. 가족, 공동체, 사회 등 무언가를 오롯이 책임지고 나아가는 것, 그렇게 나보다 더 큰 무언가의 일부로 여기는 것 (초월) 을 통해서만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앞선 사례가 분명히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가 무엇보다 희망적으로 여겼던 것은 꼭 어시스티드 리빙이 아닌 일반적인 요양원에도 이런 효과를 거두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진심을 다해 돕는 일이 말로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임에는 사실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4.3. 대화 (애도의 과정)

이 모든 과정의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역시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독립성을 잃은 노인들이 구속 또는 방치된 삶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면한 어려움 속에서도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화의 출발점은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모두가 아는 것에 있다.

① 생의 마지막 시점이 다가왔을 때 의학적으로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이해하면서 불안감에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 그리고 ② 상황이 악화됐을 때 어느 정도 상태여야 사는게 괴롭지 않을지에 대한 대화를 반드시 나누어야 된다고 완화치료 전문가를 통해 조언한다. 이런 시간을 충분히 가졌을 때 환자와 가족들이 화학치료를 일찍 중단하는 경우가 늘어났지만, 오히려 생존 기간은 25% 가량 늘어나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또한 임종의 순간, 또 그 이후로도 유족들이 고통을 덜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피하기 위해 몸부림 쳤던 다양한 의사 결정들이 모두를 위해 재조정 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인들의 책임은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한 번 죽는다. 생이 끝나가는 걸 경험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에 이른 사람들은 차마 꺼내기 어려운 대화를 기꺼이 나눠 줄 의사와 간호사를 필요로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앞으로 닥칠 일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무도 원치 않는 ‘죽음을 기다리는 창고’ 같은 시설에서 잊혀 갈 운명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p. 287

무엇보다 이런 시기를 맞기 전에 앞서 고민한 선배의 노하우를 접할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때문에 정말 오랜 기간을 들여 책의 내용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러다 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져 주관적인 내용은 다음 글에 이어가 보도록 하겠다. 😅


* 표지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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