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역사의 심판대까지 가기엔 그 잘못이 너무나 명백해 더 이상 지체될 수 없었던 대통령의 역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의 선고 즉시 지위를 박탈당한 후 사저로 돌아가면서 그녀가 남겼던 말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떠올랐던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아니 잘못 자체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억울함만을 호소하는 이러한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독일의 나치 전범 중 한 사람인 아이히만의 성장과 그가 저질렀던 일, 전후 망명생활과 체포, 재판 과정 및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다루고 있는 가히 홀로코스트 역사 기록물이라 할만한 책이다. 특히나 저자인 한나 아렌트 자신이 원고 측 입장에 서 있는 유대인이었음에도 이스라엘과 아이히만의 주장과 숨겨진 의도들을 날카롭게 분석하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그렇게 동족들로부터도 수많은 비판을 받았던 문제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이 책에 대한 신뢰도와 호감도가 올라간 것이 사실이다.) 반성되지 않은 역사는 늘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며 늘 절감하고 있지만, 특히나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잘못된 신념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떳떳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이히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1. 아이히만은 어떤 사람인가?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줄곧 유대인의 이송 (독일 또는 동맹국에서 유대인을 쫓아냄)을 맡아왔던 책임으로 법정에 서게 된 인물이었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유대인 학살의 가교 역할을 했던 그의 ‘지시 여부’에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그린 큰 그림 – 아이히만은 우린 민족의 말살을 주도한 ‘괴물’ – 과 피고인의 실제 모습 – 정신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평범한 사람 – 은 너무나도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데, 그것이 이 책의 부제를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고 짓게 한 중요한 이유였다. 4남 1녀 중 맏이로 태어난 아이히만은 고등학교도, 이후 다녔던 기술 직업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그는 평생 동안 이러한 자신의 문제들을 보다 덜 부끄러운 일인 ‘외부의 탓’으로 돌리곤 했는데, 이러한 태도는 그만의 특유한 ‘허풍’으로, 또한 그가 죄악 된 명령을 ‘광대로서’ 수행하는데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사실 사람의 이런 자기보호 성향은 시대를 막론하고 매우 일반적인 모습이긴 하다.) 이후 성인이 되어 중요한 사건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가 상관으로부터 시온주의의 고전인 <유대인의 국가>를 읽고 나서 곧바로, 또 영원히 시온주의자로 개종했다는 점이었다. 특히 이러한 생각은 시온주의자인 유대인 지도층을 만나면서 더 공고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특별히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상주의’에 매혹되었다는 점이었다. 이상주의자는 ‘이상을 삶을 통해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좋은 정의를 갖고 있지만, 그에게 이상주의가 매력적이었던 것은 그들 시온주의자들이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 어떤 사람이라도 희생시킬 각오를 갖고 있다는’ 데 있었다. 이는 아이히만이 ‘유대인 문제의 해결 (유럽으로부터 추방하여 이스라엘 국가를 세울 수 있도록 함)’에 온 힘을 쏟았던 배경이 되는 부분이고, 바로 그런 점에서 아이히만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 삼을 수 있었다. 특별히 저자가 지적한 아이히만의 성격적 결함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1.1. 주체적인 신념을 갖고 있지 않았다.
아이히만은 자신에게 ‘명령’을 내려줄 결정권자가 없으면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소위 결정장애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삶에 대한 특별한 의욕을 갖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존경할 유일한 대상은 ‘하사에서 5,000만의 제독이 된 히틀러’였고, 오로지 그의 법만이 그의 삶의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히틀러의 ‘신념 자체’에는 관심도 없었다.)
(87) 그는 신념을 가지고 당에 가입한 것도 아니었고, 또 어떤 신념에 설득된 적도 없었다…. 그는 제대로 정보를 입수할 시간도 없었고, 알고 싶은 욕구는 더더욱 없었다. 그는 당의 정강도 몰랐고 <나의 투쟁>도 읽지 않았다. 칼텐브루너가 그에게 “친위대에 가입하는 것이 어때?”라고 물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지 뭐”라고 대답했다. 일은 그렇게 이루어졌고 그게 전부였다.
더욱이 이러한 성격적인 문제는 재판에서 수시로 말을 뒤집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짓이 본인의 목숨을 위해 싸우거나 자비를 간청하는 일이라고 격정적으로 확언한 뒤, 변호인의 지시로 자비를 호소하는 자필 문서를 제출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었다. 저자도 이를 보면서 무척이나 속이 뒤집어졌던 모양이다. 사실 함께 있던 사람이라면 누군들 그러지 않았을까.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아이히만이 칸트의 <실천 이성 비판>을 읽었으며, 그의 의무에 대한 정의 – 맹목적 복종을 배제하는, 인간의 판단 기능을 토대로 한 의무 – 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또 이를 위해 살았다는 그의 주장이었다. 물론 전쟁 후반 유대인 문제의 해결책이 ‘이송’에서 ‘학살’로 넘어갈 당시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목적지가 달라진 이송’을 수행하며 자신이 행위의 주인은 아니며, 어떤 것도 변경시킬 수 없다는 말로 자위했다고 했지만 말이다. (그럼 대체 칸트 얘길 왜 한 걸까?) 이처럼 아이히만의 ‘사유 불가능성’은 그의 맹목적 충성을 드러내게 한 원인이자, 추상적 언어의 반복에만 머무르는 강박성, 책임의 투사성(문제의 회피)의 지독한 결과였다.
1.2.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는 자기 신념과 사유 능력이 상당히 부족했기 때문에, 아이히만은 자신을 사로잡는 추상적 단어 외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106) 아르헨티나나 예루살렘에서 회고록을 쓸 때나 검찰에게 또는 법정에서 말할 때 그의 말은 언제나 동일했고, 똑같은 단어로 표현되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위 문장을 읽을 때면 어김없이 처음 언급한 그분이 생각난다.) 어쨌거나 그의 사고 속에서 그는 진실로 무고했다. 자신은 단지 신 앞에서만 유죄일 뿐, 법 앞에서는 무죄임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시온주의, 책임 회피, 사유의 불가능성 등으로 어느 정도 설명된다. 이처럼 복합적인 공감 능력의 결여는 그의 인생을 밑바닥부터 망쳐놓았고 스스로 희생자임을 자처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책에서 가정환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자신의 출생을 늘 비관했던 것으로 미루어 그의 생각과 감정, 선택을 존중해 줄 수 있는 따뜻한 분위기의 가족환경에서 성장하지 못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2. 아이히만의 재판은 무엇이 문제였는가?
한편으로 아이히만뿐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 역시도 재판에 있어서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되어 예루살렘으로 압송된 후 백여 차례의 공판과 사형 선고가 떨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저자는 ‘지난 계승국들의 재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평가절하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 또한 아이히만 못지않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2.1. 재판을 주도하는 이들의 ‘큰 그림’에 끼워 맞춰졌다.
재판은 시작부터 문제 투성이었다. 아르헨티나로 도망쳐 망명 생활을 하던 아이히만을 붙잡아 압송한 건 아르헨티나 경찰이 아닌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타국에서 외국인 범죄자를 납치하는 초유의 사태는 아무리 아르헨티나가 범죄자 인도에 소극적이었다 하더라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분명 국가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음에도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아이히만의 극악무도한 범죄’ 앞에 아르헨티나의 입장 따위는 가볍게 무시되었다. 이와 같은 불법 납치 행위가 아무런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다는 것부터 ‘무죄 추정의 원칙’은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완성된 그림은 웃지 못할 상황들을 연출했고, 최종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298) 최종 해결책에 대한 그의 역할은 과도하게 과장되어 왔다…. 이 재판을 전혀 과장되지 않은 고통의 사실에 기초를 두려 한 검찰은 분별없이 그 과장된 내용을 과장해 댔다…. “항소자가 어떠한 ‘상급자의 명령’도 받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가 최상급 자였으며, 유대인 문제와 관련된 모든 명령을 그가 내렸다.” 그것은 정확히 검사의 주장이었고, 지방법원 판사들은 이 점을 수용하지 않았는데, 위험한 난센스였음에도 불구하고 항소심 법정은 그 내용을 전적으로 옹호했다.
자기 신념이 존재하지 않는 ‘광대’에 불과했던 아이히만은 어느새 유대인 문제의 ‘총책임자’로 변신해 있었고, 신이 주재하는 예루살렘의 법정은 그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 거룩한 자리가 되었다. 특히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범죄 인식 능력을 갖고 있지도 않았던 그는 자신의 입장을 언제나 앵무새처럼 반복했기에 재판 과정을 읽는 내내 마치 한 편의 익살극을 보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2.2. 철저히 유대인의 문제로만 접근해 범죄에 대한 시야를 좁혀버렸다.
나치의 만행은 인류사에 있어 전례 없는 살인극이었다. 물론 유대인의 피해가 가장 극심하긴 했지만, 유럽의 다른 소수 민족도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처지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예루살렘 국가의 입장을 또다시 난처하게 만드는 이유로 작용했는데, 나치의 만행이 분명 ‘유대인에게만 행한 범죄’가 아닌 인류의 질서를 위반한 ‘반인류적 범죄’ 였음에도 아이히만은 국제 법정이 아닌 이스라엘의 법정에 세워졌던 것이다. 이는 그들의 ‘수동적 속인주의’ 원칙, 즉 희생자가 유대인이니 오직 유대인만이 그의 범죄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입장에 근거한 것으로 전혀 새로운 종류의 범죄를 특정 국가 국민만을 겨냥한 테러로 축소해 초국적 대처 방법을 찾을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쳐 버렸다. 결국 아이히만 재판은 ‘승자의 법정에서 보복적 조치를 받은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2.3.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아 사실상 재판의 균형을 상실했다.
어쩌면 이스라엘은 2,000년 만에 다시금 탄생한 주권국가로써 그 성취를 자축할 수 있는 그럴듯한 희생양을 필요로 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과정이 너무도 성급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재판 과정이 아닌 당시의 범죄 상황에서 이스라엘 스스로의 잘못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돌아볼 시간을 갖기 어려웠다. (축제의 장에서 자성이라니 이 얼마나 꼰대 같은 이야기인가?) 즉, 나치가 죽음의 수용소로 유대인을 이송하기 위해 해당 지역의 저명한 유대인을 이용했다는 사실은 철저히 감춰져야만 하는 것이었고, 이런 내용들이 폭로될 때마다 이스라엘 법정과 행정부는 애써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하지만 저자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협조가 아니었다면 600만에 달하는 희생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유대인 스스로의 책임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못을 박는다.
(196) 어디에서 살든지 간에 유대인에게는 인정받는 지도자들이 있었고, 거의 예외 없이 이들의 리더십은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나치스와 협력했다. 모든 진실은 만일 유대(197)인이 정말로 조직이 되어 있지 않았고 또 지도자가 없었더라면 혼란과 수많은 불행들이 있었겠지만 희생자들 전체가 400만, 500만 600만에 달할 리가 거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모든 국가 당국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위원회도 아주 재빠르게 ‘나치스의 도구’가 되어버린 네덜란드에서는 10만 3000명의 유대인이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되었고, 대략 5000명은 테레지엔슈타트로 통상적인 방법을 통해 이송되었는데, 이는 물론 유대인위원회의 협력을 받아서였다. 이 가운데 단지 519명의 유대인만이 죽음의 수용소로부터 돌아왔다. 이 숫자와는 대조적으로 그 2만 내지 2만 5000명의 유대인 가운데 1만 명의 유대인은 나치스를 탈출(이것은 유대인 위원회로부터의 탈출도 의미함)하여 지하로 잠적해서 살아남았다.
결국 이와 같은 공판 끝에 내려진 판결 또한 조목조목 비판을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대량학살 시 살인자들의 보고를 전달만 했던 것이 학살 책임의 증거로 채택됐고, 이송 전문가였을 뿐 책임자가 아니었음 역시 가볍게 무시되었으며, 학살 수용소 내에서도 생사여탈 권한을 갖지 못했던 그에게 단지 이스라엘의 영광을 위해 모든 권한이 덧씌워졌고, 그렇게 아이히만의 재판은 법의 이름을 빌린 일종의 정치쇼로 전락해 버렸다.
3. 아이히만의 삶과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3.1. 수동적 주체는 비극적 결말 앞에서도 할 말이 없다.
상당히 무서운 말이다. 내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변화하는 환경 가운데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지 않는다면, 적어도 이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주어지는 결과에 대해 해명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점을 아이히만의 재판은 보여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믿음, 즉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 이처럼 신념은 행동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만 거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위협의 강도에 따라 신념을 꺾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아이히만의 경우는 특별히 유대인을 향한 적개심을 갖고 있지도, 또 가질 필요도 없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의 업무를 변경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상황에 타협할 수 있는 신념’을 택했고, 그 신념은 그에게 권한과 관계없는 책임을 요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한 세간의 시선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을 향한 그녀의 마음이 무엇이었든, 그의 행동은 자신의 말을 분명히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어려웠고, 결국 전국민적인 공분을 사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녀가 어떤 억울함을 호소한다고 하더라도, 지킬 것이 없었던 그녀의 신념 덕분에 자신 역시도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3.2. 매개체는 사유의 직접적인 접근을 차단한다.
나치는 그들의 치부를 교활하게 덧씌울 ‘언어 규칙’을 고안해 사용하였고, 이에 따라 ‘제거’, ‘학살’ 등의 직접적인 단어들은 ‘최종 해결책’, ‘소개’, ‘특별취급’ 등으로 대체되었다. 덕분에 그들은 스스로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데서 비롯되는 위험과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점진적으로 유대인들을 향한 동정심보다는 자신의 임무의 막중함으로 시선을 돌리는 데 성공한다. 이처럼 직면한 위험을 모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를 대신할 ‘매개체’를 두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가장 잘하는 ‘중의적 언어 사용’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이보다 더 보편적인 예는 바로 ‘돈’일 텐데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화폐는 어느새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이 매개체의 능력이 돈처럼 너무 탁월할 경우 수단에 불과했던 애초의 가치가 전도된다는데 있다. 즉, 자신이 바라보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행동하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매개물의 가치가 나의 사고를 제한시키는 방식으로 판단의 우선순위가 뒤바뀌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이히만에게 있어 이를 실현시켜준 매개체는 ‘권위’였다. 자신의 모든 판단을 기꺼이 떠맡아 줄 수 있는 ‘조직의 명령’ 단지 그뿐이었다. 그가 재판에서 후안무치의 떳떳함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모든 책임을 ‘나치’에게, 또 자신의 ‘변호사’에게 의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던 아이히만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나의 수동성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매개체는 무엇인가?
(※ 참고로 매개체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 썸네일 이미지 출처 : edu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