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뜻 밖의 대소동
우리 아파트의 분리배출 시간은 매주 토요일 7 ~ 11시이다. (가끔씩 세대 수가 적어서 다른 아파트에 좋은 일정을 빼앗겼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주말 근무를 나간 아내를 뒤로하고 아이와 함께 맞게 된 토요일 아침이었다. 느지막히 일어나 재활용 쓰레기를 한 번에 가져가기 위해 정리하면서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 쓰레기 버리러 갈 건데 같이 갈래?”
거실에서 놀던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럼 아빠 준비할 동안 옷 갈아입으라고, 쓰레기 버리고 놀이터 갔다 오자고 한 뒤 하던 일을 이어갔다. 그렇게 큰 박스에 구겨넣어 정리한 쓰레기를 현관에 갖다 놓았을 때, 시간은 어느새 10시 40분을 지나고 있었다. 너무 여유를 부렸나. 항상 시간이 촉박할 때 뭔가 일이 나던데… 아니나 다를까 옷을 갈아입고 나온 아이의 표정이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레이스 달린 원피스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레이스 치마의 시작 부분이 거의 아이의 배꼽 위치까지 올라와 있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만도 했다. 마치 배바지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현관 앞에 앉아 치마의 시작 부분을 있는 힘껏 내려봤지만 이미 짧아진 옷이 늘어날 리 없었다. 그렇게 몇 차례 낑낑대다 결국 짜증을 내려고 하는 찰나에 얼른 말을 걸었다.
“우리 딸이 언니가 돼서 옷이 작아졌네. 근데 그거 그렇게 내린다고 안내려갈 것 같은데, 우리 다른 옷 입고 갈까?”
하지만 아이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씨름을 계속해 나갔다.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얼른 가야 돼. 안 이상한데 그냥 가면 안될까?”
“싫어.”
짜증이 가득한 말투로 실랑이하는 사이 어느새 시간은 50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고, 아이도 결국 참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 전개였다.
“시간 없어, 아빠 얼른 나가야 돼. 그냥 가자, 응?”
“싫어.”
“아냐 조금 더 있으면 쓰레기 못 갖다버려서 얼른 나가야 돼. 어떻게 할거야? 옷을 갈아입고 갈거야 아니면 그냥 입고 갈거야. 아님 그냥 집에 있을래?”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 옷을 같이 당겨보기도, 갈아 입게 하려고 벗겨보기도 했지만 아이는 몸을 비틀며 아빠의 시도를 완강히 거부했다. 말 그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50분이 넘어간 상황. 이제는 마지막 수를 쓰는 수 밖에 없었다.
“안되겠다. 너 그냥 집에 있어. 아빠 혼자 갔다 올게. 알았지?”
그렇게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자 아이는 더 크게 울면서 아니라고 외쳤다.
“그럼 어떡하라구, 아빠는 지금 나가야 돼.”
“갈아입을 거야.”
다행히 그제서야 겨우 기다렸던 대답이 나왔다. 그렇게 곧바로 방으로 데려가 트레이닝복을 건넸지만 취향이 분명하신 따님은 이를 뿌리치고 외출할 때 입는 옷을 입고는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2. 인내를 가르쳐 준 책 읽기
한 가지 신기했던 것은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예전처럼 순간적인 분노가 올라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지난 번 아이의 거짓말에 감정이 동요되지 않았다는 글을 남긴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좀 더 긴박한 상황이었던 터라 스스로도 의문이 들었다. 정말 현명한 부모님들의 양육 방식을 배우려고 했던 것과, 꾸준히 기록해 온 반성일기 (쿨럭;) 가 효과가 있었던 걸까? 확실히 ‘아이를 존중해줘야 된다’는 생각만으로는 아이가 불러 일으킨 한계를 감당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존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접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그렇게 반응하는게 당연하다고 굳게 믿게 된 듯 싶었다.
덕분에 아이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난 후 곧바로 차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문 밖을 나서면서부터 곧바로 편안하게 – 갈아입은 옷은 마음에 드는지, 아빠 혼자 가려고 해서 미안하다며 – 말을 건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과정으로 인해 아이는 자신이 드러냈던 부정적인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억누르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도 짜증을 내면서라기 보다는 정말 혼자 갈 요량으로 (몇 번 혼자 다녀온 적이 있기에) 덤덤하게 이야기 한 것이 아이에게는 상황의 긴박성만을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화를 내면서 나가려고 했다면, 긴박성에 더해 어쩌면 그 모습이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르고 울고만 있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3. 문제의 진짜 원인
하지만 여기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아이를 다그치게 되는 상황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점이었다. 앞서 시간이 촉박할 때마다 뭔가 일이 났었다고 하는 예감을 언급 했었는데, 실상 촉박한 시간을 만드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충분히 일찍 준비할 수 있었음에도 출발하기 직전까지 최대한 미루다가 막바지에 가서 서둘러 준비하는 필자의 오랜 습관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만의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싶은 일종의 강박에서 비롯된 방식이었지만, 그나마 혼자였을 때나 아내와 둘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아이가 어릴 때는 조금 더 넉넉하게 준비하기도, 때론 아이를 핑계로 합리화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협조해줄 수 있고 또 스스로 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이 들자, 묻어 두었던 습관이 무섭게 우리의 관계를 파고 들었다.
사실 오늘 뿐 아니라 약속된 시간이 있을 때 (특히 등원할 때) 이런 상황은 종종 벌어졌다. 5분만 더 일찍 나갈 채비를 했으면 중간에 딴 짓을 해도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텐데, 이동 시간만 고려하다보니 조금만 변수가 생겨도 금세 조급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늘 고쳐야겠다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아이는 분명한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었다. 예상하기 어려운 자신의 행동을 여유있게 고려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갈등을 겪게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아빠를 난처하게 했다는 점도 잊지 않고 표현해 주었다.
“아빠 아까 전에 성질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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