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와 작별하기
언제나 아침이 되면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기저귀를 갈아주는게 가장 먼저 해야할 일 중 하나였는데, 어느 때부턴가 그 양이 점점 줄어들더니 어떤 때는 무심결에 뜯었다가 새 것이어서 당황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기저귀 떼는 연습은 24개월 이후부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팬티를 입혀놓으면 기저귀인줄 착각해서였는지 거리낌없이 볼일을 봐 곧 후회를 하고 다시 채워주곤 했었다. 하지만 어느새부턴가 집에 있을 때는 기저귀를 벗고 볼일을 볼 정도로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덕분에 가장 어려운 과제 – 잠잘 때와 야외에 나갈 때 – 에 도전해 보는 것에도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아직은 불안한 마음에 조금 더 미루는게 어떨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아내는 아이가 실수를 했을 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이미 끝낸 모양이었던지 쉬 마려우면 꼭 얘기하라고만 당부하고 여벌 옷과 함께 기저귀 없는 일상을 맞이했다. (엄지 척!)그렇게 2주가 지났고 염려했던 상황은 ‘아직은’ 벌어지지 않았다. 혹시 몰라 바지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하고 시간이 좀 지난 것 같으면 쉬 마렵지 않냐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자기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곧바로 와서 얘기해 불안한 마음은 자연스레 옅어져 갔다. 오늘은 그런 불안감이 비로소 안심으로 바뀌면서 올라오는 만족감에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물론 앞으로 한 두 차례 실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금방 털어내고 아이가 원하는 “언니의 모습”에 성큼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에 대한 고마움
아이에게 한 가지 고마운 부분이 있다면 ‘스스럼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에 대한 표현이 분명하고,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수용되어 (때론 설득을 통해 조정해 주기도 하지만)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일종의 ‘확신’을 갖게 된 듯 싶었다. (책을 통해) 아동 상담사례에서 자주 보게 되는 것은 다양한 이유에서 비롯된 부모의 불안이 아이에게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주는 상황이다. 분명히 무언가 잘못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아이는 자신의 어려움을 고착화 된 성격으로, 심할 경우 신체적 증상으로 표현한다. 그렇게 자녀는 ‘부모의 증상’이 되어 감추고 싶은 부모의 고통의 진실을 대변하게 된다. 평소에 아이의 감정 상태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 것은 부모가 얼마나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아이의 건강한 솔직함, 그리고 새롭게 주어지는 것들을 편안하게 감당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고맙게 다가왔다. 우리가 아무리 잘해준다고 한들 아이가 그것을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거부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으로, 적어도 아직까지는 우리의 태도가 아이에게 잘 받아들여진 듯 싶었다. 학습된 두려움, 즉 내가 해야 할 무언가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얻지 않기 위해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편안함에서 오는 자연스러움을 어색하게 만들고, 그런 긴장 상태가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실수와 다그침의 악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기에 스스럼이 없다는 것은 앞으로도 아이의 성장에 있어 중요한 신호로 여겨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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