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인간의 내면 세계 이해와 공식화 (도식화) 에 일생을 바친 라캉의 마지막 유산인 ‘보로메오 매듭’에 대한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이 논문을 너무 빨리 접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주체의 진리를 향한 그의 깊은 성찰은 둘째치고 그 결과가 주는 혼란스러움 때문이었다. 그의 생애말 10년 (1970년대, 라캉은 1981년에 사망했다) 의 결과였던 만큼 프로이트로의 상징적 회귀라는 그간의 연구가 집대성 됐을 것이라는 기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1. 보로메오 매듭은 무엇일까?
보로메오 매듭은 밀라노 보로메오 가문의 세 집안이 연합한 것을 상징하는 소위 ‘가문의 문장’이라고 한다. 세 개의 원은 서로 엇갈려 있어 분리될 수 없지만, 어느 한 쪽만 끊어져도 전체가 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보통 이런 형태의 고리들은 어느 한 쪽이 끊어져도 나머지 두 개는 연결을 유지하기 마련인데, 세 원을 한꺼번에 연결하고 개별적으로는 연결하지 않아 그런 특성을 갖게 된 것이다.
일생을 내면 세계의 도식화에 바쳤던 라캉에게 이 도형이 특별하게 다가갔던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상상계 (Imaginary), 상징계 (Symbolic), 실재계 (Real) 로 요약되는 각각의 심리 체계는 일부가 아니라 전체로써만 인간에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환자의 증상을 지탱하고 있는 환상을 섣불리 걷어내려고 하는 시도가 그의 내면 세계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당신이 붙잡고 있는 왜곡된 망상이 증상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그 상상을 포기하도록, 즉 연결된 고리를 끊으려 하는 것) 그의 가르침에 정확히 부합하는 일이기도 했다.
서로 상반된 것들이 우연히 하나로 합쳐진 것에 대한 관심, 하지만 여전히 관계를 방해하는 무언가가 계속 남아 언어화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 (세 원의 교집합인 대상 a) 을 정의하기 위한 시도. 그렇게 이미 1950년대에 등장한 세 심역을 매듭이라고 하는 새로운 도식에 대입해 실재를 고찰하고자 했던 것이 보로메오 매듭의 등장 배경이었다.
매듭은 무엇인가 마음이 저항하는 대상이다. – J. Lacan, “Conférences et entretiens dans des universités nord-américaines,” p. 59. 필자의 번역. p. 179 에서 재인용
2. 보로메오 매듭의 등장 과정
2.1. 1950년대, 수학적 관심의 시작
라캉은 그의 죽마고우인 수학자 조르조 길보를 통해 수학과 각종 도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세미나를 준비하거나, 세미나 중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내용을 적절히 표현해 줄 위상학적 고민을 함께 나눴던 것이다. 여기에서 위상학은 연결성, 연속성 등 작은 변화에 의존하지 않는 기하학적 성질들을 다루는 수학의 한 분야 [1] 라고 한다. 수학적 공식화가 자신의 목표이자 이상이라고 밝혔던 1973년은 어떻게 보면 지난 20년 연구에 대한 결과 발표였던 셈이다.
2.2. 1960년대, 위상학의 도입
1960년대는 초보적인 수준에서 수학적 이해가 가능한 도형들을 도입하던 시기였다. 저자가 위상학적 겉핥기, 피상적 위상학이라고 표현한 당시 선택된 도형들은 안팎의 구분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외심 (밀접한 외부성), 즉 의식과 무의식에 동시에 존재하는 실재의 모호함을 표현해 줄 적절한 은유로써 말이다.
한편 위상학에 대한 관심과 함께 등장한 것은 그의 유명한 발명품인 대상a 였다. 내면 세계의 모호함을 적절히 표현했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무언가를 묘사할 방법이 필요해서였을까? 결과적으로 이런 미지의 대상의 등장은 라캉 정신분석의 중요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대타자 (아이의 요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타자에게 특권을 부여한 존재) 의 결여를 불러오게 된다.
2.3. 1970년대, 매듭의 발견
내면 세계를 온전히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열망은 1971년 수학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수학소는 완전한 전달이 가능한 무엇을 뜻하는 것으로 레비스트로스의 신화소 (신화의 기본적인 최소 구성 단위 [2]) 에 ‘지식’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를 합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모호한, 하지만 무언가 하나의 체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은 마침내 1972년, 조르조 길보의 제자를 통해 접하게 된 보로메오 매듭과의 만남으로 이어지게 된다.
3. 보로메오 매듭의 특성
JA : 대타자의 향락
Jø : 팔루스의 향락
meaning : 인식된 의미대상
a : 이론화가 불가능한 지점 (실재의 조각 – 슬라보예 지젝)
3.1. 매듭은 메타언어가 아니다
메타언어는 대상이 되는 언어를 범주화하거나 규칙화하는 상위 개념의 언어 [4] 를 말한다. 여기서 보로메오 매듭이 메타언어가 아니라는 것은 매듭이 라캉 정신분석을 통합한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의 제자이자 사위인 자크 알랭 밀레는 이런 매듭의 위상학을 라캉 정신분석을 요약하는 것이라거나, 하나의 청사진으로 간주하는 것은 오히려 그의 이론을 폄하하는 일이라고 경고한다. 세미나 중 도입된 모든 도형들은 당시 논의됐던 내용과 밀접하게 연관짓는 한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관점에서 존재를 명백하게 규정짓는 주인 담론 (존재론) 또한 될 수 없다. 상징과 실재가 결합된 우리의 상상 속 내면 세계에서 어떤 것이 의미를 가질지,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의미에 쾌락을 느끼게 될지는 (대상 a)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매듭이 처음 소개되던 1971〜72년 『세미나 19권: ……또는 더 나쁜……』 에서 그것은 말하기를 공식화하는 데 쓰인다. 그때 라캉이 “성관계의 불가능성을 언명 ”하기 위해서 채택한 말해진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난 너에게 내가 제안한 것을 거절할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게 아니니까 Je te demande de refuser ce que je t’offre, parce que c’est pas ça.”[5] … 요구, 거절, 제안 –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제시한 매듭에서 이 세 요소가 각기 다른 두 요소로부터 의미를 획득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 매듭에서 도출되는 결과는 [……] 이것이 대상 a에 속하는 것의 기초이자 뿌리라는 사실이다. [6]
p. 183 에서 재인용
라캉이 매듭에 이끌렸던 것은 이처럼 정의내릴 수 없는 실재를 보다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요구하는 것조차도 알지 못한다는 것, 매듭 중앙의 대상 a가 보여주는 궁극적인 불가능성은 정신분석적 체계를 완성하기보다는 더 많은 질문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럼에도 그가 매듭을 도입했던 것은 이제껏 그의 이론을 지탱해 왔던 언어학, 구조주의를 (수학적인 것으로 대체한다기 보다) 매듭을 기준으로 다시 쓰고자 했던 욕망 때문이다.
3.2. 매듭은 은유가 아니다
실재는 증상을 유지해주는 기표들의 매듭을 효과적으로 풀어버립니다. 여기서 매듭을 맺고 푼다는 말은 은유가 아닙니다. 이 매듭들은 의미화하는 재료의 사슬이 발전해감에 따라 형성된 진짜 매듭들을 가리킵니다. [7]
p. 180 에서 재인용
그의 다양한 도식들은 모두 내면 세계를 묘사하는 은유로써 그 모습을 드러내 왔다. 하지만 매듭에 대해서만큼은 은유가 아니라며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오히려 내면 세계를 형성한 체계, 즉 구조 자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도식 또한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마음 세계의 이해를 돕기위한 하나의 대체물일 뿐이지 않나? 매듭이 은유가 아니라는 그의 주장은 그렇게 한동안 이해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 것은, 매듭은 은유가 아니라 직유라는 점이었다. 즉, 일부 특성을 모호하게 부각시키는 형식 (은유) 이 아니라, 전체 요소를 직접적으로 묘사한다는 점 (직유) 때문에 그런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다. 비록 정의가 불가능한 것 (실재) 이라는 모호한 요소를 담고 있긴 하지만, 그 요소마저 체계에 담아냄으로써 어떤 변수가 가해지더라도 매듭의 구조적 틀은 유지될 수 있게 되었다.
3.3. 매듭은 글쓰기이다
보로메오 매듭은 글쓰기이다. 이 글쓰기가 실재를 지탱한다. 글쓰기로 실재를 지탱하는 게 가능하냐고? 그렇다. 더 나아가 나는 이렇게까지 말하겠다. 글쓰기, 글쓰기의 독특한 자질만이 실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8]
pp. 189 – 90 에서 재인용
프로이트 이래로 정신분석 방법론의 핵심은 자유연상적 담화 (맥락 속 이야기) 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라캉 자신도 떠밀리듯 출간한 『에크리』 외에는 강의록 (『세미나』) 만 남겼을만큼 말하기를 중요시 했는데, 마지막 결론을 왜 글쓰기로 내렸을까? 여기에 대한 주 요인으로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을 꼽는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그의 결론은 언어화가 불가능한 대상 a 에 대한 라캉의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환자들이 증상의 괴로움을 호소하면서도 변화를 위한 시도를 거부하는 모습 속에서 발견한 증상 속 향락은, 변덕스러운 말하기로는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흐르는 물에서처럼 대화 속 실재는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곧 사라져 버리고 만다).
담론의 차원을 넘어서는 증상. 1975년 라캉이 『세미나 23권 : 병증』 에서 소설가인 제임스 조이스를 다룬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글쓰기가 그의 정신병 발발을 막아주었다고 본 라캉은 조이스의 문장을 통한 구원 (현현, epiphany) 이라는 차원에서 병증 (sinthome)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새롭게 등장한 증상의 실재로서의 병증은, 세 항목의 풀어짐을 방지하는 4항이 더 이상 ‘상징’이 아니라 ‘증상’이라는 결정적인 입장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라캉에 따르면 조이스의 글쓰기는 보충효과, 즉 매듭 형성에 실패한 주체의 자리를 재구축하는 역할을 한다. 언어화가 불가능한 지점, 즉 증상의 괴로움이 추동하는 욕망은 글을 통해서만 가장 섬세하게 묘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듭에 대한 라캉의 연구가 병증적 글쓰기에 머물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자폐적 향락이라고 할 수 있는 증상은 그 자체로는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다.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메시지만 전달받고 스스로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만 있을 뿐. 그러나 안다고 가정된 주체 (상담자) 의 정신분석적 해석, 즉 증상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분석적 체험이 환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때 (기의 효과) 증상 문제 해결의 길은 열리게 된다. 물론 매듭의 구조는 항구적이지만, 이해될 수 없어 괴로운 상태를 반복할 수 밖에 없었던 증상을 비로소 수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이 환자에게 대타자의 담론으로 작용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다.
보로메오 매듭은 라캉 이론과 그 대상 간의 근본적인 연속성을 제시해 보인다. 이는 라캉에 의해 메타언어의 부재로 공식화되었다. 그 어떤 이미지나 기표로도 환원 불가능한 탈-존으로서의 실재는 오로지 글쓰기에 의해서만 접근 가능한데, 이 글쓰기는 궁극적으로 상징적 질서와 타협할 수 없는 것으로서 은유를 넘어선다.
pp. 200 – 201
‘매듭으로 내면세계 다시쓰기’라는 라캉의 마지막 과제는, 그 중심을 상징에서 증상으로 옮기게 되면서 상당한 혼란을 남기게 됐다. 이제껏 쌓아 올린 자신의 체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라캉 이론 전체의 통합이라고 여겼을 때의 얘기다). 제자들의 반응마저 극과 극으로 갈리게 만들었던 매듭에 대한 평가와 의미는 분량상 다음 글을 통해 이어가보도록 하겠다.
그나저나, 이런 글쓰기를 계속하도록 이끄는 나의 실재는 무엇일까?
[1] 위키백과, 위상학
[2]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신화소
[3] 딜런 에반스, 라깡 정신분석 사전, p. 150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메타언어
[5] J. Lacan, Le Séminaire XIX,… ou pire 가운데 1972년 2월 9일 세미나. 필자의 번역. 이에 대한 해석은 세르주 앙드레로부터 따온 것이다. S. André, “Clinique et noeud borroméen, ” Actes de L’Ecole de la Cause freudienne, 1982, no. 2, pp. 86〜94, 특히 p. 90 참조.
[6] J. Lacan, Le Séminaire XIX, …ou pire 가운데 1972년 2월 9 일 세미나 참조.
[7] J. Lacan, Television/A Challenge to the Psychoanalytic Establishment(1973), trans. D. Hollier, R. Krauss & A. Michelson, ed. J. Copjec, New York NY/London: W. W. Norton & Company, 1990, p. 10.
[8] J. Lacan, “Le Séminaire XXII, R. S. I.,” Ornicar?,1975, no. 2, p. 100(1974년 12월 17일 세미나). 필자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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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써주신 글 잘 읽고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가수 이랑의 노래 ‘나는 오늘’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다만 글쓰는 시간을 확보해야만 한다. 글 없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화자는 삶에 고충이 있어서 정신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글(문자)이 상징계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화자가 실재의 무시무시함에서 도망쳐 도피할 수 있는 곳으로서 글쓰기를 이해했는데, 것보다는 상징계 내에서 욕망하는 주체가 되지 못한 내담자(화자)가 스스로 글쓰기를 통해 주체 재구축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신을 미치지 않게 하는 출구같은 역할을 하면서요.
안녕하세요,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댓글을 너무 늦게 남겨서 죄송합니다 ^^;) 실재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인간이 그나마 고통스러운 현실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언어라는 최고의 상징체계를 통해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