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부모가 힘든 이유 (영국 부모도 각자도생), 『디지털 세대의 아날로그 양육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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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혼자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아이
154. 디지털 세대의 아날로그 양육자들

요즘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보면 놀라움보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크게 다가온다. 1년 전 등장한 Chat GPT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양한 영역에서 AI를 활용한 서비스가 넘쳐나면서 사람들을 자동화 경쟁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언어를 이해한 듯 의사소통을 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그림을 그리며, 글 만으로도 수준 높은 영상을 만들어 관련 업계 사람들을 긴장 시키고 있는 상황. 당장 어른들은 차치 하더라도 지금보다 기술이 훨씬 발전한 사회에서 살게 될 자녀들은 앞으로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텍스트로 생성된 영상 (* 출처 : Open AI, SORA)

이 책은 현재보단 위기감이 덜했던 지난 2015년 ~ 2016년, 18세 미만의 자녀를 둔 런던 73개 가정의 양육 방식을 연구한 보고서이다 (2020년 출간). 공동 저자 두 사람은 희망과 불안의 양극단을 오가는 디지털 시대의 딜레마를 다양한 계층의 부모들이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자세히 들여다 본다. 이들이 비록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예측한다거나 놀라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와 놀랍도록 비슷한 고민을 공유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준다.

1. 후기 근대 부모가 처한 상황

저자가 보기에 영국 부모들은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해 고군분투 중이다. 양육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짊어진 상태에서 이렇다 할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1. 세계적인 흐름

‘후기 근대의 협공 작전’이라고 표현한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 기술 자본주의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① 급속도로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은,
② 개별화와 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이념 강화와 더불어
③ 시장주도 성장과 복지 혜택의 축소,
④ 거짓 정보, 또는 공포를 조장하는 미디어,
⑤ 자신들의 강점만 과장되게 내세우는 기업에 이르기까지
자녀를 보호해야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모든 고민거리를 떠안도록 만들었다.

1.2. 부모에 대해 무지한 전문가들

전문가들도 갈팡질팡 하기는 마찬가지다. 저자가 부모들을 면담하며 느꼈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전문가들이 오늘날의 부모를 너무 모른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사회과학 문헌 상당수가 중산층과 노동자 계급을 비교하는 이분법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노동자 계급은 자녀가 순종적이고, 공손하길 기대하며 자연적으로 성장하도록 양육하지만, 중산층 계급은 경쟁적으로 성취하도록 압박하고 엄격하게 지도한다는 식 (마네트 라루) 이다. 또는 부유한 부모는 상징적 박탈을 수행하며, 가난한 부모는 상징적 사치를 수용한다고 멋지게 표현 (앨리슨 퓨)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저자가 봤을 때 중산층과 노동자의 경계는 불분명했으며, 심지어 부의 격차와 관계 없이 자녀들을 방임하는 경우도 없었고, 모든 경우 디지털 기술을 미래의 핵심 자원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오히려 문제는 이처럼
⑥ 추정 수준에 불과한 이해로
⑦ 서로 모순된 주장을 하는 학자들에게 있었다.
⑧ 자연히 정책입안자들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고,
⑨ 교사와 부모들도 서로 고립되어 소통이 거의 없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1.3. 어려운 가정 민주주의

게다가 가정에서는 자녀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 줘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중요한 결정사항에 자녀의 동의를 구하는 부담까지 짊어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좁아지는 입지에 육아에 대한 대중적 관심까지 높아지면서, 디지털 세계는 사실상 부모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대로 기능하게 되었다. 각자도생은 비단 우리만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2. 저항과 수용, 균형 사이에서

이런 상황에서 마냥 기다릴 수 없는 부모들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저마다의 생존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즉각적인 디지털 자극에 과몰입하지 않도록 제한 (저항) 하거나,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 있는 것이다.

2.1. 주먹구구식 스크린타임

도파민 분비가 화두가 된 시대에 중요한 것은 즉각적인 자극을 제한하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일반적으로 언급한 2×2 지침 (2세 미만 자녀에게 영상 노출 비허용, 2세 이상은 하루 최대 2시간까지 허용) 은 미국소아과학회(AAP)의 이전 지침이라고 한다. AAP는 2011년, 16년에 이 규칙을 개정하면서 전후 사정을 고려하고, 시계를 덜 봐야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하나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같은 관점에서 저자도 두 가지 이유로 디지털 활동을 단순하게 단속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① 맥락 없이 시간만 제한하는 것에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거의 없으며,
② 좋은 양육 = 단속이라는, 가정의 민주화 추세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부모들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공동 미디어 참여 시간을 갖는 등 의미 있는 대안을 찾아가고 있었다. 다만 적절한 지침이 없어 시간 측정이라는 단순한 방법에 기댈 수 밖에 없다는 점에도 공감하며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접근해 볼 것을 제안한다.
① 맥락 : 자녀가 디지털 미디어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용했고, 그 효과는 어땠는지
② 내용 : 무엇을 보거나 이용했는지
③ 연결 : 관계를 원활하게 하는지, 훼손하고 있는지 두루 확인해 보고 판단하라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질 것을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 안전 제일주의만 고집하다가는 디지털 격차와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2.2. 우려스러운 긱 문화의 부상과 사회적 불평등의 그늘

한편 디지털 기술의 급부상은 사회적으로 비주류에 머물러 있던 긱 (Geek : 괴짜, 어떤 취미에 깊게 매진하는 사람) 문화를 동경하는 분위기로 바꿔 놓았다. 사회적인 능력이 부족해도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경험이 오랜 기간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부쩍 증가한 자폐아나 일상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 부모들에게 디지털 기술은 미래를 약속하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긱이 되는 것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되묻는다. 긱 문화라는 것이
① 신자유주의와 대립해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반체제 사상 (히피, 여피 같은) 이며,
② 가난한 가정에서는 보이지 않는 비교적 특권 계급에 속한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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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로 묘사한 히피족

과거 컴퓨터를 해방 수단으로 삼았던 히피족은 좌우 관계 없이 전통적인 규범 모두와 거리를 두는 혼성 정신을 구축했는데, 이들의 반권위주의는 자기들이 벗어나려고 하는 그 시스템 (디지털 기술) 에 흡수될 뿐 공동체적 협력의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학습자 중심, 관심 주도, 실행을 기반으로 한 자기 결정을 중시하는 교육 방식은 중요하지만, 이런 방식이 긱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과 맞물리면서 실리콘밸리 사이버 자유주의자 가치관의 세계화 된 표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또한 디지털 기술의 적극적인 수용은 높은 수준의 교육 자본과 경제적 자본, 그리고 위험을 무릅쓸 확신 등 많은 자산이 필요하지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은 가난한 가정에서는 목격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코딩 교육에 있어서도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은 고가의 코딩 캠프 등을 통해 수준 높은 디지털 기술을 구가하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에서는 학교에서 배우는, 또는 무료 교육을 통해 디지털 시대의 블루칼라 노동자로 성장할 우려도 있었다.

2.3. 균형점을 찾아가는 사람들

그럼에도 저자는 수용과 저항의 굴레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창의적인 가정도 목격한다. 가난하지만 문화적 수준이 높은 (단순히 노동자 계급으로 일원화 할 수 없는) 가정이 그 예였다. 이들 부모들은 디지털 기술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공예나 물건 제작, 예술활동, 캠핑, 나무타기, 자연보호구역 여행 등 비디지털적 생활을 경험하고 소통하는데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저자는 이들이 고소득보다 창조를 통한 자기효능감을 추구함으로써 자녀의 디지털 미래 성공에 대안적 비전을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이들을 통해 본 민주적인 가족의 긍정적인 모습은,
① 부모와 아이 모두 의미 있는 정체성을 찾고
② 거기에 전념하기 위해 기술을 수용할 경우 (기술을 수단으로 활용)
③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건설적인 담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익숙한 조언이지만,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부분적인 권한 행사에 머무르지 않고 상호적 학습활동, 즐거움 공유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이들을 전도 유망한 방향으로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설명이었다.

2.4. 부모에 대한 관심과 지원 요청

따라서 저자는 무엇보다 자녀의 흥미를 유발하고 지속되게 하는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부모에게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권고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부모가 디지털 기술, 양육에 무지하다는 편견을 내려놓고 교육 환경과 정책,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부모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며, 디지털 환경을 아우를 수 있도록 지원해야 된다는 것이다. 물론 갈수록 가속도가 붙고 있는 기술 발전의 특성상 한계도 덩달아 커지겠지만, 왜곡된 방향이 심화되어 불평등과 잠재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동체 의식을 일깨우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3. 생존 지옥의 늪에서 벗어나는 길

사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어떻게 남겨야 할지 많은 고민이 됐다. 초반에 언급한 것처럼 저자의 해결책이 대단히 특별하게 와닿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 현상과 원인, 그리고 기술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나타난 문제점들을 짚어준 부분이 글로 남기고자 하는 마음을 유지시켜 주었다. 저자도 밝힌 것처럼 이 보고서의 의의는 각 가정들이 생각보다 시대에 맞춰 잘 대응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외부인들이 얼마나 섣부른 조언을 늘어놓고 있는지에 대해 알게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한 해결책은 당연히 서로를 (특별히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있고 말이다.

하지만 개개인에게 맞춤 방식으로 제공되는 디지털 대안은 끈끈하게 엉겨 있던 공동체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을 넘어, 넘쳐나는 선택지로 모래알 같은 삶을 영위하도록 이끌어 가고 있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 수용과 저항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것처럼, 성인들의 세계에서도 생존 방식의 재정립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부득이 단언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앞으로 (미국을 필두로 한)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점, 그리고 다양한 삶의 형태가 가능하게 된 시대에 응집력을 발휘하기도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디지털 기업들의 지배력 강화에 일조하도록 우리 삶은 계속 채찍질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로 질질 끌려가고 있는 것 같다’는 어느 부모의 표현을 절감하게 되는 요즘, 부디 서로를 마음으로 잇는 대안들이 다양하게 등장해 효율성 경쟁의 늪에서 적절한 거리를 둘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다른 무엇보다 몰이해로 인한 혐오적 정서 만큼은 시급히 풀어갈 수 있길, 척박한 환경에서 서로간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 때 생존을 위한 기술에 압도되지 않고 온전히 다스려 나갈 수 있음을 새롭게 증명해 내는 우리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 표지 이미지 출처 : Unsplash
* 본문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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