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에서 벗어나야 할 3가지 이유, 『월급 전쟁』, 원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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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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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일이다. 나는 분명 4년 전에 이 책을 읽었고 내용이 괜찮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고 그렇게 오래지 않아 알라딘에 팔려 나가는 신세로 전락했다. 당연히 기억에 남는 내용도 없었기에 사내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에도 제목을 얼핏 들어봤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읽었다는 사실도 집으로 돌아와 읽었던 기록을 뒤적여 본 후에야 겨우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지금의 나는 그 때와 무엇이 달라졌기에 같은 책에 대한 의미가 이렇게 다르게 와닿게 되었을까? 여러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읽어온 인간 정신과 관련한 수많은 책들이 사고의 폭을 넓혀 주었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이 블로그를 통해 정리해 나갈 계획이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알게 모르게 삶을 대하는 태도가 진지해진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욱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나만의 생각으로 책의 내용을 재구성하기 시작’ 했다는데 있다. 한 권의 책에는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지식들이 많이 녹아있다. 전에 읽었을 때도 고개를 끄덕이게 했던 부분이 많았고, 그랬기에 전반적으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부분 부분 좋았던 내용들을 두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기에 그 기억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소멸됐고, 결국 어떤 내용도 기억에 남지 않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과거에는 내 책이어서 밑줄을 쳐가면서 읽었음에도 정리하지 않아 날아가 버렸던 지식이, 빌린 책임에도 사진으로 찍어 ‘정리한’ 지식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내용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 서론이 이처럼 길어진 이유는 책을 대하는 서로 다른 태도의 결과가 너무나도 인상 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이렇게 새롭게 깨달은 점을 나누고 싶었다.

1.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한, 헬조선의 신노예제도는 더욱 공고해질 수 밖에 없다.

무슨 말일까. 촛불집회를 통해 세계에 귀감이 될만한 정치적 변혁을 이끌어 내었고, 보다 똑똑한 시민, 똑똑한 소비자가 되어 의식있는 시민사회로 거듭나는 중인데?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절대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의 힘과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 이로 인해 보다 나은 정치사회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작 우리를 노예화에 복종시키는 권력은 이미 우리의 무의식 속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숨겨진 권력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마치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채 감기에 걸리듯,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원인에 혼란을 느끼며 더욱 굳건해진 헬조선의 절벽 앞에서 깊은 좌절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분명하게 알아야만 한다. 이제 저자가 이야기하는 바를 살펴보자.

1.1. ‘인플레이션을 통한 통화가치 하락’을 권력이 가장 선호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일반인들이 그 위험성을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① 정부의 재원 마련, 당신이 정책 입안자라면 어떤 방식을 선택하겠는가?

정부가 국책 사업을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을 충당하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먼저 가장 직접적이지만 가장 큰 저항을 야기하는 ‘세금 인상‘이 있다. 하지만 이는 현 세대의 빚을 다음 세대에 전가시키지 않겠다는 ‘책임감’이 깔려 있는 모범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어느 부모인들 자신의 빚을 자녀에게 떠넘기고 싶겠는가. 하지만 대리인들의 방만하고 사심 지극한 경영을 익히 지켜본 우리로서는 그 어떤 적법한 세금 인상에 대해서도 좋은 시선을 가지기 어려운 것이 서글픈 현실이다. 다른 방법은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다. 국가 신용도를 보증으로 한 담보 대출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실상 이는 현 세대의 빚을 다음 세대로 떠넘기는 것으로, 더군다나 채권금액은 분명히 눈에 보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익히 들어온 ‘양적 완화’ 즉, 화폐 발행을 통해 재원을 스스로 공급하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 이 방식이 선호될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는 서민 빼고 모두에게 좋기 때문이다.

정확히 두 가지 이유에서 이 방식은 정부에게 매우 매력적인 빚 갚기 방법이다. 사람들의 저항을 덜 받을 수 있고, 통화 가치 하락으로 빚의 크기 자체가 줄어드는 (통화 가치 하락분 만큼 빚을 갚아버린 셈이 되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급한 통화는 수많은 경제 주체들을 통해 장기간에 거쳐 파급되기에 그 영향에 대한 분석을 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당장 눈에 띄는 변화도 없기 때문에 크게 문제 삼기 어렵다. 하지만 정확히 두 번째 효과에 대해 우리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만 한다. 월급 인생을 사는 우리들 절대 다수의 서민들은 같은 돈을 받더라도 통화가치가 떨어지는 것만큼의 돈을 사실상 빼앗기는 것과 같은 악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게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은 결코 단순한 ‘느낌’만이 아닌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는 것이 월급쟁이들을 옥죄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점은 알겠다. 하지만 다른 권위체는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가? 어떤 점에서 서민들에게만 손해를 끼친다는 뜻일까? 인플레이션의 영향이 미치는 곳은 ‘현금성 자산’에 한정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얘기에서 알 수 있듯, 돈의 가치를 대체할 수 있는 상품 – 부동산, 금, 주식 등 – 을 가진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의 함정을 회피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하지만 이런 실물자산은 일반인들이 충분한 양을 소유하기에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결국 인플레이션은 부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② 대기업은 마음 놓고 인플레이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자국의 통화가치 하락은 정부 입장에서도, 수출형 대기업의 입장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정책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두 집단의 이익이 함께하니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지난 10년 간 대기업 고용률이 제자리 걸음인 것을 보면, 기업 지원으로 인한 낙수 효과는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우리는 분명 다른 길을 찾아 나서야만 한다. 외국인들이 저렴한 가격에 우리나라 상품을 살 수 있는 수출형 대기업의 이익 외에 특별히 보험사의 경우도 그 혜택을 톡톡히 보는 업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연금보험이 그에 준하는 상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보험사는 고객들로부터 받은 돈을 현재의 가치에 맞게 실물자산에 투자해 실질 수익을 창출해 인플레이션의 함정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20년 후 그동안 모은 돈을 고객이 돌려받을 때에는 그들이 모은 돈은 물가상승률로 인해 실질적인 구매가치가 현저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채무를 갚기 위한 정부의 꼼수와 맥이 통하는 지점이다. 더군다나 대출금을 갚으면서 연금도 가입하는 일은 대부분 은행 차입이자율이 연금 투자 수익률보다 높기 때문에 부질없는 선택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필자도 지인 통해 하나 들어둔게 하나 있긴 하다.. ㅜㅜ) 게다가 상호부조 차원에서 탄생한 보험사들의 수익률은 날로 개선되고 있으므로 추천할만한 보험상품은 보험사 주식이라는 명언을 남긴다.

1.2. 조세 정책 또한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급여에 비율로 연동되는 직접세는 우리의 임금이 상승하면 동반상승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적은 폭의 세율 상승도 연봉이 상승되면 납부 금액은 그 이상 오르게 되는 현실에 처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인플레이션은 아니지만, 조세의 작은 움직임도 결코 쉽게 지나쳐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마찬가지로 ‘조세 저항이 적어’ 정부에서 관리하기 쉬운 간접세 문제이다. 이는 소득 수준에 따라 책정되는 직접세와는 달리 만인에게 평등한 사실상 가장 불평등한 조세 정책이다. (상품 가액의 몇 %로 책정되니 100만원을 벌든, 1,000만원을 벌든 납부하는 세금은 동일하다.) 2010년 기준 국세 대비 간접세 비율이 52.1%로 OECD 평균인 20%대의 2배 이상이라고 하니 우리가 얼마나 평등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감개가 무량할 따름이다. 더군다나 이런 간접세는 2008년 48.3%, 2009년 51.1%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하니 온갖 꼼수로 해마다 몸집을 불리고 있는 비대한 정부를 견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쳇바퀴는 더욱 튼튼해질 수 밖에 없다.
(간접세 비율에 대한 기사 자료 보완 ‘직접세보다 간접세 4배 더 내는 서민들‘)

1.3. 사회에 감사함을 환원할 줄 모르는 불한당 기업들은 다음 세대의 미래를 약탈한다.

필자도 사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일종의 ‘사회적 푸념’ 정도로 여기고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저자가 인용한 아브라함 매슬로의 이 글을 보고는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가 갖고 있던 편견이 한꺼풀 벗겨지는 느낌이랄까?

자사의 수익, 생산, 판매에만 목적을 두는 회사는 나를 비롯한 납세자들이 하는 일에 일종의 무임승차를 하는 셈이다. 내가 내는 세금은 학교, 경찰서, 소방서, 보건부 및 사회의 건강을 지키는 데 필요한 온갖 곳에 도움을 주고, 사회에서는 그렇게 길러낸 수준 높은 근로자와 관리자를 회사들에 제공해 준다. 건강한 기업은 성숙하고 훌륭한 교육을 받은 인격체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직무 태만자, 범죄자, 냉소적인 젊은이, 적의를 품은 사람, 전쟁광, 파괴 성향을 가진 사람을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기업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양질의 인력을 제공받는 것이다. 따라서 이 관계가 공정해지려면 기업들이 현재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줘야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세금으로 만든 도로, 항구, 공항 등을 통해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들은 실은 마땅히 이에 대한 감사함을 사회에 표시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과연 그런 기업이 몇이나 되는가? 오늘 자로 접했던 본사의 보복 조치로 인한 도미노피자 가맹점주의 자살은 씁쓸함을 넘어 분노를 더하게 한다. 저자가 밝히는 우리나라 실상은 어떨까? 2011년 기준 10대 그룹의 매출액 대비 기부금 비율은 자그마치 0.14% 이다. 하지만 기업이 소유한 재단에 기부하는 것도 기부금으로 간주해 실질적으로 다수의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경우는 지극히 미미하다고 할만하다.

2.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받는 돈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던 돈마저 떼이고, 그 남은 돈으로도 자력으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황량한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사실 이에 대한 해답들은 일면 공통적인 부분이 많이 있다. 그것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추구하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저자는 이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살펴보자.

2.1. 틀려도 좋으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위해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저자는 브랜드를 쫓는 우리의 소비습관을 지적한다. 실패 확률이 적을 수 있는 어찌보면 현명한 방식이지만, 그만큼 시장을 넓히고 고용을 촉진하며 결과적으로 사회가 성숙되는데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모든 수익은 궁극적으로 대기업에 흡수되어 돈과 브랜드만 남고 사람은 돈에 종속되는 결과로 그 체제를 강화시킨다. 바르셀로나의 KFC를 예로 드는데,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KFC가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객관적인 평가의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맥도날드나 KFC 같은 프랜차이즈 회사를 싫어하고 로컬음식점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래서 바르셀로나는 식당 어디를 가도 대체로 맛있는 편이고, 이 때문에 KFC는 도태되지 않도록 가장 맛있는 요리법을 고민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알다시피 유럽에는 와인이나 치즈, 가중가방, 시계, 양복점, 정육점 등 고집 있는 지역 장인이 오랜 시간 운영한 가게가 많이 있다. 그들의 집요함과 좋은 상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높은 안목이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뛰어 넘는 명품이 탄생하는 것이고, 어느 한 업체에 종속되지 않는 적절한 균형점이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인다. 2012년 국민은행 <한국의 부자 보고서>에서 자녀에게 바라는 직업을 조사했을 때 부자가 아닌 일반 가구의 경우 공무원(17.8%), 교사(16.9%)가 1,2위를 다투는 것만 보더라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얼마나 ‘안정성’에 압도되어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자녀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비율은 4.5%로 나타났는데, 재미있는 점은 부자 가구의 경우 이 비율이 34.5%로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실질적인 부를 창출할 수 있는 비결이 개인의 ‘동기’에 달려 있다는 점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2. 결국 자신만의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익숙한 정답만을 쫓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추구하다 보면 분명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저자가 추천하는 삶의 방향 또한 마찬가지이다. 남들이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절대로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없다는 것, 즉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능력을 만드는 데 좀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대박, 한탕 등의 일시적, 물질적 행복이 아닌 스스로의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한 땀 한 방울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등쳐 먹으려는 탐욕스러운 대상들로 가득하다. 이미 구조 속에서 태어나 구조의 구성물이 된 우리로서는 자칫 탈출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나의 만족을 채워줄 수 있는 대상을 향해 끊임없이 몸을 내맡긴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이전 세대들은 투지가 없다는 둥, 배부른 소리를 한다는 둥 비아냥거리지만 분명히 말하자면 그들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그들 스스로도 사실은 그들이 주장하는 그런 삶을 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나라의 비극은 사실상 세대를 뛰어 넘는 역사적 절규에 가깝다. 탈진한 사람에게 물과 쉴 곳을 제공해주는 게 먼저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육체적 세계 뿐 아니라 정신 세계에서도 탈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점이 이러한 비극의 악화를 부채질한다. 우리는 먼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서로 다른 서로를 격려해 줘야만 한다. 상대를 비난하는. 아니 실은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는 자기를 용서하는 것에서 출발해 이를 바탕으로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튼튼한 사회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제서야 저자가 주장하는 ‘자신만의 상품을 만들기 위한’ 몸부림은 비로소 꿈틀거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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