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성장심리학의 정신분석 비판에 대한 반박, 『성장심리학 – 건강한 성격의 모형』, 듀에인 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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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드는 길 걷기

1. 정신분석이 개인적으로 특별한 이유

부모의 욕망에 종속되거나, 아이 입장에서의 폭력적인 경험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은 정신분석이 인류 역사에 기여한 가장 큰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이해될 수 없었던 (외상적) 사건이 불러 일으킨 두려움은 우리를 증상 가운데 머물게 만들고, 따라서 분석가의 일이란 환자의 손을 잡고 그 때의 사건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애도) 돕는 것이다.

분석가 관련 글들
신경증의 원인과 예방
50년 경력의 정신분석가가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
라캉의 ‘분석가의 욕망’이 완성되기까지

필자 또한 이런 서적들을 통해 고통의 원인을 알게 되고, 분석 과정을 통해 회복을 경험하게 되면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을 수 있었다. 아직 원인 모를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을 많은 분들에게 의미있는 내용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이런 글쓰기를 지속하도록 이끌어 주었던 것이다. 분명 사랑을 통한 구원의 확신은 그 기쁨으로 인해 의무에 기꺼이 순종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예수 부활 사건 이후 목숨을 바쳐 복음을 전한 제자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경험 덕분이었다. 야속한 일이지만 이처럼 기독교적인 사랑과 복음, 구원에 대한 확신은 평생을 다닌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바로 정신분석적 경험을 통해 온전히 이해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 교회 내에 진리가 없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핵심 가치 (믿음, 소망, 사랑 등) 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고민의 부재, 성경 유일주의의 폐쇄성이 오늘날 교회의 영향력을 잃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성경의 연역적 진리는 인간의 귀납적 진리와 끝없이 맞부딪치며 그 날카로움을 더해가야 하지만, 지젝이 문제시 하는 ‘실재의 배제’ 현상은 오히려 교회 내에 더욱 만연해 있는 것은 아닐까. 인본주의로 인한 순수성 훼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좀처럼 자신의 영역을 넓히지 못하는 모습 (물질적 영역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은, 우리가 여전히 중세 시대의 기독교 – 신과 관련된 질문, 정신에 대한 인간적 탐구를 죄악시 여겼던 – 를 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사실 어쩌다보니 기독교 비판을 하게 됐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구원의 기쁨을 실천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그런 모습들이 한국 교회 전반에 걸쳐 의미있게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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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Unsplash)

2. 성장심리학의 문제인식에 대하여

정신분석과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서론이 좀 길어졌는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필자의 경우 심리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상향을 찾아나서는데 정신분석의 도움을 결정적으로 받았지만 딸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서는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아이를 신경증적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인내하며 공격성, 잠재력 등을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문제와 원인을 안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죄를 허다하게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성장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아는 것에 있었다. 세상의 많은 원리가 그렇듯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문제 해결과 성장 방법의 두 축이 함께 공존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왔던 것이다. 지난 8월, 유대인 관련 책들에 대한 리뷰를 쓰기 시작하면서 남겼던 고민이 바로 이런 부분 – 단점을 개선 (정신분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점을 극대화 (유대인 가정 교육)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결론 – 이었고, 저자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자신의 성장심리학 연구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전통적인 인간관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왜냐하면 행동주의나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 본성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인간이 최대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 능력을 무시해 왔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은 행동주의가 인간을 기계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즉 “규칙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복합적인 조직”을 인간으로 보는 것이다. 개인은 질서정연하며 규칙적이고, 이미 결정된 유기체라고 묘사된다…. 정신분석학은 인간 본성의 병들고 불구인 면만을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정신분석학에서는 신경증적이고 정신병적인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행동주의나 정신분석학 그 어느 것도 인간의 성장을 향한 잠재 능력이나 현재의 우리보다 좀더 나아지고자 하는 욕망을 연구하지 않았다.
pp. 14 – 15

물론 저자의 주장에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다른 학문 분과에 대한 비판을 가할 때는 그 분과의 상징적인 인물의 일부 주장에만 국한해 전체를 바라보는 문제가 있기 마련인데, 저자의 경우도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에 대한 부분적인 지식만으로 그런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였다. 저자가 꼽은 7명의 성장 심리학자들은 어린 시절 갈등의 영향력을 부정하진 않지만, 그 성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성장심리학은 과거의 생물학적 본성과 환경적 여건을 뛰어넘어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 심리학이라고 주장한다. 근데 사실 이 믿음은 정신분석도 동일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사실상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증상 자체가 이미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성장을 향한 욕망을 대변한다. 또한 성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없이 어떻게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까? 물론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출발점 자체가 증상의 원인과 해결에 맞춰져 있다는 점과 무의식적 동기를 교정하기 위해 폭력적 해석을 가해온 전통 정신분석 방식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근 · 현대로 넘어와 증상 극복 이후 성장의 원동력까지 영역이 확장된 것을 알았다면 섣불리 위 같은 주장을 펼치긴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저자의 지적처럼 증상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지 않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따를만한 심리학이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필자의 경우는 그 방법을 성공적인 삶을 입증해 온 유대인의 교육 방식에서 찾았던 것이고, 저자의 경우는 심리학이라고 하는 학문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니까. 이런 배경 하에서 저자는 7명의 학자들을 ① 이론의 체계성과 ② 현대 심리학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 선별했다고 밝힌다. 소개한 학자들 중 융, 매슬로, 프랑클 외에는 모두 처음 접하는 이론가들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저자의 궤적을 따라 각자의 이론을 간단히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저자들의 책을 직접 읽는게 가장 좋겠지만 (기본적인 예의기도 하지만), 선택과 집중을 해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을 이런 입문서를 통해 활용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싶다.


* 표지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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