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를 즐기는 자녀로 키우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여기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겠지만, 분명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특히 이미지와 동영상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컨텐츠들의 폭발적인 증가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빨아들이고 있다. 필자가 느끼기에 이런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지난 PISA 2018 결과로 본 아이들의 읽기 능력 하락이었다.
2009년 21.2%였던 최하위 수준 (1, 2수준) 학생들의 비율이 꾸준히 늘어 2018년에는 무려 34.7%에 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영상 시청 시간의 지속적인 증가와 더불어, 희망직업에 크리에이터가 급부상하는 등 학업 외에도 크게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이런 결과를 더욱 부추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들 직업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언어 능력은 반드시 밑바탕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오늘날 많은 부모님들도 이런 문제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고, 아이들에게 좋은 독서 경험을 제공해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1. 아이가 독서를 즐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자극의 강도에 있어서 글자는 애초에 이미지나 영상과는 비교될 수 없기 때문에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책 읽기를 즐기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 아이가 책 읽기를 즐겨하도록 이끌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너무 뻔한 얘기지만 아이가 책 읽는 환경에 많이 노출되는 것,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은 ① 부모가 책 읽는 것을 즐기고 ②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PISA가 중요한 결과를 제시해 주는데, (자꾸 재인용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책을 거의 매일 같이 읽어줬던 15세 아이들의 읽기, 독해 능력이 무려 1년의 학습량에 해당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여 주었다고 한다. 또한 부모의 취미가 독서인 경우 자녀도 독서를 더 즐긴다고 답했다는 결과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최근 한국에서도 발표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2019년 국민독서실태조사가 그것인데, 내용을 살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 아래 인용한 모든 표들은 2019년 국민독서실태조사 PDF 문서에서 발췌해 가공한 것임을 밝힌다.
위의 표는 아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책을 읽어준 빈도와 독서량과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지표다. 안타깝게도 부모님이 책을 거의 읽어주지 않았던 학생들은 독서인구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낮았던 반면 (붉은색 영역), 책을 자주 읽어준 자녀의 경우 (푸른색 영역) 에는 독서량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년에 21권 이상을 읽는 다독 학생들의 경우에는 거의 매일 읽어준 것이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며칠에 한 번 읽어준 경우보다도 10% 넘는 차이가 났다) 물론 다독이 무조건 좋은 것 만은 아니며, 거의 매일 읽어줬음에도 책을 전혀 읽지 않는 학생들 (19.8%) 도 있는 것을 보면 어린 시절 이후 독서를 할만한 분위기가 마련되지 않았는지 여부 등 다른 요인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책을 읽어준 빈도가 아이가 독서인구로 성장할 가능성과 매우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2. 우리는 정말 독서가 중요하다고 믿고 있을까?
살펴본 것처럼 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이 아이의 독서 선호도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더 놀라운 것은 학생 표본 3,127명의 2/3에 해당하는 약 2,000명의 부모가 거의 매일 같이 아이에게 책을 읽어줬다는 점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독서 환경을 제공해 주기 위해 애쓰시는 한국의 부모님들께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렇다면 다음, 더 중요한 문제로 한 번 넘어가 보자. 부모가 책 읽기를 즐겨야 한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매일 같이 책을 읽어줬던 부모들은 과연 독서를 좋아할까? 어쩌면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아이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특유의 한국 부모의 열정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결국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독서량이 줄어들게 되는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도 조사 결과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던져주고 있었다.
여기서 독서율은 지난 1년 동안 종이책을 1권 이상 읽은 인구의 비율을 뜻한다. 성인의 표본은 학생보다 많은 6,000명인데,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성인들의 급격한 독서율 하락으로, 불과 6년여 만에 독서율이 20%나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종이책만 놓고 봐서 그런 것 아니냐고? 물론 합친 지표를 봐도 그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보다시피 종이책에 전자책, 심지어 오디오북까지 포함시켜도 그 비율은 3% 밖에 늘어나지 않는다. 참고서 등 교과 외의 책을 1권 이상 읽는 학생들이 90%가 넘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저조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지표만 갖고 모든 성인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하다. 평균을 깎아먹는 다수가 노년층에 분포돼 있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50세 이상 인구를 빼고 19 ~ 49세까지의 독서율을 계산해보면 71.3%가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젊은 성인들은 독서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1권 이상 읽는 사람이 70%가 넘으니 나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71.3% (4,278명) 에 달했던 독서율이 무색하게 젊은 인구가 독서를 좋아한다고 응답 (매우 좋아함 + 약간 좋아함) 한 평균 비율은 29% (1,740명, 푸른색 영역) 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비독서 인구 (28.7%) 까지 포함된 결과지만 이들이 독서를 좋아한다고 응답하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사실상 독서 인구의 40% (1,740명 ÷ 4,278명 x 100) 만 독서를 좋아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결국 독서자의 60% (2,538명) 는 독서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거나, 싫어하면서도 억지로 읽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서가 유용하다고 여기는 것은 모든 세대가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학생에 비해서는 적지만 독서가 도움이 된다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령대별 비율이 비슷해 표를 따로 올리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한국인들에게 독서란 분명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하지만 딱히 좋아하는 감정이 들지는 않아서 머뭇거리게 되는 대상인 것이다. 그러면 독서를 망설이는 시간 동안의 관심은 주로 어디를 향했을까? 모두가 잘 알고 있듯 다른 컨텐츠로 향했다.
여기에서 연간 추이는 조금 더 구체적인 흐름을 설명해 준다.
성인의 경우 여러모로 여가 시간이 늘어났지만 책 이외의 컨텐츠가 확실한 장애요인으로 부각됐음을 알 수 있다. 분명 책이 유용한 건 알지만 재미가 없기 때문에 다른 컨텐츠에 관심을 더 많이 두게 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독서에 대한 모순된 감정을 다수가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위 지표들은 어른들이 독서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3. 왜 우리나라 성인들은 독서를 좋아하지 않게 됐을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도 많은 분들이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학생들 또한 독서가 중요하다는 것도, 그것이 즐겁다는 것도 어른들보다 더 분명히 알고 실천하고 있었다. 문제는 어른들이었다. 우리는 왜 책을 읽으면서도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됐을까? 유용성이라는 가치로 인해 책 읽기도 하나의 의무로 전락했기 때문일까? 책 읽기를 좋아하던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걸까?
의무로 전락한 독서, 어쩌면 무언가를 즐기기가 무섭게 찾아오는 생존 투쟁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즐기기 이후 찾아오는 묘한 죄책감, 노력을 통해 더 나은 무언가를 향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이미 우리 내면에 구조화된 압박감이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아니 부자가 되기 위해 유용함으로 인식되는 독서는 그 자체로 향유의 대상이 아닌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사실 독서와 부의 상관관계는 이미 지겨울 만큼 강조되고 소비돼 왔다. 세계적인 부자들이 한결 같이 독서광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고, 우리나라도 독서율이 소득 수준과 정비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책 소장량에 따라서도 자녀들의 지적 수준이 달라진다는 세계적인 연구[1]에 이르기까지 독서의 경제적 효과를 뒷받침하는 자료들은 그야말로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어떤 대상이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 되어 버릴 때 그것은 하나의 전통, 즉 의무가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이제는 더 이상 취향의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좋고 싫음이라고 하는 감정적 접근 이전에 ‘옳은 것’이 되어버린 선택지는 이미 선택지가 아니다. 그저 ‘해야 할’ 어떤 것으로 남아있을 뿐. 그렇게 독서가 즐거워지기도 전에, 혹은 그것의 유용함이 하나의 잔소리가 되어 즐거움을 덮어버렸다면, 이제는 그런 마음을 조금은 내려놔 보면 어떨까? 그 어떤 목표도 목적의식도 대입하지 않은채 그저 편안하게 읽어나가는 것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게 우연히 찾아오는 새로움 자체를 기쁘게 여기며 해야하는 일에서 하고싶은 일로 서서히 돌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어린 시절 느꼈던 즐거움을 회복하는 작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1] 한겨레, 안 읽더라도 집에 책 쌓아놓아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