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그 고마움을 잊게 되는 대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흔히 언급되는 공기나 물, 태양 등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육체적 생존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물질적인 동시에 정신적인 인간에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어쩌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결정지을 가능성인 ‘자유’에 있지 않을까 싶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이 책이 그동안 내게 주어진 자유를 얼마나 당연시 여기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온전하다고 볼수도, 인류가 존속하는 한 도달할수도 없겠지만 인류 역사상 오늘날처럼 개개인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 의미가 더욱 깊이 와닿았던 것은 오늘날의 자유 개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험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고 각 시대의 이해와 믿음에 따라 자족할 수 있는 여건은 다양하게 주어졌을 것이다. 다만 철저한 계급 사회에서의 자유란 지극히 작은 것으로 위안삼는 것만이 요구되기에 ‘삶의 선택의 범위’라는 차원에 있어서 오늘날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전례 없는 자유 속에 살면서도 우리의 눈을 환상 속에 가두는 기술의 발전은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를 잊게 하는 새로운 억압으로 몰아가는 듯 싶다. 그런 차원에서 현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라고 여기는 것도 (부분적이긴 하지만) 분명 진실일 것이다.
그동안 읽어왔던 많은 책들이 한결 같이 개인의 목표로 제시하는 ‘주체’라는 개념이 궁금해 찾게 된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와닿았다. 주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것의 역사를 깊이 아는 것이 반드시 선결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관련 주제로 오랜 기간 고민을 이어온 학자들의 연구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다.) 연이어 읽어온 책들을 통해 주체란 ‘이념을 가진 존재’라는 점은 명확해졌다. 소크라테스는 순수한 이성을 향한 자신의 이념으로 목숨을 던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알랭 바디우 또한 우리에게 부활이 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된 사도 바울을 통해, 그리고 이념을 잃어버린 것이 오늘날 젊은이들이 처한 근본적인 문제임을 이야기 한다. 조르조 아감벤 또한 임의적 특이성으로의 주체란 결국 자신의 이념, 즉 가능성에 충실한 개인만이 가능한 것임을 이야기하여 오직 이념만이 개인을 주체로 세울 수 있음을 역설했다. 이렇듯 개인을 새롭게 만드는 것은 오직 자신의 이념 때문임을 강조한 책들 덕분에 주체에 대해 보다 분명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이번 책이 가르쳐준 것은 주체 개념의 역사성이라는 측면이었다.
1. ‘자유’의 역사
인간에게 있어 자유란 무엇일까? 그것은 무언가에 구속되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결코 한 번에 형성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의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정반대, 그러니까 해야 할 일이 상당 부분 정해져 있는 삶이 자유롭다고 정의되던 시기가 있었다. 서구 철학의 주요 참조점인 그리스 시대가 바로 그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를 집에 비유하는데, 그때 그 집에 있는 자유로운 사람들은 별들을 상징하게 된다. 사람들에게는 우연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잘 허용되지 않고, 그들의 모든 행동, 적어도 그 대부분은 규제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행동에 통일성이 드물고 우연에 내맡겨질 때가 대부분인’ ‘노예들과 짐승들은’ 우주의 열등한 부분을 상징한다.(《형이상학》, 71,1075 a 19-22)요약하면 “용어의 근대적 의미에서 자유로운 이는 따라서 노예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반면 그리스인은 자신의 행위가 상당 부분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자유롭고, 그로 인해 그 자유는 완성된다.”[1]
pp. 12 – 13
요약하자면 ‘전통에 따르는 삶이 곧 자유로운 삶’이라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개념의 정의는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고 여겨왔지만 완전히 반대로 이해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기에 상당히 놀라웠다. 더군다나 그 개념이 다른 것도 아닌 자유라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사회의 복잡성을 생각해보면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날은 어느 때보다 빠른 기술의 발전과 새로움의 창조가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으로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렇게 ‘타율로 정의된 자유’는 언제까지 지속되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계몽주의 시기 (17세기 ~ 18세기[2])까지라고 한다. 심지어 자유의 정의를 기준으로 이 때까지를 ‘고대’라고 이름짓는다. 불과 300년 전까지를 말이다.
이처럼 외부의 객관적 틀로 정의된 자유가 비로소 근대의 주관적 자유 (자율)로 새로워진 것은 그 이후부터 1950년까지의 일이었다. 이때서야 인류의 자유는 비로소 오직 자신이 자신의 행동과 표현의 주인이 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인정받게 된다. 다만 이것이 하나의 윤리학적 과도기에 그치는 것은, 여전히 종교의 ‘절대적 의무’ 개념이 유지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의무를 위해 개인의 욕망은 희생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자유는 개인에게 온전히 도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현대의 자유는 어떨까? 저자가 후기 도덕적 시기라고 일컫는 오늘날은 의무의 자리에 행복이 자리잡고, 희생보다는 책임감에 호소하며, 쾌락은 자신의 이익의 관점에 의해 용인되는 바야흐로 의무없는 권리의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 책은 1995년에 쓰여졌다.)
2. 근대 ‘개인’의 탄생
주체성 연구에 있어 가장 권위있는 학자 중 한 명인 하이데거에 따르면, 근대의 주체성은 네 단계를 거쳐 펼쳐지게 된다. 데카르트 (1596 ~ 1650) 를 통해 자연은 인간의 도구로써 그 지위가 격하 된다. 자연이 보이지 않는 힘들에 의해 점령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의지에 의해 완전히 지배 가능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계몽주의 (1600 ~ 1700) 시기에는 이러한 데카르트적 이성과 단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여전히 과학은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도구로써 인간의 행복을 위해 작동했다.
주체성의 결정적인 전환은 칸트 (1724 ~ 1804) 를 통해 완결된다. 이 때가 ‘자율성’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하는 시기로, 자신이 복종하게 될 법을 정하는 자유로서의 자기 자신 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시기[3]가 펼쳐지게 된다. 이후 니체 (1844 ~ 1900) 의 ‘권력 의지’는 칸트의 ‘도덕 의지’라는 개인의 의지 자체를 그저 급진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했다. 저자는 하이데거의 분석에 라이프니츠 (1646 ~ 1716) 를 추가하여 근대 주체 개념의 형성 과정을 설명한다. 그가 데카르트와 칸트 사이에서 ‘독립성으로 요약되는 개인주의 사상’을 확립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714년 발표한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에서 실재라는 것은 개별화된 ‘단자들’로 구성되어 있어 독립적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각각의 단자들은 신적 질서를 통해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의사소통하지 않아도 서로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렇게 이전까지 보편적 질서에 종속되어 있던 개인은 처음으로 독립할 수 있는, 아니 보편성과 양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3. 근대 개인에 대한 오해
3.1. 하이데거
하이데거주의자들과 신토크빌주의자들은 서로를 비판하지만, 저자가 봤을 때 둘은 모두 근대의 주체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하이데거의 경우, 근대의 개인성을 자기 권리 강화에만 전념하는 ‘이기주의’로 바라보고, 기술 중심주의로 흘러가던 미국과 소련이 결국 이러한 주체의 두 가지 형상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즉, 데카르트부터 니체까지의 여정을 세상을 향한 주체의 지배가 강화된 것으로만 이해한 것이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인식은 주체와 개인, 휴머니즘과 개인주의를 혼동하는 것 (전체주의와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여기는 정치적 재앙) 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위협에 대해 근대의 주체성으로 비판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3.2. 하버마스
같은 차원에서 하버마스는 하이데거의 왜곡된 관점을 계승, 발전시킨 학자였다. 하버마스는 신구조주의 (니체-하이데거의 전통과 프랑스 사조들 (바타유, 푸코, 데리다, 들뢰즈, 리오타르))의 기원을 검토하기 위해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에 따르면 18세기 이전까지의 주체성은 자기 성찰에서 출발해 의식, 자유를 위해 객체인 세계와 대립하지만, 주체의 완성을 위해 타자성을 이해하고 변형하여 이를 수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세기 전부터 시작된 근대성의 공격으로 인해 주체성에 대한 철학적 사조는 (개인주의라는) 유아론적 분위기로 흐르게 된다. 특히 최초로 계몽주의 시대를 재검토한 칸트 이후 이러한 고찰은 급물살을 타게 되는데, 헤겔은 좀더 포괄적인 이성을 통해 근대적 이성이 초래한 주체와 객체의 분열을 초월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이를 이어받아 사회적 실천을 통해 구체화된 이성이 현실과 화해할 수 있으리라고 봤다. 이후 하버마스의 시선은 니체에 머무른다. 그가 근대적 주체, 즉 주체와 이질적인 것을 ‘이성’에 포함시킨 기존의 시도들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롭게 등장한 자아와 자아 내 타자 사이의 분열을 극복하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근대의 절대적인 주체’가 계속해서 억제하려 했던 이타성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4] 그러나 이러한 시각 (주체성에 내재된 객체성을 통합하기 위한 모든 시도를 차단한채 데카르트에서 니체로 건너 뛰는) 또한 주체에 대한 사유가 오직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통해서만 나타난 것으로 여기는 것이었다. 이는 하이데거와 마찬가지로 근대 주체성의 역사를 동질화하는 경멸에 불과한 것이다.
3.3. 신토크빌주의
개인의 탄생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시각과는 반대로 1980년대 프랑스의 신토크빌주의자들은 개인의 해방에 초점을 두고 자신들의 주장을 전개해나갔다. 자기 자신 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복종하지 않는다고 하는 칸트의 개인주의적 도덕 관념을 근거 삼아 ‘규제 없는 자유’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 역시 하이데거주의자들처럼 자율성이라는 주체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규범에 대한 복종과 개인의 자유를 양립시킨 근대 자율성의 이상을 독립성의 요구로만 한정시켜 급진화시킨 것이다. 이 같은 이해는 모든 것을 민주적이라고 가정된 개인주의의 진보로 설명하려고 하기에 실천에 대한 다양한 설명이 난립하게 만든다. 상대주의의 맹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이러한 논리는 따라서 검증도 반증도 불가능하며, 우열을 가릴 수도 없는 허무주의로 끝맺을 수 밖에 없다. 해방은 자립의 필수 조건이긴 하지만 결코 충분 조건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사회를 조직하는 범주로서의 개인의 강림’ (로장발롱)을 근대성의 유일한 쟁점으로 여길 정도로 독립성의 가치와 자율성의 가치, 개인의 원리와 주체의 원리를 구분도 미묘한 차이도 없이 포개 놓음으로써, 우리는 자율성이라는 어휘를 통해 자유 개념을 주제화했던 근대 철학의 엄격한 방법과는 너무 동떨어진 어떤 불명확한 개념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건 아닐까?
pp. 19 – 20
4. 진정한 주체성을 향하여
4.1. 라이프니츠 <단자론>의 의의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은 개인주의의 중심 사상인 독립성을 놀랍도록 향상시켰다. 서로 소통하지 않아도 자족할 수 있는 독립적인 개체들이 신적 질서 하에서 완벽한 조화 (예정조화) 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미리 설정된 합리적 본성을 자동으로 실현하는 ‘개체’는 합리적 이성에 대한 근대적 가치를 전복시키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배려하는 가운데 우주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개인주의의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러한 라이프니츠의 이론은 데카르트가 설립한 주체의 형태 (자동 설립, 자동 결정) 를 와해시킨 것이었으나, 자동 생산과 자율성을 동일시한 하이데거의 오독을 통해 그 한계를 설명하도록 이끌어 낸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라이프니츠의 개체는 이들의 관계를 지배하는 것이 오직 ‘신’ 뿐임 (유일한 인과성) 을 알 수 있다. 즉, 실재의 질서를 주체들이 함께 설정하는 ‘자동 설립’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은 이들이 서로 ‘소통’하지 않기 때문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결정성을 자동으로 전개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칸트가 “태엽이 감기면 스스로 움직이는 꼬치 회전기의 자유와 동일”하다고 [6] 한 것은 그 때문이다. 분명 독립성의 가치를 놀랍도록 향상시켰지만 자율성의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 그의 이론은 ‘예정조화(창조자의 수직적 결정)’로 인해 다시금 개인의 독립성을 제한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이론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 질서에 종속된 인간 (종속성의 원리) 이라는 근대적 이성의 요구에 통합됨으로써 그 요구를 위태롭게 하고, 심지어 구속인 것으로 여기게 해 비로소 현대적 개인이 탄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에서 헤겔까지,단자론은 말하자면 특수한 것과 보편적인 것 사이의 충돌을 마무리지으면서 금욕적 합리주의의 종말을 표명했다. 개인성은 합리성의 제단에 희생할 것을 강요받지 않게 되었고,그렇게 최초의 근대성은 막을 내렸던 것이다. 개인성의 확립이 이성에 대한 근대적 가치 부여와 본질적으로 모순되지 않았음을 보여 줌으로써 단자론의 시대는 개인주의의 가치들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증진시켰고,그것이 모든 가치를 총체적으로 전복시키지 않고 실현되었던 만큼 더더욱 강력했다…. 개인성의 원리가 주체성의 원리보다 우위에 있고, 독립성이라는 ‘개인주의의’ 가치가 자율성이라는 ‘휴머니즘의’ 가치보다 우세한 제2의 근대성의 탄생을 표명한 라이프니츠와 헤겔을 지나면서 개별화 과정은 급진전을 이루었다.
p. 67
4.2. 토크빌의 신중한 주체 이해
근대 개인주의를 명명한 선구자 중 한 사람인 프랑스 철학자 토크빌은 프랑스 혁명(1789년)을 통해 탄생한 근대 개인주의의 특성을 (우리가 익히 들어온) 자유와 평등으로 요약해낸다. 이 두 개념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여기는 가치 (계급에 맞선 평등) 와, 자기 자신만이 규칙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원리 (전통에 맞선 자유)로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 역할을 하게 된다. 개인주의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이지만, 한편으로 그의 후계자들이 놓치고 있었던 위험성 또한 분명히 경고한다. 평등의 가치로 인해 확장되는 자족적 개인은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고, 홀로 자신을 바라보는데 익숙하고, 자기의 운명이 자기 손 안에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때문에 그들은 조상도, 후손도, 동시대인들과도 분리되어 완전한 고독 속에 갇혀 버릴 위험을 안게 되는 것이다. [5] 귀족 출신이었던 그는 이러한 이유로 과거의 귀족 제도를 찬양하는데, 일부 독자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앙시앵 레짐 (혁명 이전의 왕정 체제) 의 향수에 젖어 개인주의를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개인주의가 안고 있는 위험성을 보완해 이를 강화시키는 쪽에 가까웠다. 토크빌이 보기에 귀족 제도는 ‘사회적 구속’의 원리로써 개인과 국가를 중재하기 위한 반-세력 공동체, 즉 ‘결사의 체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독립적 자유만을 주장하는 신토크빌주의자들은 토크빌의 본래 주장을 곡해한 셈이 된다. (아마 이것이 저자가 그의 후계자들을 토크빌주의자가 아닌 ‘신’토크빌주의자라고 이름지은 이유일 것이다.)
4.3. 진정한 주체성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저자가 중점을 두는 것은 ‘근대 주체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그에 따르면 근대의 주체는 분명 자율성과 독립성에 이중의 가치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전의 해석들은 이를 제대로 구분짓지 못해 근대의 가치를 훼손시켰다. 하이데거주의와 신토크빌주의 모두 주체와 개인, 휴머니즘과 개인주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동일시 해 근대의 주체를 비판(하이데거주의)하거나 독립만을 옹호(신토크빌주의)하는 누를 범한다. 휴머니즘에서의 인간은 사물의 본성과 신으로부터 생긴 규범과 규칙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자신의 이성과 의지에서 출발해 스스로 규범과 규칙을 확립하려고 하는 존재이다.[7] 즉, 자동 설립된 규칙에 대한 종속성인 자율성[8] 만이 인간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율성으로서의 자유 (본질적으로 근대적인) 개념은 어떤 의미에서는 규제들에 대한 종속성,그러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종속성,좀더 자세히 말해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규제 없는 (타고난) 자유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를 자신의 규범과 규칙의 토대 혹은 근원으로 만드는 데 있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자유의 토대가 되는 종속성을 가리킨다.
p. 50
따라서 근대 차원 전체에 있어 (루소, 칸트, 피히테) 최고의 가치는 다름아닌 ‘시민의 자유’이다. 자유롭게 받아들인 규제들에 종속되고 복종하는 것, 칸트가 ‘의지의 자율성’이라고 하는 조건을 통해 근대 민주주의 개념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에게 부여한 법에 복종한다는 것의 의미는, 법을 부여한 ‘나’가 그 법에 복종하는 ‘나’로 돌아갈 수 없음 (주체가 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음) 을 의미[9]한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체란 인류와의 관계를 고려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임을, 다시 말해 주체 개념은 결코 개인으로 축소되지 않고 개인성의 초월을 내포한다는 점 (상호 주체성)[10]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칸트 작품에서 자율성의 원리라는 이름으로 적절하게 추진된, 행복의 도덕에 대한 비판이 증명하듯이) 주체의 자율성은 개인의 독립성이 아니므로 다음을 전제로 한다. 즉 나는 무한한 과정을 거쳐 특권과도 같은 이기적 성향 (개인성) 에서 나 스스로 빠져 나와 인류의 이타성에 나를 열면서, 나 자신이 ‘나 자신의 근원’ 이 되도록 애쓸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재성 속의 초월성인 자율성의 이상을 ‘완전한 울타리’ 라는 용어로 표현할 수는 없다. 자율성을 목표로 하는 (주체로 새로워질 것을 목표로 하는) 개인은, 그 목표 자체로 인해 주체성의 구조를 지닌 모든 개인 존재들이 함께 하는 세계의 일원으로 스스로를 생각함으로써 자신의 단독성을 초월하는 것이다. 자율성이라는 목표는 완전무결한 주체라는 환상을 나타내기는커녕 다른 사람에게 접근하는 방법, 즉 의사 소통을 전제로 한다.
pp. 70 – 71
자율적으로 수용한 법을 통해 개인성을 초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주체, 이에 따라 주체성은 곧 자율성으로 요약된다. 근대 휴머니즘과 함께 나타난 주체성의 두 가지 특성인 자기 성찰 (자기 자신에 대한 투명성)과 자동 설립 (자기 행동에 대한 법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자율성)[11]으로 개인주의의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저자가 경계를 내려놓지 않는 부분은 이러한 개념만으로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책을 통해 밝히고자 했던 것처럼, 우리가 갈등 중인 것의 고유한 가치를 정확히 이해하고 개념화하려는 노력이 다만 어려움의 일부를 밝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12]이라고 담담히 덧붙이면서 자신의 연구를 마무리 짓는다.
5. 개인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
이 책은 주체 탐구에 있어 한동안 결정적인 책으로 남게 될 듯 싶다. 막연한 상태였던 주체의 형성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 나와있지 않은 주요 사건들을 포함해 시간순으로 나열해 보면 르네상스 시기 (14세기 ~ 16세기) 와 그 사이의 종교개혁 (1517), 계몽주의 (17세기 ~ 18세기) 와 함께한 데카르트 (1596 ~ 1650), 라이프니츠 (1646 ~ 1716), 그리고 산업 혁명 (1760) 과 프랑스 혁명 (1789) 이 연달아 발생하며, 같은 시기 칸트 (1724 ~ 1804) 가 근대의 주체성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토크빌 (1805 ~ 1859) 과 니체 (1844 ~ 1900) 가 선배들의 사유를 이어받아 자신만의 이론을 세우게 된다. 그렇게 현대적 개인이 탄생하기까지 무려 170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이를 완성하기까지 평생을 연구에 바친 인류의 선조들을 바라보며 어떤 다짐을 할 수 있을까? 흔히 서구가 개인주의적이고 동양이 집단주의적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지식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한 것이 그 배경으로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철학은 언제나 진리의 출현 이후에 도래한다고 바디우가 이야기했지만, 이러한 철학적 사유 운동 없이도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와 평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을까? 서구 사상의 중심축인 기독교가 동양에서 비롯되었다면 세계 역사는 어떻게 달라지게 됐을까?
…
뭐랄까, 그동안은 크게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제대로 충격을 받은 느낌이었다. 서구 철학을 ‘주체성의 형이상학’으로 정의하는 저자처럼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결코 내려놓지 않았던 그들의 집요함이 전혀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겠지만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중세시대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던 기독교의 신적 (궁극적) 억압이 르네상스 운동을 통해 일부 해방된 것이 개인의 자유를 향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해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빌어 무려 1700년대까지를 신적 질서에 종속된 ‘고대’ 개인으로 주체가 해석되었던 것을 보면, 이들 사유의 핵심에는 개인이 탄생하는 와중에도 분명 신을 향한 숭고한 정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상당수의 철학자, 과학자들이 기독교도들이었음을 들었던 적은 있었지만 그것이 어떻게 이런 사유들을 촉발시켰는지는 한 번쯤 탐구해볼만한 일일 듯 싶다. 어쨌거나 학문적 집요함에 대한 감탄은 잠시 뒤로하고, 결코 그냥 탄생한 게 아니었던 ‘자율적 개인의 역사’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토크빌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개인주의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여기는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이렇게 탄생한 개인주의가 하이데거주의자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유아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으로 나아가도록 부추기기도 하지만, 오직 개인주의를 통해 이타성을 자율적으로 수용한 주체만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반-세력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의 연대를 추구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이들을 지지함으로 보다 성숙한 세계로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1] 본문 내 재인용, Aubenque, P.,《아리스토텔레스의 신중함 La Prudence chez Aristote》, PUF, 1963, p.91.
[2] 위키피디아, 계몽주의
[3] p. 15
[4] p. 76
[5] p. 25
[6] p. 65
[7] p. 10
[8] p. 51
[9] p. 82
[10] p. 71
[11] pp. 80 – 81
[12] pp. 88 –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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