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적 분열의 의미와 공포증 사례 분석, 『라깡 세미나 · 에크리 독해 1』, 조엘 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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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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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 (거울단계-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요약)에서는 아이가 어머니의 욕망의 대상 (팔루스) 이 자신이 아닌 아버지를 향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만 (거세), 자신의 결여를 채우기 위한 욕망의 여정을 출발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이처럼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건강하게 극복했을 때 아이는 자신의 생물학적 성의 의미를 받아들여 남자아이는 아버지에게 동일화하고, 여자아이는 어머니에게 동일화 한 삶을 살아 나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설명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오늘날의 라캉의 입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의 원인 분석에 탁월하다고 여겨지는 그의 정신내적 ‘구조’의 이해가 반드시 병행됐을 때만 그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상 우겨넣기 식으로 정리했던 아래 표의 3번째 계기의 내용들을 저자의 설명을 빌어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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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직접 작성)

1. 분열의 의미

오늘날 ‘분열’이라고 하면 흔히 ‘정신분열증’을 떠올리게 된다. 해리(dissociation)라고 등록된 현대 정신의학적 징후를 말하는 것인데, 정신분석에서는 이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프로이트의 경우 ① 심리 체계 사이에서의 분열 (자아와 이드 사이의 분열)과 ② 심리 내부에서의 분열 (자아 내부의 분열), ③ 더 일반적으로 주체의 심리적인 내용의 일부가 억압으로 인해 주체를 빠져나간다는 의미 등 다의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라깡은 이러한 분열을 징후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혀 새로운 가치를 부과한다. 바로 이러한 분열이 주체를 창시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정의한 것이다.

분열이란 상징적 질서, 더 정확히 말하면 상상계와 실재를 결합시킴으로써 실재에 대한 주체의 관계를 중재하는 질서인 제3자의 질서에 주체가 종속됨으로써 생기는 주체의 최초의 분열(division inaugurale du sujet)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작용은 아버지 은유의 과정 속에서 실현되는데, 이 아버지 은유의 과정이 끝났을 때 언어의 상징(아버지 은유 S2)은 무의식적이 된 욕망의 원초적 대상(어머니의 욕망의 기표, 팔루스 기표 S1)을 지칭한다.
pp. 166 – 167

2. 아버지 은유 작용과 주체의 탄생

주체를 분열시키는 것은 아버지 이름의 은유를 통해서이다. 즉,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머니로 인해 ‘내가 정말 팔루스가 맞나?’라는 의구심을 품게되는 것 (존재의 변증법) 이 바로 분열의 출발점인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언어학적 도식으로 풀어낸 것이 라캉의 결정적인 공헌이었다. 아래 도식을 보면 하나의 단어는 청각 이미지(기표)와 그 뜻(기의)로 이루어져 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관련된 첫 번째 글인 무의식을 구조화한 라깡 이론의 형성 배경을 참고하시면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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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스캔 : p. 48)

따라서 어머니(S1/s1)와 아버지(S2/s2)라는 단어도 같은 구조로 아래와 같이 구성해볼 수 있다.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가 아버지를 바라본다는 것에서 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머니의 욕망을 소유하고 있는 대상으로 가정된다. (철저히 아이의 관점에 따른 구조화이다.) 즉 아버지라는 순수한 의미의 자리에 어머니라는 존재가 포함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은유인 것은 어머니라는 기표가 아버지라는 기표로 사실상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은유는 기표의 대체이다.) 우리는 이를 어머니의 욕망이 아버지에게 종속되었음을 받아들여, 어머니의 팔루스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원초적으로 억압되어 무의식이 도래했다고 할 수 있다. 즉, 기표적 질서로 인한 분열의 결과, 무의식이 탄생하게 되고 비로소 욕망의 주체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라캉이 ‘무의식의 주체’, ‘욕망의 주체’, ‘언표 행위의 주체’를 비슷한 것으로 간주[1]한다는 조엘 도르의 말은 바로 이런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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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스캔, pp. 149 – 150)

3.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이유

여기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위 과정을 통해 아이는 (자신의 결여로 인해) 언어로 자신의 욕망을 표현(요구)하게 되지만, 자신이 말하는 것(아버지)과 그 의미(어머니의 욕망)가 일치될 수 없기에 – 주체의 욕망(어머니)은 대체 기표(아버지)의 형태로만 자신을 이해시킬 수 있기 때문에[2] – 결국 자신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문제를 안게 되는 것이다. 정신분석 상담의 과정은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어려움을 토대로 진행되는 기나긴 여정이다. 분명 내담자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 가 요구하는 것 (기표) 안에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 (무의식으로써의 기의) 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자체로 분열(기표/기의)된 기호의 특성 상 어떤 과정을 통해 그 의미가 자리잡게 되었는지는 철저히 주체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므로 이를 사후적으로 깨달아 아는 경험이 지속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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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스캔, p. 186)

위의 도식이 이러한 주체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기표의 질서로 분열된 주체 ($) 의 욕망은 지속적인 언어 행위를 통해 자신의 진리에 접근하려고 시도하지만 끝없이 그 주변을 맴돌기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주체는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끊임없이 (기표적으로) ‘대리’되고 있을 뿐이므로 진리를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그의 대리된 요구 뿐이다. 이제 이런 점을 기막히게 설명하는 예시를 소개하고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4. 기표의 효과 (공포증의 사례)

아래 그림은 젊은 여자의 가죽 공포증에 대한 임상 사례를 구조화 한 것이다. 먼저 모로코 가죽 제품에 고착된 이 공포증은 가죽 옷, 그 밖의 모든 가죽 제품들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직접적인 이유 없이 어느날 갑자기 발생한 이러한 공포증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분석이 진행되었고, 공포증 대상 형성에 영향을 미친 기표적 요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상담을 통해 상기된 일련의 사건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3]
① 공포증 발생시킨 최근 사건, 14살 생일, 가죽 핸드백 선물받았던 일 상기시킴
② 6살 동물원 방문 시 악어가 건조한 소리를 내며 입을 닫았을 때 엄청나게 놀랐던 일 기억해냄
③ 얼마 후 아이들과 놀다 자위행위 했을 때 어머니 위협 “그렇게 못된 짓 하면 악어 입으로 손 잘라버리게 할거야.”
④ 몇 년 뒤 학교에서 모로코 가죽 제품 만들기 위해 악어 가죽 사용한다는 것 알게 됨
⑤ 어머니가 가죽 가방을 선물했을 때 공포증이 발생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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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스캔, pp. 181 – 182)

부모나 어른들이 아이들의 행동을 고치기 위해 극적으로 위협하는 태도가 어떤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적인 욕망에 대한 어머니의 위협은 악어에 대한 무서움과 결합되어 성적인 억압 (거세) 을 위한 기표가 되었다. (악어라는 기표 아래로 욕망이 은유적으로 억압 – 성적인 억압이 악어라는 기표로 대체 – 되었다. 성적인 억압은 무의식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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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스캔, p. 182)

이후 가죽 제품에 악어 가죽이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환유적 전치가 발생해 기표 S12(가죽)이 S6(악어)의 환유적 기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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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스캔, p. 183)

즉, 악어라는 이름에 억압되어 있던 성적인 욕망이 가죽으로 확장되어 공포증이라고 하는 증상으로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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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스캔, p, 183)

이처럼 연속적으로 진행된 기표의 대체 결과로 ‘가죽’이라는 기표는 사실상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여자는 ‘가죽’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자신이 두려움을 갖게 된 이유는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은유, 환유적 결합 알지 못함) 기의에 대한 기표의 우위란 바로 이런 것이라 할 수 있다. 분명 기의도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무의식의 관점에서는 오직 기표의 대체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4]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기의적 무의식과 함께 분열되어 욕망의 삶의 여정을 꾸려 나가게 된다. 앞선 사례에서처럼 특정 기표에 강하게 사로잡히는 계기로 인해 증상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설명될 수 있다면 (물론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증상은 나아질 수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어떤 증상을 특정 사건과만 결부시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위와 같이 다양한 자극들이 누적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형성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기표의 진정한 의미, 증상의 진정한 의미는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매번 정리를 하면서도 감탄하게 만드는 라캉의 이론과, 이를 너무도 상세하게 설명해준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게 된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특정 저자의 저서로 직접 뛰어들어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라캉의 경우에 있어서만큼은 이 책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애당초 이런 기본 지식(?)들을 미리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그저 암담할 뿐이기 때문이다. (『에크리』를 읽다 중도 하차한 것에는 다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다.) 라캉주의 학자들의 저서를 주로 출간하는 에크리 출판사가 문을 닫은 것은 너무나도 아쉽지만, 이런 보물을 남겨주어 기쁨을 나눌 수 있게 된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 책과 관련한 벌써 5번째 글이지만 아직 얼마나 더 많은 글들을 통해 소개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만큼 가능하다면 중요한 가닥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정리해두고 싶은 마음이다. 🙂


[1] p. 61
[2] p. 186
[3] pp. 180 – 181
[4] p. 184

『라깡 세미나·에크리 독해 I』 전체 글 목록
1. 무의식을 언어처럼 구조화 한 라깡 이론의 형성 배경
2. 거울단계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관통하는 팔루스
3. 라캉의 ‘아버지의 은유’와 가부장제의 의미
4. 라캉의 거울단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간단히 살펴보기

* 표지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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