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대니얼 서스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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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대결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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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매트릭스>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두 번째 르네상스’ 편은 영화 <매트릭스>의 배경, 즉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어 환상 속에서 삶을 영위하게 된 원인을 설명한 애니메이션이다. 인간을 대신해 고된 노동을 감당하는 로봇들 덕분에 좋은 시절을 보내던 인간은, 주인을 살해한 로봇의 등장으로 전환점을 맞게 된다. 로봇들은 해당 기종 뿐만 아니라 로봇 전체를 폐기하려는 인간의 분노를 피해 자신들만의 나라를 구축한 후,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차츰 인간 나라들의 무역 경쟁력을 악화시킨다. 이에 위기에 처한 인류 지도자들은 ’01(지로원)’ 이라고 불리는 이 로봇 나라와의 거래를 끊고 전쟁까지 치루게 되지만, 이미 다른 차원의 기술력을 확보한 로봇이 결국 승리하고 인간을 자원삼아 구축한 환상의 세계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매트릭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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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한 기계의 종전 선언 (*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영화쉼)

책을 보는 내내 이 만화가 떠올랐던 것은, 어쩌면 우리가 이 ‘두 번째 르네상스’의 도입부에 서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에피소드의 출발점은 여가를 즐기는 인간과 노동하는 로봇으로 우리가 아직은 도달하지 못한 세상이다. 하지만 이미 심심찮게 들려오는 인공지능 기술의 놀라운 발전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우리는 분명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발선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 보인다.

저자인 대니얼 서스킨드는 인공지능에 조예가 깊은 경제학자로, 인공지능 연구자인 아버지와 함께 이미 10여 년 전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 를 통해 인공지능이 블루칼라가 아닌 전문직을 먼저 대체할 것이라며 당시의 편견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이 책은 그 후 10년 간 이어진 연구의 결과로 ① 우리가 직면한 현실과 ② 곧 도래할 미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책의 원제목처럼 ‘일이 없는 세계 (A World Without Work)’에서의 삶의 의미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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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별 일자리의 특성과 흐름 (* 출처 : 직접 작성)

위 표는 이 책의 전반부 (Part 1. 기술과 일의 역사, Part 2. 위협) 를 요약한 내용으로 산업혁명 이후로 일의 세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아직까지는’ 기술의 발전이 대체로 인간의 노동을 보완해주는 ‘노동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한 분야에서 일자리가 감소했어도 다른 곳의 노동 수요가 늘어나 전반적으로 일자리 확대의 기회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시기가 그리 오래가진 않을 것이며, 유의미한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기술 발전의 열매를 나누는 것은 갈수록 어렵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빠르게 하락하는 돈의 가치와 더딘 임금 인상, 그렇게 비혼 또는 외벌이에서 맞벌이, 그리고 부업이 일상화 되어가는 팍팍한 삶을 통해 우리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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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생산성 향상 대비 임금 인상 정체 (p. 198)

1. 문제의 출발점, 2차 AI 물결 (실용주의 혁명)

노동의 시대에는 숙련된 노동 인력이 지속적으로 증가함에도 전체 임금은 꾸준히 상승했으며, 특히 석, 박사 등 고급 인력의 임금이 더 빠르게 증가해 교육의 가치를 입증해 왔다. 그러나 이미 1980년대부터 중산층 붕괴 문제는 시작되고 있었다. 발전하는 기술 대비 줄어드는 중산층 문제는 새로운 해석을 위한 경제학 이론 (ALM 가설) 의 등장을 이끌었고, 기존 일자리가 아닌 업무 단위 중심으로 봤을 때 자동화에 용이한 ‘틀에 박힌 업무’를 중산층이 가장 많이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가설은 폭 넓게 수용되어 ‘기계에 대체될 업무와 이를 가르치는 교육을 하지 않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1990년대 말, 인공지능을 더 이상 인간의 두뇌를 모방 (순수주의) 하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과제 수행 중심 (실용주의) 으로 바꾸게 되면서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알고리듬을 짜줘야만 작동했던 1차 AI 물결 때와 달리, 오늘날에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데까지 이르러 기존 인공지능의 성과를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7년 IBM이 개발한 딥블루가 초당 3억 3,000수에 달하는 엄청난 계산 능력으로 100수 정도를 내다볼 뿐이었던 당시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스에게 승리하며 실용주의 혁명의 서막을 알렸다. 우리에게는 2016년 3월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 승리해 충격을 주었고, 이듬해에는 알파고 제로가 바둑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72시간을 독학한 후 전년도의 알파고에 100전 100승을 거뒀다. [1]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인공지능 세계에서 무려 5년이나 지난 이야기라면 이건 어떨까. 자율주행차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테슬라는 곧 발표될 소프트웨어 버전 (FSD Beta 10.13)에서 지도 데이터를 뺄 예정[2]이라고 한다. 지도가 없이는 길을 찾을 수 없는 인간과 다른 – 틀에 박히지 않는 –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의 시대에 맞춰 세워졌던 가설, 정책들을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었다. 만약 과거 기억 (새로운 기술이 언제나 노동자에게 이익이었던 지난 300여 년의 성공 경험) 에 기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미 피부로 느끼고 있는 양극화 문제는 공동체 갈등의 뇌관이 될 수밖에 없다.

2. 심화되는 불평등

가속도가 커지는 기술의 발전과 업무 잠식을 통해 우리 공동체가 마주하게 될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산업이 갈수록 전문화, 고도화 되면서 다른 산업, 직무로의 이동이 어려워 발생하는 마찰적 기술 실업 (1920년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를 설명한 케인스의 ‘기술적 실업’을 보완한 개념) 과, 보다 근본적으로 일의 총량 자체가 줄어드는 구조적 기술 실업이다.

이들 실업 문제를 관통하는 불편한 진실은 기술이 인간을 보완하는 것은 인간이 경제적으로 이익을 더해줄 때까지만이라는 점이다.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먼저 발생한 것도 에너지 비용이 임금보다 저렴해 기계를 돌리는게 이익이었기 때문으로, 우리도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렸던 시기 (2018년, 16.4%) 이후로 업장에서 키오스크 등 자동화 기기 도입이 부쩍 증가한 경험을 갖고 있다. 기업의 업무 환경도 과거에는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거나, 인력으로 감당하던 것에서 전문화 된 서비스를 구독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추세다. 자연히 필요한 인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성공한 기업은 이익률을 높이기 용이한 환경이 마련되면서 부의 쏠림 문제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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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위 0.1%와 하위 90%의 자산 분배율 (p. 201)

위의 표는 2013년을 기준으로 미국 상위 0.1%의 부가 하위 90%과 동일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벌써 9년이나 지난 자료니 지금은 그 차이가 더 가팔라져 오히려 상위 0.01%와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줄어든 노동 수요로 인해 밀려난 사람들은 숙련 기술 습득이 어려워 (마찰적 기술 실업) 대체로 산업의 하류층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고, 이 때문에 심화되는 양극화는 사실상 불가피한 일이다. 미국의 경우 40년 전 평균 임금의 28배에 불과했던 대기업 CEO의 임금이 불과 20년 만에 376배로 벌어졌다. 이후 20년이 지난 오늘날은 어떨까? 2020년 미국의 평균 임금은 69,000 달러 (1,290원 환율 기준 약 8,900만원) 라고 한다. [3] 현 애플 CEO인 팀 쿡이 2021년도에 9,873만 달러 (약 1,273억원) 를 받았다고 하니, 평균 임금을 1억으로 쳐줘도 1,000배가 훌쩍 넘는 임금 격차를 보여준 셈이다. [4] 거기에 한 술 더 떠 구글 CEO인 순다르 피차이는 2020년 상여금이 2억 8,100만 달러 (약 3,600억원) 로 심지어 구글 평균 연봉의 1,085배였다고 한다. [5]

3. 일이 없는 세계로의 연착륙

보다시피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기술의 발전과 가속도, 그리고 뒤따라오는 일자리 감소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그렇게 발전하는 기술과의 경쟁 (?) 이 ‘영원할 것’이라고 하는 저자의 표현에는 서늘함마저 느껴졌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시대로의 진입이 본격화 되면서, 우리나라도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공장 이전 문제 등 일자리 갈등의 전장으로 변모한지 오래고 [6], 서울에서 시범 운영할 자율주행 택시 [7] 는 타다 사태 이후 택시 노동자들의 시름을 깊어지게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한 저자의 해법은 무엇일까? 요약하자면 노동의 시대에 맞춰 만들어진 기존의 교육, 제도,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너무 뻔한 얘기라고 여길 수 있겠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각성과 의지, 그리고 실천에 달려있는 일이다.

3.1. 교육 방식의 변화

인공지능 시대를 어떻게 준비할 것이냐는 질문에 경제학자들과 정치인들은 주로 ‘더 많은 교육’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20세기 초 ‘대중 교육’, 20세기 말 ‘고등 교육’ 을 의미했던 ‘더 많은 교육’의 정의를 이어 앞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 진학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듯 ① 교육 수준과 업무 자동화 가능성은 상관 관계가 없고, ② 앞으로 기계 손이 미치지 못할 업무를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대학 학위를 받아야 한다는 20세기 전략은 시대에 뒤처진 것임을 지적한다. 교육 현장은 가장 느리게 변화하는 곳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에서는 여전히 틀에 박힌 활동을 정확히 수행하려는 방식이 존재하고, 반대로 인간이 기계보다 유리한 신기술 분야는 가르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교육 내용과 방법의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물론 그럼에도 교육은 기술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언제까지고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인 만큼, 온라인 교육을 통한 개별화 학습, 평생 학습을 받아들이는 태도 등을 통해 대응 능력을 키울 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3.2. 큰 정부의 역할

한편 전통 자본 대비 가치가 줄어드는 인적 자본과 그로 인한 부의 쏠림은 시장의 자유 의지에만 맡겨서는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다. 냉정하게 말해서 자신의 이익에 충실해야 할 기업이 갈수록 늘어날 실직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 의무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 정부이고, 이 때문에 저자는 부의 쏠림을 적절하게 재분배할 수 있는 큰 정부를 가장 강력한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여기에서 ‘큰 정부’는 정부가 자본을 소유하고 생산과 기업 운영 방식까지 통제하는 사회주의 정부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산된 자본을 분배하는 정부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엄청난 불평등이 줄어든 사례가 14세기의 흑사병, 20세기의 세계대전 때 뿐이었다는 암울한 역사의 기록은 ‘두 번째 르네상스’로의 진입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하지만 공동체의 건강한 존립을 위해서는 ① 가치 있는 자산, 소득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크게 매겨야 하고, ② 슈퍼스타 기업과 기업가들의 지나친 세제 혜택, 세금 회피를 국가적 공조를 통해 찾아내야 한다. ③ 그렇게 모은 자산은 또 소득 없는 사람과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야 하고 말이다.

① 소득의 분배

오늘날 미국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환영받고 있는 개념이 ‘보편적 기본 소득’이라고 하지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사회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열매를 나누는 것에 대한 반발, 즉 소득을 늘리기 위해 다른 구성원을 내쫓을 동기와 갈등이 유발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조건적 기본 소득으로, 경제적 기여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른 조건, 즉 사회적 기여 (시민 사회 지원, 아이들 교육, 문화활동 돕기 등) 를 통해 기본 소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② 자본의 분배

한편 정기적인 현금 배분보다, 자본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 분배를 위한 행정력 낭비와 경제적인 분열을 줄일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처럼 국민을 대신해 기금을 조성하고 주식을 확보하는 등 사업에 투자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③ 노동 지원과 기술 대기업의 정치적 힘 감독

오늘날 기업 메타 (페이스북, 왓츠앱, 인스타그램을 보유한 회사) 서비스의 하루 이용자는 28억 명에 달한다. [8] 전 세계 80억 인구의 1/3 이상이 이 회사의 서비스를 매일 이용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런 기술 대기업들은 자기 이익에 따라 우리 자유의 한계를 결정짓는 경우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또한 갈수록 노동자의 길항력 (경제적 집중을 억제하는 힘) 도 줄어들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야만 한다. 과거에는 거대 기업이 경제적 이익을 독점했다면, 이들 기술 기업들은 사용자들의 문화를 독점하므로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감독할 기관의 중요성이 커지게 된다. 소비자가 아닌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기관, 그리고 이를 위해 정치 이론가와 윤리학자가 필요한 것이다.

3.3. 삶의 의미와 목적

마지막으로는 일과 강하게 연결된 우리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다. 생존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노동의 시대에서 최선의 전략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었다. 물론 이 전략이 많은 사람들에게 유효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하는 일이 나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수단이 되다보니 ‘일이 없는 나’를 상상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수 년 전부터 각광받고 있는 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 경제적 독립에 따른 조기 은퇴) 에 대한 바람을 어쩌면 모든 노동자들이 갖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거기에 이르는 최선의 방법 또한 일이기 때문에 좋아서든, 감내하기 위해서든 일과 삶을 떼어낼 수는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제는 인민의 아편이 되어버린 일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 유익한 고용 상태가 아닌 유익한 실업 상태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교육과 정부가 일을 통해, 여가를 통해 사회에 공동으로 기여하는 방안을 찾아내야 – 세부적인 내용은 각 나라와 시민들이 정해야 한다 – 한다는 제안으로 책의 내용은 마무리 된다.

4.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요즘 인공지능 관련 소식을 접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은 이중적이다. ‘놀랍다’는 감탄과 ‘앞으로 어떻게 하지?’라는 염려. 그나마 80년대 생인 필자의 경우 인공지능의 업무 활용이 사실상 전무했던 시기에 취업을 했고, 최근 들어서야 각 분야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기술 발전의 부정적인 영향을 직접적으로 체감해보진 못했다. 오히려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서비스들 덕분에 주로 업무 효율이 높아지는 혜택을 받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위기감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야마다 플랫폼 기업들이 등장해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고, 생존이 절실한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대기업에서조차도 신입보다는 경력직을 우대하는 상황,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공지능 + 기술과 공존하게 될 우리 아이들이 마주할 미래 등 공동체에 대한 염려는 갈수록 커져가는 중이다. 이 책을 선택한 것도 이런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싶어서였고, 결과적으로 매우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용을 정리하고 글을 쓰면서도 답답한 마음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정부의 역할이 가장, 또 갈수록 중요할 수 밖에 없다는 저자의 대안을 우리나라에 적용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현 정권, 또는 여야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자존심 싸움하기 바쁘신 높은 분들을 보면서,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게 될지 염려가 됐다. 물론 그렇다고 거대 담론만 기대하고 있기에는 한시가 급한 일이다보니, 다가올 미래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대비해 나가야할지 고민해 보는 것이 중요할 터였다.

4.1.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경제학자인 저자는 기술의 문제를 주로 거시적으로, 또 구조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개개인이 준비해야 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다만 그가 제시한 방법들로 유추해 보면, 결국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배워나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답을 얻을 수 있을 듯 싶다. 이는 인공지능을 연구하거나 미래를 고민하는 지식인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바이기도 하다. 빅데이터 전문가로 유명한 송영길 부사장은 자신의 저서 『그냥하지 말라』에서 플랫폼 제공자가 되기 어려운 개인이 지향해야 할 바는 자기 관심사에 충실한 장인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참고글 : 기술이 야기한 새로운 의무 앞에서) 뇌과학자로 잘 알려진 정재승 교수도 우리가 인공지능을 넘어서려면 사람을 실수 없이 행동하게 만드는 현재의 교육방식이 아니라 (앞으로 현재 방식의 시험 1등은 모두 인공지능의 몫이다), ① 인공지능을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것 (기본적인 코딩 지식 등) 과 ② 문과와 이과로 나누는 현재 방식이 아니라, 인문사회 분야와 과학 분야의 통합적 이해를 바탕으로 창조적인 질문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9]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또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라는 것이다.

4.2. 욕망을 과감히 욕망하기

본래 나 답게 산다는 것, 주체적인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이제는 이런 존재가 되기 위한 고민이 기본이 되는, 생존과 직결되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고, 목표의식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는 것은 시대를 넘어서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치 벤치마킹하듯 기술이 차지하거나 차지할 영역을 피해 남과 다름 (차별성) 을 강박적으로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져올 수 있을까? 그것이 진정으로 나의 삶을 사는 것일까? 책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한동안 풀리지 않았던 고민이었는데, 인공지능의 작동 방식을 생각해 보면 약간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합리주의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실패하는 수를 두지 않는다. 엄청난 계산 능력을 근거로 단 0.0001%라도 확률이 높은 쪽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실패하는 쪽은 인간이다. 심지어 실패가 자명한 일임에도 알 수 없는 신념으로 꿋꿋이 도전하는 것이야 말로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후기 라캉은 ‘고통을 감내하는 만족감’이라는 의미에서 이를 향락이라 부른다). 그렇게 모든 계산을 끝낸 인공지능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영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힘, 또는 전혀 다른 길을 찾아내는 능력이야말로 마지막까지 인간만의 것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물론 인간 정신의 많은 부분을 습득한 인공지능이 일부러 최선이 아닌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우연의 힘에 기대는 놀라운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경험이 쌓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분명한 것은 삶을 추동하는 동기, 즉 욕망에 한없이 솔직해지는 것만이 인위적인 결과물들에 맞서 자신의 존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이다.

인공지능이 분석하는 ‘데이터’는 어떤 ‘이유’에 의해 생성된 과거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욕망에 솔직해진다는 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불만족감, 즉 향락으로 체현되는 내면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고심한다는 뜻으로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즉 이유를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당장의 성공 가능성이 보이지 않더라도 묵묵히 감내함으로 공인된 실패를 위대한 도전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아마존의 성공을 이끈 제프 베조스가 증언하듯이 말이다. [10]

수학 기반의 결정은 광범위한 합의를 이끌어냅니다. 그에 반해 판단 기반의 결정은 반대에 부딪히거나 논란을 일으키곤 하며, 실제로 실행되어 효과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그런 반대와 논란을 피하기 힘듭니다. 논란을 견디고 싶지 않은 조직이라면 자신들의 의사결정을 첫 번째 유형의 것으로만 제한하면 됩니다. 다만 그렇게 할 경우엔 논란뿐 아니라 혁신과 장기적 가치창출도 크게 제한될 것이라는 게 우리의 시각입니다. 정량적 · 분석적인 문화와 대담한 결정을 기꺼이 내리는 문화를 결합시키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믿어주십시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항상 고객을 우선시할 것입니다. 그것이 주주 가치를 창출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제프 베조스, 『발명과 방황』, pp. 228 – 229

참담한 재무 분석 결과와 배송 매출의 포기, 어뷰징 문제 등을 안고 있었음에도 고객 만족을 위해 강행된 아마존 프라임 (무료배송에서 OTT까지 확장된 구독 서비스) 은 많은 업체들도 따라한 아마존의 대표 사업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인공지능이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이제까지 인생 최고의 결정들이 분석이 아닌 직감에서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주장이 오늘따라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밤이다. 아무쪼록 많은 분들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함으로 인공지능을 이끌어 갈 리더로 성장해 앞으로 새롭게 맞이할 시대적 갈등을 현명하게 풀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1] 경향신문, 알파고에 100전100승 거둔 ‘알파고 제로’ 등장···인간 지식 없이 스스로 학습해 창의성 발휘
[2] Insideevs, Musk: FSD Beta Version 10.13 Will Handle Roads With No Map Data
[3] 매일경제, ‘한국인 보다 가난한 일본인?’ 그들 월급이 20년 넘게 그대로인 이유
[4] 디지털 데일리, ISS, 팀 쿡 애플 CEO 연봉 반대 표명…“구조·규모에 문제 있다”
[5] 아주경제,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지난해 보너스 3500억원 받아… 직원들 1085배
[6] 동아일보, 5년간 1만명 퇴직 앞둔 현대차 ··· 勞 “정년 연장” 使 “연구직 수혈”
[7] 한겨레, 8월부터 서울 강남서 ‘자율주행 택시’ 달린다
[8] 지디넷, 페북, 첫 이용자 감소…’아재 플랫폼’의 한계?
[9] BOOK DB,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 넘어설 인간의 효용 가치는?”
[10] 필자의 블로그 (ReaDelight), 실패를 대하는 아마존의 방법 (feat. 제프 베조스) – 『발명과 방황』

  • 표지 이미지 출처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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