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통한 자기 주도 학습법,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 조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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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배움과 성장에 있어 롤 모델로 삼고 싶은 두 주체가 있다. 하나는 유대인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이야기 할 세인트존스 대학이다. 사실 이 책은 2016년도에 출간되어 읽어 봤었는데, 당시에는 글을 본격적으로 쓰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고, 최근 교육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금 꺼내들게 되었다.

1. 배움의 즐거움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들

유대인이 주로 가정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후자인 세인트존스는 아무래도 대학교다보니 본격적인 지식 훈련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게 되는데, 책을 통해 봤을 때는 두 공동체가 추구하는 교육의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어른들이’ 배움의 즐거움과 자율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 흔히 자기주도 학습으로 불리는 스스로 하는 공부의 중요성과 효과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즐겁게 해본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공부는 지겨운 것이라는 생각이 주류로 자리잡은 사회에서 배움의 즐거움이라는 인식이 아래로 잘 전해질 수 있을까? 거기에 성공 방정식의 유일한 상수로 여겨지는 수능이 공고히 버티고 있으니, 말 그대로 괴롭지만 어쩔 수 없는 의무로 여겨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당면한 어려움인 듯 싶다.

그렇게 다른 길은 상상하기 어려워지고 경쟁은 더 치열해지면서, 궁극적으로 자녀가 뒤쳐지지 않길 바라는 부모의 불안감까지 더해 우리의 배움이란 그저 생존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린 것 아닐까. 필자가 두 공동체를 롤 모델로 삼았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분리돼 버린 배움과 즐거움의 관계를 회복시킬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얼마 전에 소개[1]했던 유대인 관련 책들을 보면, 그들은 식사 시간, 잠자는 시간, 저녁 식사 시간, 안식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책을 읽고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경험을 쌓는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배움을 종용하지 않는 것, 즉 자칫 배움의 과정이 지겹거나 부담스러운 것이 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하며 그 과정에 놀이 요소를 도입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세인트존스의 경우는 어떨까? 세미나라고 불리는 그들의 메인 수업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다. 그 수업에는 강의해주는 교수가 없다. 단지 좀 더 오래 공부한 인생 선배인 튜터만 존재해 (물론 호칭만 다를 뿐, 다른 대학 기준에서는 엄연한 교수이다) 토론의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만 할 뿐이다. 그들에게 정해져 있는 것은 고전 책들과 글쓰기(에세이) 뿐, 그 외의 과정은 사실상 모두 자율에 맡긴다. 어떤 배움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라는 것이다. 만약 이 과정이 행복하지 않은 듯 보인다면, 편입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2학년을 마치는 시기에 진지하게 출교를 권할 정도라고 한다.

2. 배움을 이끄는 세인트존스의 방법

그렇다면 세인트존스는 어떻게 학생들을 이끌었을까? 전공도 없고 시험도 없으며, 심지어 지식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다. 단지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어진 책을 바탕으로 스스로 찾아나서는 것 뿐이다. 학교에서 지정한 도서를 읽고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그리고 책을 인용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지식과 생각만으로 글을 써내는 것 (에세이) 을 통해서 말이다. 때에 따라 튜터들이 중요한 깨달음들을 더해주긴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조력자로서 원활한 토론과 제한적인 조언만 해줄 따름이다. 게다가 전공과 시험이 없다고 결코 배움을 소홀히 여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기가 끝날 때마다 돈 래그라고 하는 죽음의 한 주가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학기 중의 모든 과정들을 상세히 기록해두고 있다가 때가 되면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려 학생들의 눈물을 쏙 빼놓는다. 그리고 모든 튜터가 진급에 동의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사실상 시험보다 더 무서운 평가 방식으로 학생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도구들을 제공해 주고 정글에 던져놓은 채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만 잠시 도와줬다 사라져 관찰만 하는 서바이벌 게임의 스텝 같다고나 할까? 그래도 고전이라고 하는 신뢰성이 보장된 정글 속에서 헤맬 수 있도록 해준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겠다.

3. 저자는 대학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저자는 4학년이 되었을 때 자신의 학교를 한국에 소개해 주고 싶었다고 한다. 책에서도 밝혔듯 이제는 스스로 공부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2]을 갖게 됐고, 그 배경에는 최고로 적극적인 자율[3]이라고 하는 세인트존스의 교육 방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고백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앞서 간략히 설명한 것처럼 세인트존스에서는 교양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핵심 소양을 반복적으로 학습시킨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아주 기본적인 요소들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이후 우주 작용 원리를 이해하는데에도 적용되어 놀랐다는 설명[4]처럼, 배움의 핵심 원리를 지속적으로 반복했던 것이 저자에게 새로운 이론을 향해 도전할 수 있는 굳은 확신을 심어줄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물론 이런 확신과관련해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저자는 무언가를 해냈다는 자신감이 아닌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점 말이다. 사실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을 4년 만에 제대로 읽어낸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2학년 과정엔 기독교 성경 전체가 책 두 권 – 신약, 구약 – 으로 명기되어 있다.) 그마저도 일부만 겨우 읽어내고 2시간 동안 토론하고 글로 풀어낸다는 것은 스스로도 읽은 책이 없다고 할 수 있을만큼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내용에 대해서만큼은 깊이 고민하고 글로 풀어내게 되면서, 내용 이해에 머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의견을 담아내는 진짜 생각을 다듬어나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토론에서 내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엄청난 분량의 책들을 처음부터 다시 읽지 않고 어떻게 글감으로 삼을 수 있을지, 글의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써야할지 등 이 모든 과정들을 무수히 반복하면서 자기만의 방법을 완성시킨 것, 그것이 바로 저자의 자신감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학년 때에는어수선한 분위기, 또는 누군가가 독점하는 상황에서 튜터의 중재가 매우 중요하지만, 4학년이 되어서는 서로의 다른 생각을 진중하게 청취하고 배려하며 소통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서게 된다고 한다. 그 때가 되면 튜터도 더 이상 중재자가 아닌 토론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함께 깊은 대화로 나아가게 되고 말이다. 이처럼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문제들이 차차 개선되고, 학생들도 이를 통해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서는 것을 곁에서 묵묵히 격려해 준 것이 스스로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었던 것이다.


결국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배움의 즐거움, 자율성, 핵심 과정을 반복하는 구조 이 세 가지 요소들이 잘 마련되었을 때 아이들, 그리고 성장이 필요한 모든 이들이 확신을 갖고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두를 세우는 주춧돌이 즐거움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배움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을까? 사실 어른들의 영향이 절대적인 아이들에게 있어서 그 방법이란 다른 게 없는 듯 싶다. 유대인 부모처럼, 세인트존스의 튜터들처럼 어른들이 먼저 배움의 즐거움을 진심으로 느껴야하기 때문이다. 아이만의 느리지만 자율적인 배움, 이를 통한 즐거움을 기다려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부모만이 가능한 일이다. 필자 또한 새롭게 깨닫는 기쁨 덕에 이러한 반복의 구조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을 수 있었고, 어쩌면 이러한 삶의 모습이 아이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최고의 간접적인 방법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런 점에서 아이가 공부쟁이라고 불러주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어른들의 경우는 어떨까? 사실 여기에 대한 움직임도 이미 적잖이 일어나고 있는 듯 싶다. 자기만의 인생을 찾아 나서는 분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는 모습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출발점은 성장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즉 결여된 무언가를 향한 강렬한 욕망을 갖는 것에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배움의 즐거움은 반드시 뒤따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과거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잡스가 말했던 것 처럼 말이다.

“Stay hungry, Stay foolish.”


[1] 유대인 관련 책 리뷰
1. 유대인의 가정 교육 배우기, 『13세에 완성되는 유대인 자녀교육』, 홍익희, 조은혜
2. 어떻게 질문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 『유대인 엄마는 장난감을 사지 않는다』, 곽은경
3. 유대인 교육의 4가지 가치관 – 『유대인 엄마는 장난감을 사지 않는다』, 곽은경

[2] p. 38
[3] p. 41
[4] pp. 155 – 158

* 표지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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