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지도 어느덧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새로 배워온 노래도 곧잘 부르고, 그림 솜씨도 제법 늘었으며, 아이들 사이에서도 놀이를 주도하며 잘 어울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와 대견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한 켠으로 미뤄놨던 불안감도 슬며시 올라왔다. 보육에서 교육으로 전환되는 이 시점에 우리 부부가 아이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지, (그저 유치원에 맡기기만 해도 될지) 사실상 준비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에 두 개의 축 (신앙과 지식) 을 세우는 가정 문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지만, 이를 어떻게 적용해 나갈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워 계속해서 미루고 있던 터였다.
1. 카테고리 확장의 배경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삶에 의미있게 적용할만한 롤 모델을 찾는 일이었다. 필자의 경우에는 그 대상이 유대인이었기에 평소에도 유대인 교육과 관련된 책들을 조금씩 사모으고 있었다. 물론 사두기만 하고 읽지는 못했는데, 그 이유는 블로그의 카테고리를 스스로 제한 (정신분석, 서양 철학) 해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일반 서적을 읽고 리뷰해주시는 분들은 많이 있으니, 평소에 좋아하던 전문적인 책들을 리뷰하면 필자에게도, 다른 분들께도 의미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시작한 블로그였다. 하지만 사놓은 책을 읽지 못하는 웃픈 상황에, 당장 시급한 문제를 미뤄가면서까지 굳이 카테고리를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책을 읽는 이유는 삶을 의미있게 변화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보다 빠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방향을 일부 조정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유대교에서는 추상적인 언어로 표현한 다음에 반드시 실천 방안을 가르친다. 십계명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 4가지와 인간을 사랑하는 법 6가지가 구체적인 유법으로 명시되어 있는 것이 그 예다. 그리고 613개의 율법마다 시행령(codes)이 자세하게 명기되어 있다. 유대인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20:8)는 추상적인 말씀(율법)을 정확하게 지키기 위하여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것만 무려 39가지나 법으로 정해놓았다.
현용수,『유대인 아버지의 4차원 영재교육』, p. 80
유대인 연구가로 유명한 현용수 박사의 율법에 대한 설명이다. 그들이 평생을 연구하는 토라 (구약전서, 탈무드) 의 구성 또한 추상성과 구체성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뜻이다. 물론 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을 설정하는 추상언어겠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내용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저 공허한 울림이 될 따름일 것이다. 결국 육아/교육 카테고리를 새로 만든 이유를 이처럼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혹시나 부족한 필자의 기존 카테고리 글들을 보기 위해 오신 분들께 양해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전문적인 책들 뿐만 아니라 당장 적용해 봄직한 실용적인 책들도 병행해서 읽어야 할 중요한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2. 책에서 말하는 유대인의 교육 방법
이 책은 유대인들의 연령대 별 교육 방법과 삶의 태도 등을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무역 전선에서 평생을 바친 뒤 그 가운데서 만난 유대인들에게 관심이 생겨 은퇴 후 이들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분으로, 본 글에서는 소개된 내용 중 중요한 교육 방법 일부를 꼽아 소개해보고자 한다.
2.1. 배움의 이유 알기
기본적으로 유대인의 배움에 대한 열정과 삶의 방식들은 유대교와 율법을 빼놓고는 설명될 수 없다. 유대인들은 아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닌 온전한 독립적인 인격체로 자랄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왜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할까? 바로 ‘티쿤 올람(세계를 고친다)’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서이다. 요약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사상은 하느님이 만드신 세계를 인간이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는 배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역사를 지탱해 준 토라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승시킨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특히 저자는 율법이 강조하는 핵심 가치가 ‘정의’와 ‘평등’이라는 점을 수 차례에 걸쳐 강조한다.
‘정의’라 함은 고아나 과부 등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이고, ‘평등’은 세상의 통치자는 하느님 한 분이며 하늘 아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개념이다…. 또 유대인들은 직장에서의 지위나 직책은 효율적인 업무 추진을 위한 역할 분담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지위나 직책이 종속적인 관계를 만든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런 평등사상이 낳은 수평 문화가 바로 후츠파 정신이다. 사람 간에 종속관계가 성립한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자유롭고 열띤 토론을 할 수 있다.
pp. 143 – 144
‘약자’와 ‘하느님 앞의 평등’을 중시하는 이러한 사상은 가정에서 아이를 소유물이나 순종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
2.2. 말씀 암송 교육
유대인 엄마는 돌 때부터 성경 공부와 삶에서 필요한 예절, 규칙 등을 가르친다고 한다. 특히 성경 암송의 경우 만 4세가 되면서부터 (딱 우리 아이 나이다) 하루 3시간씩(이나) 암송을 시킨다고 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역설적이지만 암송이야말로 창의성의 산실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암송을 하면 내용 자체가 아니라 내용에 담긴 ‘정신의 패턴’을 모방[1]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도 맥락을 이해하는 힘, 즉 핵심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관련된 다른 기사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순차적(2D) 사고가 아닌, 사고의 중심점을 기준으로 시작점과 끝점을 동시에 사고하는 입체적(3D) 사고가 가능[2]하다고도 표현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창의성이 무가 아닌 유, 즉 우리가 아는 것을 새롭게 연결하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핵심 자원을 마련하는 일이자, 높은 수준의 언어능력과 정신을 내면화 할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이른 시기부터 시작된 암송은 13세에 치르는 성인식 때 참석한 하객들 앞에서 토라 중 하나를 암송함으로써 부모를 떠나 하느님 앞에서 독립된 존재로 설 수 있음을 선언한다고 한다.
2.3. 밥상머리 교육
유대인들이 13세 이전의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베갯머리 이야기와 밥상머리 교육이다.[3] 특히 밥상머리 교육이야말로 가정교육의 꽃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싶은데, 가족 식사를 공동체를 위한 의무로 여기고, 모인 자리에서는 훈계 없는 긍정적인 대화를 유지하는 것이 원칙이다. (꾸짖을 일이 있다면 식사 이후로 미룬다.) 자리에 앉은 아버지는 먼저 아내가 한 일에 감사하며 아이들을 축복하고, 어머니는 자녀가 잘한 일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격려한다고 한다. 여기서 격려의 핵심은 결과가 아닌 과정, 즉 최선을 다한 것에 대해 칭찬[4]하는 것으로 유대 격언 중엔 이런 내용도 있다고 한다.
“만약 천사가 눈앞에 나타나 토라의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 해도 나는 거절할 것이다. 배우는 과정은 결과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p. 72
이렇듯 식사 시간을 기분 좋게 이끌어 다양한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장으로 만드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들 삶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
2.4. 베갯머리 이야기
율법을 가르치는 시기와 마찬가지로 돌이 지나면서 아빠는 베갯머리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조상들, 성경 말씀, 좀 더 커서는 아이가 갖고오는 책을 읽고 아이의 느낌을 묻는 대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퇴근 후 아이들과 놀고, 밥상머리 대화를 통해 충분한 시간들을 보냈기에 이 시간은 15분 가량으로 아이가 잠들기까지 이뤄진다고 한다. 아마 이 부분은 필자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부모님들도 많이 실천하고 있는 부분일 듯 싶은데 문제는 앞의 과정들일 듯 싶다.
2.5. 하브루타 학습법
우정, 동료를 뜻하는 ‘하브루타’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서로가 아는 것을 설명하고 반론하면서 토론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 공부하는게 효과가 훨씬 크다는 점도 익히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남들보다 나은 삶이 아닌, 남들과 다른 재능을 발굴하는 것을 교육의 최고 목표로 여기는 이들에게 하브루타는 최선의 방법이 된다. 정해진 답이 아닌, 자신만의 답을 충실히 찾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학습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서로의 주장을 날카롭게 파고들며 설득해야 하기에 사전에 수 많은 가정들과 이에 대한 답변들을 준비해 놓아야 한다. 그만큼 정확히 알게 되고 또 오래 각인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시범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하는 학교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점차적으로 확대돼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결국 이제까지의 교육 방법을 요약해 보면 아래 내용 정도가 될 듯 싶다.
유대인의 종교교육은 반복된 암송을 통해 일단 몸에 체화시킨 후 질문식 수업으로 진행한다. 유대인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답을 즉시 가르쳐주지 않는다. 질문을 계속하며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준다. 설사 틀리더라도 절대로 윽박지르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p. 226
2.6. 독서
유대인의 연간 독서량은 64권이라고 한다. (그것도 토라 공부는 제외하고..) 매주 한 권 이상의 책을 읽는 셈[6]인데,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2019년 기준 7.5권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2년 전 9.4권에서 2권 가량이나 줄어든 결과다.[7] 한 달에 한 권 읽는 것조차도 버거운 일이 되어버린 우리나라와 달리 그들의 지식은 하루가 다르게 증대된다. 믿음이 문화로 조성됐을 때의 힘이란 이런 것이지 않을까? 거실에는 TV가 없고, 안식일에는 야외 활동을 하지 않아 집에서 책을 읽거나 가족간에 대화하는 시간을 보낸다. 생각과 대화를 위한 장이 충분히 마련된 것이다. 게다가 매일 저녁 식사까지 함께하니 유대인에게 있어서 가정은 그야말로 정서적 안정감과 지적 성취를 자극하기에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었다.
3. 우리 가정에는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까?
글을 정리하면서 우리 가정의 모습을 잠시 돌아보았다.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 읽어주긴 하지만 그리 오랜 시간을 읽어주진 못한다. 그래도 나름 15분 가량은 되는 것 같지만 나머지 부분에 있어서는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상태, 그러니까 유대인 방식으로는 13세 이후에나 해줘야 할 일을 아이에게 하고 있는 셈이었다. 물론 우리가 유대인도 아니고 수 천년에 걸쳐, 고난에 따른 절박함 (예로 유대인 가정 교육이 활성화 된 것은 게토생활을 할 때 정규교육을 받을 수 없어 마련한 방법이라고 한다) 에서 만들어낸 귀한 삶의 방식을 한 번에 따라잡으려고 하는 것도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그저 지금 우리 가족에 맞는 옷을 짓기 위한 고민이 필요했다.
3.1. 함께하는 식사시간 만들기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 건 온가족이 함께하는 식사시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각자의 삶에서 겪은 어려움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좋은 방법을 찾아나가기 위해서 말이다. 대체로 관계의 어려움은 대화의 단절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일상의 대화를 통해서라면 오해가 쌓이는 것도, 아이가 잘못된 방향으로 너무 멀리 가는 것도 때마다 풀어갈 수 있을 터였다. 따라서 이제는 기존에 유지하고 있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식사 시간’에서, 아이가 식탁에 앉아 우리와 함께 식사하는 것을 먼저 추진(?)해 보기로 했다. 언젠가부터 엄마와 할머니가 따라다니며 밥을 먹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빠, 엄마와 식사할 때는 자기 자리에 앉아서 같이 먹기로 (한 두 차례만 얘기하고 먹지 않으면 식사가 끝났을 때 그냥 치우는 것으로) 약속을 했다. 아이가 차분히 앉아 우리와 함께 식사하는 분위기를 만드는게 아직은 대화보다 먼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3.2. 함께하는 시간 늘리기
한편 책을 읽어주고, 노는 시간을 늘리는 것은 이미 책을 읽는 중에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13세에 성인으로 인정하고 그 이후의 선택은 전적으로 존중해준다는 점이 크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에는 귀찮다는 마음이 더 컸지만, 머지 않아 독립하게 될 아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이 시간을 더 늘려야겠다는 인식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안식일을 온전히 내려놓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가정을 세우기 위한 시간 마련이 필요했다. 여담으로 아이가 지어준 필자의 별명은 ‘공부쟁이’인데, 아무래도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많이 설명해줬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별명이기도, 아이에게 배움에 대한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지만 시간을 함께 보내는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한계를 갖고 있는 일이기도 해 지속적인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사실 이번 글에서 소개하고 싶은 내용들이 참 많았지만 충분히 담을 수 없어 많이 아쉬웠다. 다만 남은 지면을 빌어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소개하고 마칠까 한다. 하나는 디아스포라로 인해 일찍부터 발달한 유대 공동체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구성원들이 굶거나, 중간에 교육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해외 유학 박사학위까지 하더라도) 회당(시너고그)에서 돈을 모아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는 점이다. (율법에서 강조한 ‘정의’에 상응하는 부분으로 의무에 해당한다.) 거기에 성인식 때는 친인척들이 상당한 양의 축의금을 마련해 줘 수천에서 억대에 이르는 돈을 모으게 되는데, 이미 그 때부터 분산 투자 (예금, 주식, 채권 등) 를 시작한다고 한다. 대학에 갈 때쯤 되면 금액이 상당히 불어나 돈을 어떻게 ‘불릴지’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된다는 것에서 출발선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앞서 설명한 교육 방법과 더불어 공동체를 위하는 것을 넘어 이것을 의무로까지 격상시킨 그들의 공동체 의식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우리나라도 많은 혼란을 겪고 있지만 점차 이러한 방향에서 사회 안전망을 잘 구축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1]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무조건 외우는 ‘암송’이 창의성의 산실이라는 현대 이론이 있다. 암송할 때 우리 뇌에서는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뇌신경학자들에 의하면 우리가 암송을 반복할 때 뇌는 대상 자체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정신의 패턴’을 모방한다고 한다.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별난 능력이 아니라 기존에 우리가 아는 것에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깨달음이다. 세상의 그 어떤 창의적 이론도 무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p. 27 – 28
[2] The Science Times, 유대인들의 노벨상 점령 비결
[3] p. 89
[4] p. 72
[5] 교육부, 질문하고 토론하라, 하브루타 교육법
[6] p. 107
[7] 매일경제, 한국성인 평균독서량 연간 7.5권…2년전보다 1.9권 줄어
* 표지 이미지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