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기록법, 『거인의 노트』, 김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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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접하는 의미 있는 지식들을 어떻게 기록해야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오랜 기간 성장을 갈망하며 늘 품어 왔던 질문이었다. 어떤 내용이 아무리 인상 깊게 다가왔어도 좀처럼 기억에 남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독서노트를 쓰고, 글로도 풀어보고, 노트 앱도 바꿔가며 활용해 봤지만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되진 못했다. 이 책은 필자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꼬집어 준 책이다.

저자의 핵심 주장은 (모든 글이 그렇듯) 단순하다. 바로 자기화, 요약, 반복을 지속하라는 것이다.
의미 있는 내용을 접했다면,
① 자기에게 와 닿는 내용으로 (자기화)
② 핵심만 추려 기록한 다음 (요약)
③ 매일, 매주, 매달 복기하며 앞의 단계를 반복해 언제든 꺼낼 수 있도록 한다. (반복)

예를 들어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나뭇잎이 말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면 (감각), 앞서 적은 내용을 모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나뭇잎의 말’이라고 핵심 키워드 위주로 기록하는 식이다. 이 한 마디에서 나뭇잎을 본 순간의 느낌, 감정 등의 공감각적 이미지를 모두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1호 기록학자인 저자의 방식이었다. 이 분의 기준에 따르면 필자는 사실상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1. 열심히 기록해도 성과가 없었던 이유

필자의 경우 글을 쓰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린다. 책의 내용을 최대한 잘 압축해, 핵심 내용을 ‘놓치지 않고’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에 잘 남는 방식으로 정리하지 않았다면, 이런 강박적이기만 한 태도는 지식을 장기적으로 활용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기록을 활용하지 못하는 다음과 같은 이유처럼 말이다.

① 꼼꼼히 기록하고자 함 : 기록하다 포기하게 되는 주 원인. 소화 용량 초과로 기억에 남지 않음.
② 메모만 함 : 메모는 정리되지 않은 기록 / 기록은 요약을 반복하는 것 (작성한 메모를 생각, 요약, 선별).
③ 잊기 위해 메모함 : 자기화 한 내용을 되뇌고 표현 (말, 글, 그림, 음악 등 어떤 방식으로든) 해야 함.

저자가 깨달은 기록학의 핵심은 핵심 외에는 모두 버리는 데 있다. 핵심만 추리고 버리기 위해서는 생각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데, 대부분의 경우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메모량에 압도되어 중간에 포기하거나 활용에 실패하게 된다. 100개를 메모했다면 반복적으로 복기하면서 중요한 10개만 선별해 내는 것. 그가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기억하기 위해’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였다.

2. 기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하지만 방법을 알아도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면 습관화하기 어렵다. 필자의 경우도 글로 써야 할 이유는 명확하지만 (의미 있는 지식을 나누고 싶어서), 기록을 다시 정리하는데 시간을 빼는 것은 부담스러워 미루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록 전도자인 저자는 기록 습관화에 성공하면 인생이 바뀔 것이라고 단언한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욕망) 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한 가지만 깨달아도 다른 효과들 (성장, 자유) 은 부수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성찰 과정을 통해 욕망을 알게 되면, 삶을 우선순위에 따라 구성할 수 있고, 끈기와 성장, 주체적 자유까지 연달아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기록해야 나의 욕망을 알 수 있고, 정보를 지식 또는 지혜로 활용할 수 있을까? 다음 장에서 저자의 노하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3. 기록 장인의 기록법

기록 전문가 답게 저자는 자신만의 다양한 기록법을 설명한다. 핵심을 추려 반복적으로 상기하는 것을 응용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중요하게 활용할 만한 내용만 정리해 보았다.

1) 일상을 기록하는 법

저자는 노트를 두 종류로 나누어 기록한다.
① 일상 속 경험을 자유롭게 적는 만능 노트와
② 그 중 중요한 내용을 지식, 대화, 일로 분류한 기록 노트에 따로 옮겨 적는 식이다.

정리 작업은 수시로 이루어지는데, 식사 전마다 메모를 복기하고 기록 노트에 옮겨 적으면 적어도 하루 두세 개 가량 정말 도움 되는 기록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요약은 주 단위로도 이루어진다. 저자는 매주 토요일 5시에 지난 일주일 간의 메모를 편안히 살펴 본 다음, 부족한 부분을 기록 노트에 추가로 요약,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하루 2개 씩만 기록해도 한 달이면 60개의 의미 있는 기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2) 욕망을 아는 방법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욕망은 기록의 이유이자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우리 마음임에도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는 매우 어렵다. 이에 대해 저자는 기록을 통해 우리 욕망을 둘러싼 껍질을 벗겨내는 법을 알려준다.

① 바라는 것 반복해서 적기
내가 바라는 것을 마음 놓고 글로 쏟아낸다. 이 때 중요한 것도 반복이다. 첫 메모는 내가 바라는 게 아닐 가능성이 큰데, 며칠만 반복해도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크게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② 가면 판단하기
기록한 욕망이 진짜로 내 것인지 분별한다.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는 부모, 배우자, 자녀, 직장, 사회 등 다양한 페르소나로 각각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③ 핵심만 추려 목표 지속 추구
누적된 기록을 통해 내가 진짜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이루기 위한 작은 목표들을 일상 속에 심어 성취감을 경험할 차례다.

3) 욕망을 목표로 활용하기

보다시피 저자의 모든 관심은 ‘핵심 (요약)’을 향해 있다.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① 이루고자 하는 핵심 목표를 정한 뒤,
② 구체적인 하위 목표를 나열하고,
③ 할 일의 목록을 기록한 다음,
④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 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핵심 목표를 일상 속에 새겨 이를 이루기 위한 작은 방법을 매일 같이 실천해 보는 것이다. 삶의 핵심 (꿈) 을 일상에 대입해 성취감을 경험하는 것이다. 저자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여행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어서, 여행 장소를 검색하는 일을 일과에 꼭 넣는다고 한다. 이 작은 행위가 그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고 하며, 이처럼 꿈과 관련된 행동을 3년간 매일 하나씩 하면 분명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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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꿈을 중심에 두고 기록을 이어가는 저자 (* 출처 : 밀리의 서재)

4) 지식을 기록하는 방법

내부의 지식을 활용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외부의 지식을 내면화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기록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지 말라고 당부하는데, 책을 예로 들면 이런 식이다. 1시간에 1챕터를 읽었다면, 10분만 메모하는데 사용하라는 것이다.

① 요약 분량 한정하기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메모의 분량을 설정하는 일이다. 저자의 경우 한 챕터 당 A4 반쪽을 넘지 않게, 한 권 당 3장을 넘지 않는 수준으로 정리한다고 한다. 기억하고 다시 간단히 살펴볼 수 있는 만큼의 분량을 정한 것이다.

② 키워드 위주로 표시하며 읽기
가장 빨리 읽고 잘 기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책에 직접 표시하며 읽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키워드에 표시하거나 떠오르는 생각을 즉시 기록하면서 메모를 위한 단서를 남겨 놓는다.

③ 기억 메모로 요약하기
그 후 요약하는 방법이 독특한데, 그는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기억에 의존해서 기록한다고 한다. 한 챕터는 대체로 30~50 페이지 정도 되는데, 생각나는 키워드 중심으로 메모하면서, 인상적인 내용 중 일부는 다시 확인하며 메모한다. 책을 읽은 즉시 흐름을 정리하기 좋은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6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면, 메모는 1시간 만에 마칠 수 있다. 읽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정리하고 있는 필자가 반드시 체득해야 할 방식이라 할 수 있다.

④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요약
교수이자 유튜버로 활동 중인 저자는 강의, 논문 용도로도 기록을 활용해야 되는데, 활용할 내용을 키워드 위주로 다시 남겨 둔다고 한다. 키워드에 설명을 추가하거나, 그래프, 그림 등 참고가 될만한 자료도 함께 기록해 즉시 꺼내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정리와 기록에 들이는 시간은 극적으로 줄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요즘, 이 책은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버리는 것 없이 요약하려고 하는 욕심을 조금 더 내려놓고 꼭 필요한 내용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길 수 있도록 나만의 정리 루틴을 (미루지 않고) 세워갈 것을 다짐해 본다.


* 표지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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