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출간 소식을 접하고 나도 모르게 제목을 곱씹었던 기억이 난다. 잘 알려진 데이터 분석가가 던진 아리송한 메시지 – 제발 하지 말라는 건지, 정말 신중히 하라는 건지 – 가 괜한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마음 캐는 광부 (mind miner) 라고 표현하는 저자는 벌써 20년 넘게 온라인 상의 언어를 분석해 우리의 욕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가장 급진적인 변화를 경험한 최근 10년간, 자신이 예상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봤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는 없었다고 한다. 갈수록 예측이 어려워지는 시대 속에서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던 걸까?
그래도 이를 계기로 지난 연구를 돌아보고, 그 결실을 책으로 맺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듯 싶다 (참고로 직접적인 설명은 인터뷰 기사에 보다 잘 나와 있어 인용해 본다).
불안해서 썼어요. 2015년 이후 글은 썼지만, 책을 내진 않았죠. 그러다가 2020년 잠시 멈춰서, 생각하고 측정해봤어요. 저만 불안한 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불안하실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 지금까지 제가 발견한 나름의 ‘상수’를 알려드리면, 다른 분들도 (새로운) 삶을 준비할 수 있겠다 싶어, 책을 냈습니다.
이건희, [폴인인사이트]송길영 “미래는 이미 왔다…이제 우리가 해야 할 고민은”, 「중앙일보」, 2021년 10월 30일 [1]
1. 급변하는 시대의 키워드
저자가 꼽은 세 가지 상수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① 분화 (개인화), ② 장수하는 인간, ③ 비대면이다. 워라밸, 욜로, 소확행 등 직장 또는 집단과 개인의 만족을 분리시키는 개인화 경향은 이미 오랜 기간 확산 중이었지만, 갑작스럽게 등장한 코로나는 비대면이라는 조건을 삶의 기본 요소로 강제시켜 버렸다. 덕분에 드러난 빈 자리를 관련된 기술과 서비스들이 빠르게 채워나갔고 말이다.
분명 IT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팬데믹이라고 하는 조건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소수만이 독점하고 있던 정보 권력은 지속적으로 개인에게 넘어가고 있고, 정보 뿐 아니라 개인 창작자에게 수익까지 공유하는 경제 민주화가 모든 플랫폼 서비스의 기본 모델로 탑재되고 있으며, 주체적 개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만인의 평등화는 거스를 수 없는 조류가 되었다. 데이터로 집계되지 않고 있던 시장에 새로운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깜깜이 이익을 편취해 온 중간자들의 힘도 빠르게 약화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보다 적은 인원이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는 일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들 (유한계급) 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 것 (포스트 베블런) 이라는 세상으로의 전환이 조용히 진행 중인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불과 10년 사이에 급속도로 진행되다 보니 이전 세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신념, 권위가 뿌리째 흔들리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꼰대라는 단어가 불과 5년 사이에 급격하게 회자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란 소리다). 기존 삶의 방식이 온전히 작동하지 않는 시대는 이미 도래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변화 가운데서 나타난 특징들을 다양하게 기술하는데, 핵심 키워드는 결국 실시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더욱 촘촘하게 기록되고 추적 가능하게 되면서 이제는 정말 착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 현재 |
---|---|
결과 중심 (효율) | 과정 중심 (절차적 정당성) |
회고적 | 현재적 (나우데이터) |
근면 | 성실 = 근면 + 생각 |
물질 | 의미 (풍요 속 철학이 중요) |
성취 | 진정성 |
알림 (마케팅) | 발견 (브랜딩) |
테슬라가 실시간 운전 성향을 분석해 보험금을 산정하기 시작한 것 [2] 은 운전자로 하여금 자신의 모든 운전 습관이 돈으로 환산되고 있음을 의식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최근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만 봐도 변화된 양상이 이미 국가적 수준을 초월했음도 알 수 있다. 항전을 다짐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들, 우주에서 제공받는 인터넷, 민간인을 향한 비겁한 공격, 상상 이상의 취약점을 드러낸 러시아의 군사력 등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분석되면서 머뭇거리던 국가들을 행동하게 만드는 것을 모두가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2. 앞으로의 생존 전략
이처럼 모두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는 가운데서 저자가 제시하는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플랫폼 서비스 제공자가 되거나 장인이 되라는 것. 물론 플랫폼 서비스를 성공시키는 것은 혼자 힘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쉽지도 않은 일이기에 저자가 추천하는 해결책은 결국 한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일상의 혁신을 기록하는 창작자가 되라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도 최소 10년을 바라보고 해야하는 일인만큼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관심을 꾸준히 유지시켜 나갈 수만 있다면, 즉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기록한 자원들이 자산이 되어 미래를 담보해 줄 것임을 강조한다.
애호 (관심) + 스스로 (판단) + 성취 (헌신) = 진정성 (삶의 변화)
이는 사실 저자 본인의 경험이기도 하다. 그는 애초에 한국에서 잘 알려진 데이터 분석가가 되기 위해 지금의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의 일상 언어에 담긴 의미와 변화가 흥미로워서 시작했던 일이었고, 그 일을 10년 넘게 하다보니 그 능력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을 때 사람들로부터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체적으로 전문성을 획득하는 것,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함으로써 자신만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것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저자의 주장이었다. 여기서 ‘그냥 하지 말라’는 그의 메시지는 국룰 (평균) 을 찾지 말라는 것, 즉 따라하지 말라는 말로도 바꿔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벤치마킹이란 따라할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따라하지 않을 무언가를 찾기 위해 하는 것이다).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 [3] 고 했던 피터 틸의 주장처럼 당신의 길을 가는 것만이 급변하는 시대적 조류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3. 유일한 해결책의 아쉬움
책을 통해 들었던 생각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평소의 소신을 오랜 경험과 데이터를 토대로 확인시켜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애초에 필자의 삶 자체가 주체적 성장에 대한 고민의 연속이었고, 훌륭한 스승들을 통해 누리게 된 자유감을 전하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였다. 하지만 정신분석, 철학이라는 비인기 분야에 진지 충만한 성격까지 더해져 대중적 인기와는 영 거리가 먼 길을 가다보니 (진정성만큼은 의심할 바 없겠지만), 이렇게까지 한다고 앞으로 무슨 변화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늘 안고 있었다. 그래도 어려운 내용을 오랜 시간을 들여 정리하고 곱씹어가면서 이해하게 됐을 때의 뿌듯함 덕분에 지속해오고 있었는데, 저자가 의미 있는 확신을 더해준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실질적인 대안이 사실상 한 가지만 제시된 것, 즉 중간은 없으며 개개인이 가야할 길은 장인 뿐이라는 주장에는 염려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을 진지하게 받아들일수록 우리는 더욱 가혹한 의무 앞에 놓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배분된 권력이라는 것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 고도화 된 기술을 잘 찾아 사용하고, 배움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만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음을 강요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일이고,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마땅히 따라야 할 무언가가 되어버리는 순간 이를 거부하기 위한 생의 향락이 꿈틀거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취미는 취미일 때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일반의 생각처럼 주체적 성장이라는 고민 자체가 순수성을 잃지 않도록, 이런 방식이 또 하나의 ‘국룰’로 자리매김하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사유화가 한창 진행 중인 정보 권력은 이미 우리를 호모 나르시시스트의 자리로 몰아가고 있다. 본말이 전도된 관종의 경제를 넘어 우리는 온전한 주체적 자유를 실현할 수 있을까? 물론 여기에서도 ‘그냥 하지 말라’는 저자의 메시지를 다시 소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사고하지 않는다면 이미 마련된 형식에 안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한계라는 것을 늘 자각하기 위해서 말이다. 수단이 목적이 되는 것이 너무나도 쉬워져버린 세상. 그 어떤 기술과 정답이 우리 삶을 종용하려 해도 그냥하지 않는 삶을 죽는 순간까지 지켜나갈 수 있길, 그렇게 의무를 뛰어넘는 자유자의 삶을 누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던 시간이었다.
[1] 이건희, [폴인인사이트]송길영 “미래는 이미 왔다…이제 우리가 해야 할 고민은”, 「중앙일보」, 2021년 10월 30일
[2] 서영태, 테슬라가 보험사업을 더 키우게 된 까닭은, 「연합 인포맥스」, 2022년 2월 21일
‘테슬라는 올해 보험 서비스 지역을 현재의 텍사스 등 5개 주에서 45개주로 넓힐 계획’이라고 한다.
[3] 피터 틸, 『ZERO to ONE』
[4] 빠니보틀, 잠깐 멈추기로 했습니다 【아메리카 마지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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