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처한 어려움은 무엇일까? 아마 가장 큰 문제로 근로소득만으로 돈의 가치 하락을 감당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고물가에 신음한지도 꽤 오랜 기간이 지난 것 같은데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고, 혼란한 국제 정세에 환율까지 급등하면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맞벌이가 당연시 된지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는 본업 만으로 삶을 꾸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쪼그라드는 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갈수록 멀어지는 경제적 자유 달성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투자나 부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다고 본업만큼 시간을 들이긴 어려우니 노성비 (노력 대비 수익) 를 따지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 된 듯 싶다. 저자가 현대 자본주의의 본질이라고 지적한 불로소득주의 경향이 강화된 것이다.
참고로 이 책은 2020년에 출간 (한국에는 2024년 3월) 되어 코로나 이후의 세계상을 담고 있진 않다. 비판의 주된 대상은 불로소득 기업들인데, 저자가 아마 다음 책을 쓴다면 코로나 이후 불로소득주의가 모든 개인에게 공고히 자리잡았다고 평가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그가 왜 오늘날을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라고 통칭했는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참고로 분량상 글은 2부로 나누어 공유하고자 한다. 이번 글에서는 불로소득 자본주의의 핵심 요소와 그 결과로써 영국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2부에서는 저자가 꼽은 7개 부문에서 영국 기업들이 어떻게 불로소득주의를 강화시킬 수 있었는지, 그리고 저자의 대안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1. 불로소득 자본주의의 핵심, 지대
자산 (가치 있는 소유물) 은 사적 소유로 정의되는 자본주의의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부를 창출하는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자산에 대한 이득 (지대) 을 과도하게 취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일반적으로 지대는 경제적 필요를 초과한 이득으로 정의되는데, 경제학계에서는 초과 이익의 원인을 두고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진다.
1) 지대의 정의
① 주류 경제학자들은 시장 독점 (경쟁 부재 또는 제한) 으로 인한 초과 이득으로, ② 비주류 학자들은 자산 독점으로 초과 이득을 추출하는 것으로 정의 내리는 식이다. 그러나 각각의 입장만 따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시장을 독점하지 않아도 카르텔을 형성해 시장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고, 희소 자산을 독점해도 상품성이 없다면 지대가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저자는 비주류적 정의를 토대로 두 관점을 통합하는 입장을 취한다. 독점적으로 통제하는 희소 자산 (비주류 관점) 이 경쟁이 제한적이거나 없을 때 (주류 관점) 발생하는 초과 이득을 지대라고 정의한 것이다.
2) 지대에 대한 학자들의 생각
지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저자는 대표적인 예로 마르크스와 케인스를 꼽는다. 마르크스는 당시 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이 (토지 지대), 케인스는 이자 놀이를 하는 금융가들 (금융 지대) 의 지대 추구를 비판하면서 이들이 산업, 경제적 발전으로 인해 점차 약화될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 다르게 지대는 현대 자본주의의 필수요소로 자리잡아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애초에 지대는 자본주의에 근본적으로 내재된 씨앗, 즉 이미 내재된 ’불로소득 동학dynamics‘이 강화된 자본주의일 뿐이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지대의 역할을 정면으로 부각시킨 건 『21세기 자본』 (2013) 의 저자인 토마 피케티였다. 저자는 그를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피케티의 방정식 r > g 가 명백히 불로소득주의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를 초과하는 경향을 불평등 증가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한 그의 통찰은 현대 자본주의 이해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3) 지대의 종류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으로 지대를 지목하는 부분에서 또 다른 문제는 지대를 일으키는 자산 유형이 부분적으로만 다뤄졌다는 점이다.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분야가 금융과 디지털 플랫폼 지대인데, 저자는 불로소득주의 경향이 두드러지는 7개 자산 유형을 총망라 해 자세히 분석한다.
2. 영국 불로소득 자본주의의 역사
그러면 전 세계에 만연한 불로소득주의는 어떤 과정을 거치며 형성 됐을까? 저자는 불로소득주의의 대표 주자로 영국을 꼽으며 해당 경제를 깊이 파헤친다. 산업혁명 (약 1760년 ~ 1820년2위키 백과, 산업 혁명) 의 발원지였던 영국이 실제로 산업국가였던 적이 없었다는 의외의 지적과 함께 말이다.
- 1809 ~ 1879년 : 백만장자의 90%가 지주 (토지 소유자들이 산업 부르주아 이미지 재구축에 성공)
- 1900년 초 ~ 중반 : 세계 대전 여파로 불로소득주의 제압 (토지 공공화)
- 1950 ~ 70년 : 국가 자본주의 (카르텔화 자본주의)
- 1970 ~ 현재 : 세계 자본주의 (불로소득 경제화 자본주의)
- 1970년대 말 이래 자본가 부활 (위기 때마다 정부와 납세자에게 비용 전가)
- 1979년 마거릿 대처 수상 취임 (서구 역사학 불로소득주의 본격화 시점으로 봄)
- 대처 이전 : 케인스주의, 사회민주주의
- 대처주의/포스트대처주의 : 신자유주의
위 부가가치 점유율 차트를 보면 비즈니스 서비스와 금융 부문이 제조업과 X자로 교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랜 기간 세계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한 영국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 실제 금융의 기여도는 얼마 되지 않는다. 2010년 기준 비즈니스 서비스 분야 (계약 지대) 가 75%를, 금융 분야가 25%를 차지해 제조업과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3. 불로소득주의 부활의 원인, 신자유주의
1970년 이후 영국에서 불로소득자들이 부활한 이유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이념에 따라 통화, 재정, 거버넌스 (국정 운영), 자원 배분 등 모든 영역에서 재산권 보호가 강화되면서 ① 과점적 지대 추구 관행을 촉진시키고, ② 대기업의 경쟁적 참여 압력을 효과적으로 덜어주었기 때문 (경제학자 호세 팔마) 이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불로소득 기업들이 역대 정부에 불로소득자 친화적 정책을 적극적으로 촉구하며 로비활동을 벌였다고 한다. 보수당의 기부금이 세 개 부문 (금융, 석유 가스, 부동산) 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 이를 방증하는데, 행정부처도 매우 수용적으로 대응해 왔다고 한다. 덕분에 불로소득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① 정책 주도적 변화
- 자산 부여 권리 강화로, 불로소득자 통제 자산의 상업적 활용 높임
- 시카고학파 정통주의 영향으로 경쟁 정책 중립화 (반독점 집행 약화)
- 지대 쉽게 창출할 수 있도록 재정, 통화정책 운용
- 긴축 통화 : 70년대 후반 높은 이자율 뒷받침
- 조세 정책 (영향 더 광범위) : 자연자원, 지식재산 지대 특정 유형에 상당한 세금 혜택 제공
② 불로소득자 이용 가능 자산 범위 확대
- 모든 영역에서 사적 소유자산 점진적 창출, 지대 기회 증대
- 민영화로 인프라, 토지 영역 확대 (민영화 분위기 북반구 동일했으나 대처 정부 이래 영국이 최고였다고 함)
- 금융규제 완화, 자유화로 부채 시장 성장
- 디지털 플랫폼, 계약 지대 폭발적 성장 (비즈니스 서비스)
- 자산 소득 뿐 아니라 자산 자체 가치도 지원 (특히 금융, 토지에서 가장 쉽게 파악 가능)
이처럼 불로소득주의의 원흉이 된 신자유주의는 오랫동안 비판을 받아 왔다. 다만 기존 입장이 주로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것 (필요한 노력을 다하지 않아 소득을 취할 자격이 없음) 에 초점을 맞췄다면, 저자는 그런 이념이 낳은 정치경제적 효과를 체계적으로 입증하는 것에 주안을 둔다. 행위에 대한 도덕적인 평가도 중요하지만, 그런 행위가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4. 불로소득주의 부흥의 결과, 장기 경기 침체와 불평등 심화
살펴본 것처럼 지대의 본질은 독점이고, 독점의 반대는 경쟁과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이 사라진 곳에서는 혁신을 위한 동기가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영국의 경우 자본 투자 (1970년대 GDP의 20% 이상 재투자 → 2017년 17%로 202개국 중 184위), R&D 투자 (1987년 GDP 2% 상회 → 2017년 1.66%로 OECD 31개국 중 17위) 감소와 생산성 하락 등 금융, 비즈니스, 부동산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에 반비례해서 감소 중이다.
1) 노동 소득 불평등
케인스는 자본과 노동 소득이 비슷한 비율을 유지한다고 보고했지만, 1970년 이후 노동 소득의 비율은 급락하기 시작한다 (세계적으로 5% 감소, 영국은 70년 70%에서 오늘날 55% 수준 차지). 이런 현상이 벌어진 원인으로 일반적으로는 기술의 노동 대체를 꼽지만, ① 저자는 독점, 그 중에서도 노동자가 선택할 기업의 수가 부족해 임금 억제가 용이한 수요독점을 핵심 원인으로 지목한다. ② 거기에 임금의 방벽 역할을 하는 노동조합이 크게 약화 (80년 70%가 단체교섭 통해 임금 결정 → 2018년 26%, 민간은 15%로 감소) 되고, ③ 외주화, 플랫폼 불로소득 업체 종사자가 증가 (2019년 500만 명 이상) 하면서 쥐어짜기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도 묵과할 수 없는 문제다.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도 심화되는 추세다. 노동자의 급여를 결정하는 최상위 계층의 급여 인플레이션과 억제 실패는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불로소득 기업의 계약 노동자로 종사하고 있는 상당 비율의 변호사 (31만 명), 회계사 (15만 명) 도 불로소득의 열매를 향유하고 있다. 자산 가치 상승으로 불로소득자가 된 개인 (프티블로소득자) 도 존재해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중이다.
2) 부의 불평등
그나마 부의 불평등 측면에서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보다 낫다고 하지만 착시효과라고 일축한다. 사회주택을 소유지 거주 주택으로 전환해 총자산 격차를 완화한 측면은 있으나, 장기간의 저금리로 버틸 수 있었을 뿐, 가계부채 폭등은 고스란히 금융 지대로 흘러들어갔기 때문이다 (30년 전 금융자산 가치 약 2,000억 파운드에서 곧 10배로 커질 예정이라고 한다).
이상 살펴 본 내용이 이 책의 개요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선두 주자로써 영국을 꼽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나라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을 듯 싶다. 가계, 기업, 정부 모두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은 가운데 각자도생, 불로소득 지향성은 나날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악순환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다음 글에서 영국의 부문 별 사례와 저자의 해결방안을 통해 생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 이미지 출처 : Unsplash
2부가 기다려집니다 해결방안이 뭘지…
관심 갖고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하는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데 최대한 빠르게 남겨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