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참 신기한 나라다. 우리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까지 다가가기에는 너무도 먼 나라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우경화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일본 저자들의 책을 접했을 때마다 느껴왔던 그들 특유의 집요함, 낮춰서 표현하면 ‘오타쿠 기질’이겠지만 높여 말하자면 ‘전문적’이라고 할 수 있을 그들의 삶의 태도가 늘 인상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몇 주 씩 붙잡고 씨름해야 하는 책을 읽다 기분전환을 위해 집어 든 책이었지만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기뻤다.
저자는 사도시마 요헤이라는 젊은 CEO로 도쿄대를 졸업하고 편집자로 활동하며 20대에 이미 《드래곤 사쿠라》 (한국에서 평균 시청률 20%를 뛰어넘은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로 방영)를 성공시키고, 몇 만부 판매에 그치던 《우주형제》를 누적 1,600만 부로 끌어올려 히트시킨 장본인이었다. (TV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 20개국 수출) 이후 작가 에이전트 회사인 (주)코르크를 설립하고 역량 있는 신인을 베스트셀러 작가로 키워내며 일본 콘텐츠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CEO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란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이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가설을 어떻게 세웠고 이를 실천했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그의 가설은 우리의 일반적인 방식과 무엇이 다를까? 책을 여는 순간부터 떠올랐던 질문들은 머지않아 저자의 분명한 답변으로 돌아왔고, 이에 대한 깨달음을 나누고 싶었다.
저자는 크게 ① 가설을 만드는 방법과, ② 가설을 현실화하는 방법의 틀에서 글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번 글에서는 첫 번째 단계인 가설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1.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바를 믿고 가설을 세워라.
쉽게 말해 나 자신을 믿으라는 이야기다. 어떠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과거’의 데이터를 붙잡고 거기에 의지해 쉽게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어차피 위 분들이 좋아하는 창조, 혁신 같은 새로운 거 안 나오니까), 스스로가 평소에 경험하고 느껴왔던 ‘무의식’의 데이터를 믿고 가설 – 난 이를 ‘꿈, 이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 을 세운 뒤 이를 보완하며 실현해 나가라는 것이다.
(29) ‘정보 → 가설 → 실행 → 검증’이 아니라 ‘가설 → 정보 → 가설의 재구축 → 실행 → 검증’이라는 순서로 사고하면 현재 상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다.
(27) 전례주의에서는 ‘정보 → 가설’ 순서로 사업을 계획한다. 특히 업계가 불황일 때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신중해지면서 과거의 정보를 모아놓고 ‘가설 → 검증’을 반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건에 너무 진지하게 몰입하는 나머지 정보를 모은 후 가설을 세우지만, 거기에는 커다란 함정이 숨어 있다. 그렇게 하면 될 거라고 판단해 취한 전례주의 행동이 옴짝달싹 못하게 할뿐더러 스스로 목을 조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28) 그렇게 한다면 새로운 것은 무엇 하나 탄생할 수 없다.
(30) 하루하루의 경험 속에서 얻는 보이지 않는 데이터를 믿고,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가설을 세워라. 그러고 나서 그 가설을 실증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 움직여라. 나아가 자신이 얻어낸 피드백을 기초로 가설을 보완하고 검증하라. 그것이 중요하다.
갑자기 이 분이 생각났다.
김용옥 선생님은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을 비판하며, 헬조선을 만드는 건 젊은이들이라는 얘기를 했는데 어찌 보면 저자의 관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헬조선에 살고 있는 이유는 대기업의 시장 잠식, 무능한 정치, 높은 집값 등에 있기 때문에 (정보) 이 나라에는 답이 없음을 믿은 채 (가설) 이를 벗어날 방법을 찾고 있는 것 (실행) 이라는 전례주의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사고방식은 이와는 정 반대다. 자신이 관심을 갖는 곳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가설) 그 방법을 사용했을 때 사람들이 어떤 혜택을 얻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자료를 모아 분석하여 (정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면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며 개선해 나가는 (실행) 방법으로 계속해서 자신만의 성취를 이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 같은 해석을 나를 비롯한 젊은 세대를 비난하는 것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적인 문제의 7~8할은 기성세대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비난의 화살은 오히려 그들이 받아야 되는 게 마땅하다고 본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찾는다는 것이 사치스럽게 여겨질 정도로 어려운 상황인 건 분명하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아주 미세한 빛줄기라도 바라볼 수 있진 않을까?
2.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라.
어쨌거나 위와 같이 가설을 세우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데이터가 아니다. 자신이 세운 가설이 힘을 받으려면 단기적인 변화에 관심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 갖고 있던 선입견을 버리고 시대가 가도 변하지 않을 장기적인 흐름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선입견을 버리기 위한 태도를 ‘우주인 시점’이라는 독특한 관점으로 설명하는데, 그 예로 출판사와 신문사의 강점을 편집, 출판, 저널리즘 정신 등이 아닌 상품을 빠르게 배송시킬 수 있는 유통망을 꼽았다. 기업이 역량을 집중해야 할 본질을 파악했으니 이제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가설을 세우면 되는 것이다.
(83) 내가 세상을 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변하지 않는 것(본질)을 발견할 것, 그리고 매일 발생하는 변화 속에서 무엇이 근본적인 변화이고, 무엇이 문화나 관습의 일시적인 변화인지를 ‘우주인 시점’으로 발견해내는 것이다. 그러고는 장기적인 변화가 무엇일지 예측하고 가설을 세운다. 지금 존재하는 모든 습관은 기술이 변해가는 가운데 ‘과도적’인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81) ‘인간은 어떤 때에 어떻게 느끼며, 어떤 식으로 행동할까’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고, 소비자가 즐거워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82) 기업은 반드시 살아남는다… (83) 나는 내일은 실패할지 모르지만 10년 후에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을 할 때 더 즐겁다.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는 편이 오히려 리스크가 크다. 앞으로 어떤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이처럼 가설을 세우기 위한 ‘무의식의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힘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투자에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었다.
3. 하고 싶도록 ‘만들어라.’
이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해서 들도록 자발적으로 환경을 조성해 나갔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호불호를 분명하게 알고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따라오는 금전적 보상도 함께 관리하면서 동기부여의 두 축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구조가 선순환을 일으켜 그를 일찍이 성공한 편집자로, 무엇보다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앞서 나갈 수 있었다.
(173)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동기로 삼아 움직이고 있을까? 그것은 단 하나, ‘하고 싶다’는 동기다. ‘하고 싶다’는 동기를 지속시키기 위해 ‘돈을 버는 것’ 역시 확실히 한다. ‘하고 싶다’는 동기가 가장 먼저이고, ‘돈을 번다’가 두 번째다. 이 순서라면 언제까지나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일할 수 있다. 지속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 (36) 이처럼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정보를 모으며, 가설을 보강해 실행하면, 일이 더욱 즐거워진다. 결과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게 된다. 또 즐겁기 때문에 더욱더 일이 하고 싶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이런 식으로 즐기게 만드는 것 역시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요소다.
(197) 나는 죽을 때 ‘나는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최대의 리스크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가 즐겁다고 생각하는 일에 투자하며 시간을 쓰고 싶다.
(212) 나는 회사라는 구조를 만들어 인생을 최고로 즐기자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철저하게 추구하고 싶다. 자기중심적인 생각 같지만 사람은 혼자만 행복해질 수 없다. 아무리 올바른 행위를 하고 있어도 혼자서는 허무함에 사로잡힐 뿐이다… 때문에 나는 사명감을 중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스스로가 즐겁게 일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사명을 다하는 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도전에 대한 저자만의 독특한 해석은 그가 성공의 구조를 얼마나 굳건하게 세웠는지를 보여준다.
(81)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확실하지 않은 일에 힘을 쏟기가 불안하지 않은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이 무섭지 않은가? 나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IT기업이 전인미답의 길을 걷고 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인간이다. 나와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 더는 그다지 위험한 시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181) 창업했을 때에도 자신감이 넘쳐 보였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치밀하게 짜놓은 비즈니스 모델이 있는 거죠?” 라든가 “몇 년에 걸쳐 계획을 세웠나요?”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자신은 있(182)었지만 앞으로 할 비즈니스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미지의 세계에서 노력해왔으니 앞으로 다시 새로운 세계에 나아가도 노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비즈니스 모델에 관해서는 ‘가설’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올바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도전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꿈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어왔다. 아니 사실 이제는 너무 지겨워서 아무도 얘길 하지 않는다. 정작 주변에서 그러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 사람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꿈을 어떻게 실현시켜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바다 건너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맛만 다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만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즐거운 일을 하며 동시에 그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용기를 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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