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4일에 있었던 일이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뒹굴거리던 둘째가 엄마가 양치하고 있던 사이 부리나케 기어가 언니의 방으로 향했다. 언니 방은 동생에게는 동화 속 세상 같은 곳이었다. 언니와 함께 있는 한 결코 들어올 수 없는 ‘욕망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방 안으로 발을 딛기가 무섭게 쫓아내거나 낌새만 보이면 어김없이 문을 닫아버리는 첫째의 행동은 동생의 욕망을 갈수록 강화시켰고, 불쌍하긴 했지만 그래도 언니의 방이고 소유물들이다 보니 우리가 둘째를 데리고 나오는 게 일반적인 중재 방식이었다.
그때도 첫째가 방에 있어서 혹시나 문을 빠르게 닫을 때 둘째 손이 다치면 어쩌나 문득 염려가 됐다. 그나마 요즘에는 동생이 도착하기도 전에 문을 먼저 닫는 경우가 많아 큰 걱정은 하지 않고 식사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둘째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한 번 크게 울음소리를 내고는 숨이 넘어갈 듯 길게 들이쉬면서 더 큰 울음을 이어갔다. 그만큼 많이 아프다는 뜻이었기에 놀란 마음에 달려가 아이 손가락을 들었더니 더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겨우 아이를 도닥이면서 조심스럽게 밝은 곳으로 데려가 손을 다시 살펴봤다. 다행히 피가 나진 않았고, 손톱에 하얀 선이 생긴 것으로 보아 문 아랫쪽에 손톱 윗 부분만 좀 강하게 찍힌 것 같았다. 첫째가 정말 세게 닫았으면 손가락이 벗겨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그 정도까지 힘을 주지는 않은 것 같아 천만 다행이었다.
1. 갈등
이제는 언니를 혼낼 차례였다. 아내는 세상 부드러운 말투로 문을 그렇게 세게 닫으면 어떡하냐면서 문 닫을 때마다 불안했다고, 동생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하면 어떡하냐며 주의를 줬다. 그러자 첫째는 모르고 그랬다며 억울해 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더 화가 나 굳은 표정으로 첫째를 바라보았고, 그렇게 간단하게 대화가 끝나자 첫째는 자기 감정에 취해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그나마 큰 일이 났던 건 아니니 일단 밥을 먹고 쓰레기를 버리려고 준비했지만, 아내에게 이건 혼내야 할 상황인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모르고 그랬다는 합리화를 받아주기만 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이 생각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감정은 분리배출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더욱 강화되었다.
그렇게 들어가자마자 동생에게 가서 사과하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아이 방 불이 꺼져 있어 안방으로 갔나 싶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안방에도 없어 아내에게 물어보니 와서 사과하고는 자기 방에 가 불을 끄고 누웠다고 했다. 그래도 사과를 했다고 하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져 어떻게 사과하게 됐냐고 물어봤다. 아내는 첫째에게 와서 사과하라고 하니 그렇게 해줬고, 뭐 때문에 사과하냐고 물어보니 아프게 한 것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나는 지금이야 동생이 크게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과, 그렇게 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보다 분명히 알게 해줘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러자 아내는 안 그래도 동생만 감싸고 돈다고 생각할텐데 그렇게 강하게 하면 어떡하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첫째의 상실감을 덜어주기 위해 오랜 기간 신경 써 왔음에도, 이렇게 번번히 무례하고 이기적인 태도를 보여 만성 분노 상태였던 나는 그건 지 운명인거라고 퉁명스럽게 답하고는 거실로 나와 버렸다.
2. 화해
아무래도 좋지 않은 감정에 사로잡히면 좀처럼 다른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운데 그 때 상황이 딱 그랬다. 아이가 사과했다고 하니 일단은 그냥 넘어갔어도 될 일이었는데 계속해서 생각이 났다. 무슨 일이든 매듭을 지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인데, 결국 불이 꺼져 있는 아이 방으로 들어가 누워있는 아이의 볼을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역시나 아직 누운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아이는 금방 눈을 뜬 뒤 올려다 보았고, 나는 동생에게 사과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아이는 자기가 두 번이나 사과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나는 잘했다고 맞장구 쳐주면서 아무리 모르고 했더라도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쳤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이도 이제는 마음이 모두 풀렸는지 거부감 없이 잘 들어주었고, 엄마가 이미 기도는 해줬다고 해 그럼 이제 마음 편히 자라고 하니 “불편해~”라며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장난끼가 살아난 아이 모습에 찜찜했던 마음도 한결 풀리면서 더 사랑스러워 보였고, 비슷한 마음이었을 아내에게도 상황을 설명해 주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아직은 자기 서운한 감정을 잘 주체하지 못하는 만 5세의 아이지만, 그래도 대화를 통해 풀어갈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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