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대하는 아마존의 방법 (feat. 제프 베조스), 『발명과 방황』

readelight

블루 오리진 우주선
img

실패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아니, 실패를 어떻게 성공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을까? 성공에 있어서 실패가 필연적이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수도 없이 증언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그 실패가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에 자연히 몸이 움츠러들게 된다.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고,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또 회복 기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 없다는 공포가 일시에 밀려오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실재의 침입에 대한 해법도 이미 마련되어 있긴 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본인을 포함한) 유대인들을 통해 나를 붙잡아 줄 ‘삶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빅터 프랑클, 삶을 지탱시켜 주는 왜곡된 환상을 포기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라캉과 지젝의 조언 (환상 가로지르기), 사랑에 대한 믿음을 통해 절망적 현실로부터 이미 구원받았음을 선언한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결국 절망적인 현실을 인정하되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삶을 지탱할 원동력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현실적인 문제는 남아있다. 이런 해결 방법이 너무 궁극적이라는 것. 그러니까 그런 두려움을 훌륭히 극복하고 성공한 많은 사람들의 핵심적인 요건이자 공통점이었지만, 그저 하루 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는 필자같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 말이다. 부족한 믿음을 보완할 장치가 필요하다. 수많은 인문학 서적들 가운데서 그의 책이 장바구니에 담겨있던 것은 바로 이런 절박감 때문이었다.

1. 베조스는 실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결국 일을 진전시키는 것은 당신이 마주하는 문제, 실패, 성공하지 못한 것들입니다. 이럴 때는 다시 일어나 도전해야 합니다. 좌절을 겪을 때마다 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겁니다. 기지를 발휘해야 합니다. 자립심을 발휘해야 합니다.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을 발명해야 합니다. 아마존에는 이렇게 해야만 했던 수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실패를 겪었고, 저는 아마존이 실패하기에 딱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실패를 아주 잘합니다. 엄청난 연습을 해왔으니까요.
pp. 64 – 65

실패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하다. 성공을 위해 실패는 필연적이며, 그럴 때마다 그저 다시 도전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표현이 단지 상투적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의 엄청난 성공을 뒤로 하더라도 글을 통해 전달되는 확신이 실패는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베조스는 실험적 실패에 대한 이런 긍정적인 태도가 할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왔음을 고백한다. 필요한 물건들을 손수 만들고, 고쳐왔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발명하기를 즐겨했던 그는 실험 과정에서 오는 실패를 자연스럽게 여기게 된 듯 싶었다. 또한 동생들에 대한 어떤 짖궂은 발명에도 혼내는 일이 없었던 어머니의 반응도 발명의 기쁨을 유지시키는 데 큰 몫을 했을 것이고 말이다. 이처럼 가족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실패에 대한 그의 관념은 아마존이 일으킨 사업의 핵심 요소였음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실패는 발명의 본질이지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기에 일을 제대로 해낼 때까지 빠르게, 또 계속해서 실패해야 한다고 한 것. (p. 296) 발명에는 실험이 필요한데, 이 때 성공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실험이 아니라는 것. 즉, 실패의 위험을 감수할 때만 진정한 실험이라고 할 수 있으며, 큰 보상은 오직 (일반적으로 옳은) 통념에 반하는 선택에 베팅 했을 때만 얻을 수 있다는 확신. (p. 149) 야구에서 타자는 아무리 좋은 스윙을 해도 최대 4점 밖에 낼 수 없지만, 사업에서는 그것이 1,000점이든 10,000점이든 제한이 없기 때문에 과감함이 중요하며, 따라서 이러한 성공이 실패한 수많은 실험을 만회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p. 317) 등이 그것이다. 말 그대로 성공을 통해 주어지는 보상의 기대가 과정에서의 고통을 모두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실패에 대한 이런 확신을 뒷받침하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베조스가 아무 것에나 힘을 쏟진 않았다. 방향 없는 실험과 실패만큼 의미없는 노력도 없을테니까.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서 실패를 기꺼이 감내할 만큼 가치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2.1. 변하지 않는 가치에 장기적 집중

사람들은 대개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궁금해 한다. 베조스가 받았던 질문들도 주로 앞으로 10년간 변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정 반대로, 앞으로 10년간 변하지 않을 것은 무엇인가라는 점이었다. 오랜 기간동안 변하지 않을 것이라면 그것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가치라는 것도 실패를 대하는 그의 마음가짐처럼 대단히 상식적이다. 아마존에 있어서 그가 꼽은 변치않는 가치는 빠른 배송과 낮은 가격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고객이 느린 배송과 높은 가격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 않나? 하지만 여기에서도 중요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진실을 얼마나 굳게 믿고 악착같이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아마존이 오랜 기간 이익을 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위키백과를 인용하자면 94년 설립 후 무려 2003년이 되어서야 첫 연간 이익을 거뒀다고 한다 [1]). 그 이유는 애초에 모든 이익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성장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고객경험 향상의 측면에서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부분은 무료배송 제안과 지속적인 상품가격 인하입니다. 결함을 없애고, 생산성을 높이고, 그로써 절감한 비용을 낮은 가격의 형태로 고객에게 되돌려주자는 결정은 장기적 시각에서 내려진 것입니다. 매출 증가는 실현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며 가격인하는 거의 언제나 당장의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가격-비용의 순환 구조’를 끈질기게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더욱 탄탄하고 가치 높은 기업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비용 중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을 위한 것과 같은 대부분은 비교적 고정적이고, 가변비용의 대부분은 규모가 클수록 관리가 잘됩니다. 그렇기에 아마존과 같은 비용 구조에서는 매출을 더욱 늘리는 것이 매출당 비용을 낮추는 길이 되죠. 일례로 인스턴트 오더 업데이트 같은 기능을 4000만 고객이 사용하도록 만드는 비용은 100만 고객이 사용하게끔 만드는 비용의 40배가 아닙니다. – 2부. 주주서한 <장기적 사고 (2003년)>
p. 216

아마존은 온라인 플랫폼 사업이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만 달성하면 서비스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고정 비용)은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이었고, 그는 놀라운 실행력을 통해 이를 현실로 만들어 버렸다.

2.2. 고객의 욕망을 원동력으로

또한 그에게 있어 ‘고객 집착’은 많은 기업들이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고객 만족’의 차원을 넘어선다. 특히 자신이 집착하는 것은 경쟁이 아닌 고객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하는데, 이런 선택의 가장 큰 장점은 고객이 결코 만족을 모른다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고객이 대단하다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그 순간에도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불만을 갖고 있으며, 바로 그런 점을 찾아 고객을 대신해 발명해 내는 것이 아마존의 ‘선교사적 사명’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단기적 주가 상승에만 열을 올리는 용병이 아닌 장기적으로 고객을 위해 헌신하는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영원한 에너지원을 확보한 그들은 발명에 선제적으로 몰두해 서비스를 만들어야 하기 전, 그러니까 의무가 되기 전에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이런 과정의 반복이 결과적으로 다른 경쟁사들보다 수 년 넘게 앞설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며 자랑스러워 한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선제적 발명이란 바로 이런 수준을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기준에 못 미치는 고객경험이 제공된 경우를 찾아내고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에 고객에게 환불해드리는 자동화 시스템도 구축했습니다. 업계의 평자 한 명은 최근 아마존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자동 이메일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고객님께서 아마존 비디오 온 디맨드(Amazon Video On Demand, 아마존의 온라인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로 <카사블랑카(Casablanca)>를 시청하시던 중 비디오 재생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이에 2.99달러를 환불해드렸습니다. 곧 다시 뵙게 되길 바랍니다.” 선제적 환불 처리에 놀란 그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런 글을 썼습니다. “아마존은 ‘내가 비디오를 시청하던 중 비디오 재생이 원할하지 못했음’을 인지했고, 그 때문에 환불을 결정했다. 세상에… 고객을 우선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p. 269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는 여기에서도 사실상 변하지 않는 것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고객의 욕망이 언제나 변한다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2.3. 분석보다는 직감을

마지막으로 그의 실패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는 직감을 믿는 것이었다. 앞서 큰 수익은 일반적으로 옳은 통념에 반하는 결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아마존 프라임이었다. 우리에게 쿠팡의 로켓 와우로 익숙한 무료배송 구독 서비스를 무려 10년도 전에 미국에 도입하면서 겪었던 갈등을 배짱있게 밀어붙여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것이다. 한 직원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프라임 서비스는 참담한 재무 분석 결과와 수십억원에 이르는 배송 매출의 포기, 살 떨리는 어뷰징 문제 등을 안고 있었다. 물론 일정 규모를 달성하면 배송 비용을 상당히 낮출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장기적 수익이 단기적 손실을 보상한다는 그의 가치관은 여기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됐고,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해내게 된다.

제 사업과 인생에서 최고의 결정들은 분석이 아닌 마음, 직관, 배짱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분석에 기반을 두고 결정할 수 있을 때라면 그렇게 해야겠죠.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들은 언제나 직감, 직관, 기호, 마음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p. 123

수학 기반의 결정은 광범위한 합의를 이끌어냅니다. 그에 반해 판단 기반의 결정은 반대에 부딪히거나 논란을 일으키곤 하며, 실제로 실행되어 효과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그런 반대와 논란을 피하기 힘듭니다. 논란을 견디고 싶지 않은 조직이라면 자신들의 의사결정을 첫 번째 유형의 것으로만 제한하면 됩니다. 다만 그렇게 할 경우엔 논란뿐 아니라 혁신과 장기적 가치창출도 크게 제한될 것이라는 게 우리의 시각입니다. 정량적 · 분석적인 문화와 대담한 결정을 기꺼이 내리는 문화를 결합시키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믿어주십시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항상 고객을 우선시할 것입니다. 그것이 주주 가치를 창출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pp. 228 – 229

3. 상상을 뛰어 넘는 비전

알다시피 미국은 세계 최고의 우주 개발 선진국이다.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할 때 온 가족이 경험한 환희를 기억한다는 베조스는 블루 오리진을 세우고 우주 개발에 여념이 없다 (최근 여기에 집중하기 위해 아마존 대표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왜 이렇게 우주 개발에 공을 들이는 걸까? 이제까지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 말 그대로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는 ‘근사한 꿈’이 그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고는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인류의 번영은 필자의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BlueOrigin NewShepard Launch 900 1
New Shepard 로켓 발사 장면 (출처 : 블루 오리진[2])

인류의 에너지 효율은 산업시대 이후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해 왔다. 하지만 수요는 그보다 더 빠르게 증가해 현재는 연평균 3%의 성장률, 즉 25년마다 두 배에 달하는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구의 자원이 한정적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증가폭이 다음 세대, 또는 그 다음 세대에 이르러 ‘배급제’라고 하는 당연하고도 비극적인 결과를 예상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자유와 정체는 양립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불편을 감내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베조스는 지구와 인류를 지키기 위해 시선을 밖으로 돌린다.

그는 태양계에 무려 1조의 인류가 존재할 수 있다고, 그렇게 되면 1,000명의 모차르트와 1,000명의 아인슈타인이 등장해 인류의 미래를 더욱 밝혀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시대에 이런 모습을 볼 수는 없을지라도, 자신이 이미 마련된 인프라 – 인터넷, 배송 시스템 등 – 를 통해 아마존을 성공시킬 수 있었듯, 후대 인류를 위한 토대 – 우주 발사 비용의 혁신적 감소 (재사용), 우주 자원 활용 기술의 준비 – 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우주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내용도 너무 좋았지만, 우주 개발의 목적을 설명하는 이 내용을 읽고는 순간 멍하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이 강조하는 비전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깨닫게 됨과 동시에 안정적인 삶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우주 개발이나 원대한 미래를 꿈꿀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받은 것에 감사하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나눌지를 고민하고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그의 모습은, 두고두고 내게 많은 질문을 남겨줄 듯 싶다.


※ 이 글은 출판사의 책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전적으로 제 주관적인 감상임을 밝힙니다.
[1] 위키백과 : 아마존
[2] Blue Origin : Latestes Images
* 표지 이미지 출처 : blueorigin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