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전세계 공교육의 롤모델은 핀란드였다. 처음 시작된 2000년에서 2006년까지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 (PISA, 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에서 종합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핀란드 교육 배우기 붐이 일었고 다양한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이 책도 그런 분위기에서 쓰여졌다. 특징이 있다면 핀란드 뿐 아니라 학업 성취도가 높은 (높아진) 나라들의 교육 환경을 비교 했다는 것, 그리고 언론인답게 해당 국가들을 직접 방문해 현지 학생들의 교육 환경과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취재했다는 점이다. (※ 이 책은 2011년 9월 ~ 2012년 8월의 조사 기간을 거쳐 2013년도에 출간됐다.) 저자가 선택한 나라는 성적이 급성장한 두 나라인 핀란드와 폴란드, 그리고 꾸준히 높은 성취를 기록하고 있던 한국이었다.
1. PISA는 무엇일까?
PISA는 의무교육 종료단계에 해당되는 15세 학생들의 종합적인 문제 해결능력, 의사소통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OECD에서 개발한 시험이다. [1] 3년에 한 번씩 치뤄지며 우리나라는 2000년부터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측정 분야가 적고 (읽기, 수학, 과학) 인지 능력을 양적으로 측정하는 객관식 평가만으로 교육 성취를 측정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어 2021년 치뤄질 시험에서는 창의력에 대한 평가를 추가 할 예정이라고 한다. [2] 이처럼 한계도 분명하지만 동일한 기준으로 전세계 학생들을 평가할 수 있고, 특히나 그 나라의 교육 정책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지표이기에 참여하는 나라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중이다. (2000년 43개국 → 2018년 79개국)
보다시피 PISA는 학교에서 필요한 기술보다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측정’하는데 초점이 있는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정답은 예시처럼 하나일수도 있지만 여러 개일 수도 있다. 저자는 PISA 결과 보고서를 ‘보물지도’라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드러난 성적과 환경과의 상관 관계, 즉 빈부 격차가 교육 성과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나라마다 상이), 대학 진학을 학교 성적보다 정확히 예측할 수 있고, 무엇보다 PISA 점수가 나라의 장기적 경제 발전과 1:1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혀내는데 [4]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교원 양성 기준의 차이
저자는 훌륭한 학생들을 키워내지 못하는 미국 교육에 대한 염려로 해외 탐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각 지역을 돌아보며 내렸던 결론은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담당자들이 핀란드 예찬론을 펼쳤음에도 어느 누구도 교사 양성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얘길 하지 않았다며 핀란드의 교원 양성 과정에 대한 부러움을 숨기지 않는다.
저자는 한국과 폴란드의 교원 정책은 대조군으로 삼기 부족해서인지 책에서 충분히 기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단 선발하고 수 년간의 복잡한 평가 과정을 통해 부적절한 교사를 해임하거나 성장을 돕는다는 미국의 교육 정책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 기간 동안 형편없는 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피해는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따라서 그녀가 보기에는 교사 양성 기준을 엄격하게 높이는 것만이 미국의 공교육을 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훌륭한 스승이 훌륭한 제자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너무나도 뻔한 얘기지만, 그 동안의 미국은 배려라는 명목 하에, 경쟁에서 보호하기 위해 아이들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 사회에 나갈 준비를 ‘유예’시켜온 것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점수는 높지만 미국의 경우와는 극단적인 반대 지점에 위치해 있었고, 따라서 아이들을 하루 10시간이 넘도록 가두어 놓지 않고도 탁월한 성과를 거둔 핀란드가 유토피아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참고로 한국은 성적 외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교훈으로 꼽은 것은 지름길을 택하지 않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엄격함이 중요하다는 점 정도.)
3. 가정 환경과 성적간의 상관관계
한편 PISA는 그동안 정확하게 측정되기어려웠던 가정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 냈다. 시험에 참여한 부모들에게 설문조사를 해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는지를 아이의 점수와 연관지어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부모들이 자원봉사 등 아이의 학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학습 성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읽기/독해 능력 점수가 떨어지는 경향마저 보였다고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부모가 밖이 아닌 집에서 자녀들과 무엇을 하는지에 달려 있었다.
3.1. 부모들은 자녀와 무슨 특별한 일을 했을까?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책을 거의 날마다 읽어줬던 아이들은 15세 무렵의 읽기, 독해 능력이 훨씬 앞선 것 (25점 차이, 1년 학습량에 해당) 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모와 영화, 책, 시사 문제 등 다양한 이슈들로 대화해 온 학생들이 독서를 더 즐긴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한 부모가 집에서 취미로 독서를 하면 아이들도 독서를 즐길 확률이 높았다.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즉, 부모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말보다 더 중요했다는 것이다. PISA를 만든 슐라이어 또한 이런 결과를 보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퇴근 후 자녀와 함께 대화하는시간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교 시스템과 별도로 자녀들의 학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게 되었다고 하며 말이다. 사실 독서와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얘기다. 하지만 막연하게 좋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과 수치를 기반으로 한 확신에서 나오는 행동은 전혀 다를 수 밖에 없다. 똑같은 얘기가 완전히 다르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3.2. 성적에 좋은 영향을 미친 양육 방식
그렇다면 부모들의 교육 스타일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저자는 한국 가정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가 코치 역할을 한다고 느꼈다. 밥을 하면서 구구단 외운 것을 물어보고, 열심히 노력하도록 독려하며 훈련에 박차를 가하지만,무리하지 않도록 쉬게 해주는 것은 관심사가 아닌 것 같아 보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좀 나아졌을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과잉훈련을 이끄는 독재형 부모와, 그 반대에 해당하는 관대형 (부유층 다수), 더 나아가 무관심형 (빈곤층 다수) 부모의 경우 모두는 적절한 성장 경험을 제공하기 어렵다. 오히려 독재와 관대가 공존하는 권위형 부모가 아이들의 성적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실제로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젤라니 만다라가 4,754명에 달하는 미국 십대와 부모를 연구한 결과, 권위형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적도 우수하고, 우울함, 공격, 반항 등 반사회적 행동 경향도 적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6] 이들은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면서도 아이가 성장하며 스스로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시도하고 실패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성장과정 내내 한계를 명확히 제시하고 협상을 허용하지 않는 규칙도 부과해 시기 별 무질서도를 적절히 다스려 나갈 수 있었다.
4. 교육 선진국들의 현위치
서문에서 밝혔던 것처럼 이 책은 무려 7년 전에 쓰여졌다. 따라서 그 사이의 공백이 궁금해 최근의 결과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는데, 내용을 보고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교육 선진국들은 왜 추락하게 되었나?』라고 두 번째 책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치뤄진 PISA 2018의 순위를 살펴보자.
* 중국의 B-S-J-Z는 베이징, 상하이, 장쑤성, 저장성 지역에 해당된다고 한다.
4.1. 중국의 무서운 약진
만약 저자가 최근결과를 봤다면 어떤 나라들을 선택했을까? 중국, 싱가포르, 에스토니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중국은 자치구 별로 점수를 따로 환산하긴 했지만 어차피 합쳐도 최상위권임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수학과 과학 영역에서는 2위국마저도 압도하는 모습이 무서울 정도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극심한 위협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기초 학문을 통한 기술 발전의 각오와 성공에 대한 확신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다. 물론 중국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면 순위권 아래로 내려갈 것이고, 같은 기준에서 (예. 최상위권 학교 10위 평균 등) 평가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지만, 결국 세상을 이끌어 가는 것이 소수의 상위권 인재들이라고 본다면 상당히 위협적인 수준 차이라고 볼 수 있을 듯 싶었다.
4.2. 우려스러운 한국의 현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연도 별 순위 변화는 어떨까? 2003년도에 종합적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하향 곡선을 타고 있는 중이다.
* 2006년부터 순위를 범주 (예. 1~4) 로 표시해 평균값으로 변환해 표기했다.
** 연도 우측 괄호 안 숫자는 참여한 국가 수이다.
특히 읽기 영역은 단 한 차례의 회복 기미도 보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인데 그 내막을 살펴보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최하위 수준 (1, 2수준) 의 비율이 2009년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읽기는 사실상 모든 학습의 토대가 되는 매우 중요한 기술인데 언어 이해도가 많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불과 10여년 만에 1/5에서 1/3로 늘어난 것이다. 유튜브 한국어 서비스가 2008년 1월 23일에 시작했으니 그 영향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PISA의 읽기 시험 유형이 복수의 읽기 자료를 읽고 정보를 발견, 비교, 대조, 통합하는 방식으로 바뀐 영향도 있을 수 있다. [8] 하지만 그런 요소들이 지속적인 하락에 설득력 있는 이유가 될 순 없을 듯 싶었다. 어쩌면 이제껏 점수 빼고 내세울 게 없었던 비효율적인 한국 교육이 이제 그 마지막 남은 보루까지도 빼앗기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이 우려할 수 밖에 없는 결과였다.
4.3. 핀란드의 추락
핀란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다.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더 크게 추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수학에서. (2018년에는 15위까지 떨어진다.)
특별히 교육모델 실패보다는 교권 하락을 주 원인으로 꼽고 있는데, 새로운 커리큘럼과 교육제도가 과거의 성공을 뒷받침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조적인 이야기[10]도 나온다. 최상위권의 학생들을 교원으로 임용해 권위와 신뢰를 누려온 핀란드에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그 권위가 하락하고 있다는 걸까? 역시 개혁은 일으키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이 실감나는 부분이었다.
5.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글을 마무리 짓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책의 좋은 내용을 소개해주고 싶어서, 그렇지만 너무 오래된 내용이라 최근의 상황을 덧붙이려고 찾아봤을 뿐이었는데 그야말로 강산이 변해 있었다. 때문에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무척 혼란스러웠다. 책의 내용이 부정되어야 하는 걸까? 물론 그렇게 생각되진 않았다. 교육 개혁의 효과 덕분에 2000년대 핀란드의 놀라운 성취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의 수준을 높이고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기업들에게는 공식적인 룰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룰(Rule)이 없음을 강조하는 넷플릭스에게 최고의 복지는 그저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 뿐이다. 성취 지향적인 직원들이 함께 시너지를 일으키며 더욱 위대한 기업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움직이게 할 별도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11]
정작 필자가 충격을 받은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중국. 특히 수학과 과학의 점수를 보고 순간 멍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는데 수학, 과학 각각의 점수차가 무려 70점인 것에서 비롯된 의문들 때문이었다. 과연 이 격차를 앞으로 줄여 나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기존의 많은 산업들이 추격을 당하고 있고, 최신 기술들은 이미 저들과 비교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앞으로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물론 PISA가 미래를 결정짓는 절대적 기준일 수는 없다. 하지만 종합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살펴본다는 측면과, 참가국 학생들이 모두 같은 문제를 풀어낸 결과라는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물론 우리는 언제나 그래왔듯 시기마다 분명 의미 있는 활로를 찾아나갈 수 있으리라고는 믿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아무런 즐거움도 희망도 없는 배움의 인식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과연 더욱 복잡해질 미래의 탈출구를 주체적으로 찾아나설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이런 상황이 더 악화되고 심화되기 전에 교육의 의미있는 변화를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 가야겠다는 위기의식이 강하게 들 수 밖에 없었던 시간이었다.
[1] 위키백과, OECD 국제 학생 평가 프로그램
[2] 에듀인뉴스, [칼럼] 교육부의 솔직하지 못한 PISA 2018 ‘보도자료’ 유감
[3] 중앙일보, 한국 고1 ‘문제 해결력’ 으뜸
[4] p. 44, 저자 인용 출처 : Robelen, “Study Links Rise in Test Scores to Nations’ Output,” and OECD, The High Cost of Low Educational Performance.
[5] 연합뉴스, 사상 첫 ‘온라인 개학’에 ‘온라인 교생실습’ 허용
[6] p. 181, 저자 인용 출처 : Mandara, “An Empirically Derived Parenting Typology.”
[7] 교육부 공식 블로그, OECD 국제 학업성취도 비교 연구(PISA 2018) 결과 발표
[8] 에듀인뉴스, [칼럼] 교육부의 솔직하지 못한 PISA 2018 ‘보도자료’ 유감
[9] 한국교육신문, <핀란드> 교육모델 실패보다는 환경 변화 영향
[10] 헬싱키 이코노미스트 번역, 무너지는 핀란드 교육
[11] slideshare, 넷플릭스의 문화 : 자유와 책임 (한국어 번역본)
* 표지 이미지 출처 : res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