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 ‘거울 단계’의 이론적 배경,『라캉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들』, 대니 노부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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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보고 웃는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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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책 『라캉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들』에서 대니 노부스의 「거울 속의 삶과 죽음 – 거울 단계 새로 보기」라는 논문에 대한 내용이다. 지금까지 세 편의 논문 (총 8편) 을 다뤘는데, 브루스 핑크의 「주인 기표와 네 담론」 외에는 라캉의 중요한 개념의 변천사를 중점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었다. 아마도 앞으로 접하게 될 라캉의 저술들에서 각 개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지에 대한 중요한 참고가 될 듯 싶은데, 거울단계를 다룬 이번 글 또한 배경, 역사, 의의라고 하는 동일한 틀에서 서술되어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먼저 그의 이론이 완성되는데 영향을 미친 이론들 (대타자들) 을 살펴보고자 한다.

『라캉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들』의 다른 글들
라캉의 ‘분석가의 욕망’이 완성되기까지
라캉 주이상스(향락) 개념의 변화 과정
주이상스와 증상과의 관계
히스테리 담론의 특별한 의미

거울단계는 어린 아이가 자신의 육체를 분리된 것이 아니라 통일된 것으로 인식하는 것, 즉 ‘나’라고 하는 최초의 정체성이 탄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관련해서 조엘 도르는 자신의 저서 『라깡 세미나 · 에크리 독해 1』 에서 아래와 같이 거울단계를 설명하고 있었다. (해당 글 : 라캉의 거울단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간단히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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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깡 세미나 · 에크리 독해 1』에 소개된 거울단계 요약표 (출처 : 직접 작성)

당시에는 다분히 상상계적인 거울 단계와 본격적인 주체의 도래를 알리는 (상징계적)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는 비교적 이해에 머물러도 충분한 듯 싶었다. (물론 거울 단계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는 서로 중첩된 과정이긴 하다.) 하지만 이번 글을 접하게 되면서 그 중요도에 비해 조엘 도르가 너무 가볍게 짚고 넘어간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니 노부스에 따르면 라캉이 1950년경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 (세미나를 처음 연 시점이 1953년이다) 하기 전까지 라캉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 것이 바로 이 거울단계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캉은 1936년 마리엔바트에서 개최된 제 14회 IPA 국제회의에 참석해 「거울단계 stade du miroir」 의 첫 번째 논문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13년 뒤인 1949년 16회 IPA 국제회의에서 두 번째 「거울단계 The Mirror-Stage」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두 기간의 공백 사이에는 자의식의 형성에 대한 그의 오랜 고민이 있었다.

1949년의 논문 내용으로 판단하건대, 거울 단계라는 주제는 그 13년 동안 계속 라캉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1936년과 1949년 사이에 라캉이 썼던 논문의 반 이상이 ‘자의식의 설정과 유지에 결정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실제로 이는 거울 단계라는 개념 전체를 떠받치는 것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p.142

결국 라캉이 해당 기간 동안 간절히 찾고자 했던 것은 인간 정신의 원인, 곧 자기 이론의 근본적인 토대였다. 1949년 이후 거울 단계를 ‘발생적 구조’, 또는 ‘패러다임’이라고 지칭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거울 단계가 인간의 자의식 뿐만 아니라 공격성, 경쟁심, 나르시시즘, 질투 등 다양한 정신적 어려움을 폭넓게 설명해 줄 수 있는 핵심 개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자연히 저자의 연구도 첫 번째 「거울 단계」 (1936) 가 아닌 두 번째 논문에 (1949) 초점을 맞추게 된다.

1. 이론적 배경

저자에 따르면 거울단계 이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이론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1920년 로데비크 / 루이스 볼크의 태아화 이론 (신경해부학), 1931년 앙리 왈롱의 자기인식 연구 (심리학), 그리고 1934년 ~ 7년까지 라캉이 참석했던 코제브의 헤겔 세미나 (철학) 가 그것이다.

1.1. 인간의 ‘조산성’ (신경해부학)

태아화 이론은 독일 동물학자인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이 1860년대에 주장한 발생반복 이론의 대안으로 등장한 이론이다. 진화론적 성격을 강조했던 이 이론은 인간이 성인의 모습이 되기까지 조상들의 진화 과정을 순서대로 모두 거치게 된다고 주장한다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되풀이 한다). 반면, 태아화 이론은 인간이 조상의 모든 성숙 단계를 반복하지 않으며, 오히려 조상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간직해 다른 포유류 대비 영원한 젊음을 유지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영장류는 포유류보다 발육이 지연되는데, 그 중에서도 인간은 매우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 조상들이 유년기 때 이뤘을 형질들을 성인 단계에 이르러서야 달성하는 특성을 지적한 것이다.

여기에서 라캉은 인간의 ‘때 이른 탄생’이라는 특성에 주목한다. 전적인 무능력과 의존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는 유아기 자체를 하나의 외상적 상황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곤궁은 아이가 거울 이미지에 매혹되도록 이끈다. 거울 이미지를 통해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이 실제 자신의 상태보다 더 성숙하다는 인상을 받아 이를 자기 이미지로 받아들이려 애쓰게 되기 (동일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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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왕이 될 상이야 (출처 : Pxhere)

다만 이러한 거울 이미지와의 만남이 성장으로의 추동에 필수적 (필요조건) 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나’라고 인지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인간 아이가 거울에 비친 모습이 ‘나’임을 결국 알아채는 반면, 동물들은 끝내 ‘라이벌’로만 여길 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의식 형성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하는 생물학적 문제는 라캉으로 하여금 새로운 조건을 가정하도록 이끌게 된다. 태아화로 인한 실재적 조건, 이미지와의 만남을 통한 상상적 조건, 대타자 담론을 통한 상징적 조건을 통해서 말이다.

1.2. 외부 세계와의 관계 (심리학)

프랑스 심리학자 앙리 왈롱Henri Wallon은 1931년 자기인식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한다. 그가 도전한 것은 아이가 자신의 신체를 의식하면서 자기인식이 생긴다는 생각이었다. 체감을 통해 의식이 생긴다는 이러한 주장은 복잡한 심리 현상을 신체적인 과정만으로 본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왈롱은 신체적 조절 능력을 획득하는 것 못지 않게 심리적으로 외부세계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정립해 가는 것을 중요하게 봤다. 자신과 타자간 차이를 인식하는 점진적이고 고된 과정을 통해서만 일관된 자기이미지를 확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거울 이미지가 등장한다. 다만 볼크의 경우처럼 동물과의 비교가 아닌 아이 자체의 심리적 반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왈롱의 관찰에 따르면 생후 3개월까지 자신의 거울 이미지에 무관심하던 아이는, 4개월 경부터 웃거나 집착하는 등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1년이 지나는 시점에는 그 이미지가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조금씩 알게 된다고 한다.

여기서 왈롱은 생후 6개월 경의 아이가 거울 이미지와 실제 사물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기 시작한다고는 했지만 그 이상의 의미부여를 하지는 않았다. 해당 시기를 인간 발달의 결정적 시기로 격상시킨 것은 바로 라캉이었다. 그와 관련된 글을 읽다보면 인간은 삶 자체가 외상 그 자체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되는데, 앞서 언급했던 조산의 문제와 더불어 이번에는 젖 떼기 문제가 등장한다. 이유 컴플렉스 (이유離乳 : 젖먹이에게 젖을 그만 먹게 함[1]) 라고 언급한 해당 시기의 문제는 아이가 여전히 전적인 의존 상태에 있다는 점 때문에 벌어진다. 아이는 새로운 식습관 형성을 위한 나의 발달 (이유의 수용) 과, 상실된 대상을 되찾으려는 선택 (이유의 거부) 사이에서 동요하게 된다. 이처럼 발달을 요구하는 자극은 거울 이미지를 통한 이상적 모습의 발견으로 이어지고, 머잖아 그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하 체험[2], 즉 깨달음의 기쁨을 경험하는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1.3. 자의식 출현의 조건 (헤겔 철학)

코제브의 헤겔 세미나 (1933 ~ 39) 에 참여한 라캉 (1934 ~ 37) 은, 그의 헤겔 『정신현상학』 독해를 통해 거울 이미지 인지에 사회적 맥락을 덧입히게 된다. 인간의 때 이른 탄생으로 인해 선택된 거울 단계라는 해법은 분명 아이에게 성취감이라고 하는 중요한 가능성을 선물하지만, ‘현실의 나 (의존적 무의 존재)’와 ‘거울 속의 나 (외견상 통합된 타자)’라고 하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은 우리를 끝 없는 갈등 상황으로 내몰게 된다. 앞서 자의식 뿐 아니라 공격성, 경쟁심, 나르시시즘, 질투 등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정서적 불균형에서 비롯된 감정적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라고 봤기 때문이다.

1.3.1. 합리성을 넘어선 자의식

코제브에게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절대지 (사고가 종국에는 존재와 일치를 이뤄 진리와 하나되는 정신적 능력)가 나타날 수 있는 조건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데카르트는 존재론적 사유의 차원에 머무르고 말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생각하는 존재로서 존재한다). 하지만 헤겔은 ‘생각한다’고 말하는 ‘나’ 안에 존재하는 주체가 무엇인지를 탐구하기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간다. 이를 통해 합리적 차원을 넘어서게 되는 헤겔의 분석은 라캉이 「거울 단계」 첫 단락에서 제시한 ‘합리성의 거부’ 차원과 일치한 입장을 보인다.

‘나’의 형성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경험이 “우리로 하여금 코기토에서 직접 유래한 철학이라면 그 무엇에건 반대하게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p. 152

1.3.2.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코제브에 따르면 절대지 출현의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자의식’이다. 외부 세계를 수동적으로 인식하는 ‘의식’과는 다르게 주위 환경과 적극적으로 관계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표출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욕망은 비물질 – 물질의 소유보다 행위의 인정을 통한 소유권 획득에 더 관심을 갖는다 – 로 향해있어 존재, 사물에만 한정돼 있는 동물의 욕망 (자기-감정) 과도 구분된다. 하지만 중재없는 욕망은 결국 상호간의 ‘죽음에 이르는 투쟁’을 향하게 마련이며, 그에 대한 타협점으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등장하게 된다. 생존을 위해 주인의 권력에 복종한 노예, 하지만 이를 무산시킴으로써 자유를 실현하려는 인류 역사의 진보 과정이 지속되는 것이다.

1.3.3. 발화로 인한 주체의 분열

이같은 『정신현상학』 해석에 코제브는 결정적인 요소를 덧붙인다. 바로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발화’가 그것이다. 그에 따르면 동물같이 ‘나는…’ 이라고 말할 수 없는 존재에게 자의식은 탄생하지 않는다.

“욕망은 항상 나의 욕망으로 드러나며, 욕망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나’라는 단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동물은 오직 자기-감정을 얻을 수 있을 뿐, 자의식은 획득할 수 없다. 동물은 그 자신에 대해 말할수가, “나는……’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pp. 153 – 154

하지만 이런 발화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분열이다. 다시 말해 ‘말하는 나(언표행위)’와 ‘말해진 나(언표)’ 사이의 분열이라고 할 수 있을 이중성은, 라캉이 코제브와 소쉬르를 혼합해 욕망을 담을 수 없는 언어의 한계 (주체의 분열 라고 본 것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참고글 : 말하기의 중요성, 그리고 분석가의 개입)

2. 욕망의 그래프에 대입해보기

이상이 라캉의 거울 단계를 이끈 핵심적인 이론들이다. 내용을 정리하고 욕망의 그래프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참고글 : 라캉이 완성한 ‘욕망의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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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그래프 2 (시니피앙은 기표를 의미한다, 출처 : YES24 블로그[3])

s(A) : 대타자의 기의 (주체의 요구에 대해 대타자가 받아들인 의미)
A : 대타자 (Autre)
m : 자아 (moi)
I(a) : 소타자 (타자 이미지)
I(A) : 자아 이상

브루스 핑크에 따르면 거울 단계는 하단 벡터 $ → I(a) → m → I(A) 를 의미하는데, 앞선 내용을 토대로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 특유의 조산성, 이어진 이유 컴플렉스는 아이로 하여금 선택의 기로 (갈등 상황) 에 놓이도록 만든다. (분열된 주체, $) 이는 이후 거울에 대한 관심 가운데서 미숙한 자신 m 보다 이상적 존재 I(a) 에 동일시 I(A) 하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 설명하지 않은 부분, 즉 자아 이상 I(A) 은 이미 대타자 A 의 지속적인 반영 s(A) 을 통해 타자의 욕망의 대상되기 I(A) 의 결과라는 점이다. 거울단계가 상상계에 속한 것이지만 그 이면에 이미 상징계적 질서가 숨겨져 있음을 의미하는 이러한 도식은 다음 글을 통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네이버 사전, 이유離乳

[2] 아하 체험

볼프강 쾰러Wolfgang Köhler는 인간과 동물이 문제를 어떻게 학습하고 해결하는지를 연구하면서 맡겨진 임무나 문제의 요소가 ‘종합되는’(쾰러의 용어로는 게슈탈트의 출현) 순간을 학습자가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순간 학습자의 이해력이나 문제 해결도가 의미심장하게 상승하는데, 이러한 직관의 순간이 곧 ‘아하-체험’이다. 시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기원전 287?〜212)가 욕조에서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순간 벌거벗은 채 거리로 달려 나가면서 ‘유레카’라고 외쳤던 일화는 아하-체험의 고전적 사례이다. 라캉에게 이러한 아하-체험은 거울 단계와 유사하다. 거울 단계는 주체의 정신적 조직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일으키는 갑작스러운 직관의 순간을 포함한다.
p. 147

[3] YES24 블로그, 프로이트와 라깡의 ‘충동(Trieb)’에 관한 18개의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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