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자아와 라캉의 주체,『라깡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들』, 파울 페르하에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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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있는 자아와 역동적인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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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볼 때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순간 낯설게 느껴지면서 어떻게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능한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 물리적으로는 각 기관들의 종합에 불과하지만, 단순히 두뇌의 신경 작용의 결과물이라고만 보기엔 부족하고 (왜 인간 종만이 차별화 된 정신성을 갖고 있는지), 심지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서로 다른, 이런 ‘세상 속 나’에 대한 일종의 경이로움이었다. 물론 그 가운데서도 관심이 집중됐던 것은 나를 비롯한 ‘인간 존재의 성장’, 즉 오늘 공유하고자 하는 ‘주체’였다.

이번 편은 『라캉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들』 중 주체를 다룬 연구인데, 많은 인문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라캉의 삶을 지배했던 핵심 개념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간접적인) 스승과 제자 사이이자 인간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유해 온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을 비교해 한층 명료하게 다가왔던 파울 페르하에허의 연구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1. 프로이트의 자아 발달

1.1. 충동의 배경

프로이트의 자아 개념은 라캉의 주체 이론에 중요한 토대로 작용했다. 프로이트에게 있어 자아는 아이의 최초 만족과 불가피한 상실에서 출발한다. 상실에 대한 첫번째 반응은 만족스러웠던 순간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환상(환각)’이다. 소원 성취의 방식으로 되풀이 되는 꿈 생활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이런 방식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이 때문에 아이는 잃어버린 만족을 되찾기 위해 쾌락 원칙의 방식 (편입과 배척, 한국식으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으로 외부 세계를 탐험하게 된다. 이런 시도를 자극하는 것은 최초의 만족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경향 (항상성) 인 충동으로, 익히 알려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는 주된 상실 – 근친상간적 욕망에 대한 거세 – 에서 비롯된 아동 발달의 은유라고 할 수 있다.

1.2. 거세 이론의 한계

하지만 생물학적인 상실만을 고려 – 페니스의 거세, 이성 아동의 성기 차이에 대한 인식을 통해 불안이 시작된다는 해석 – 해 지극히 단편적이었던 프로이트의 주장은 오랜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팔루스의 우위를 언급함으로써 상징적 의미에서의 힘의 소유를 암시했다고는 하나 이를 공식화 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출간한 논문 「끝이 있는 분석과 끝이 없는 분석」 (1937) 에서도 생물학상의 원리가 정신분석의 한계라는 비관적 결론을 내렸다고 하니, 그가 생물학적 상실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고 보는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듯 싶다. 알 수 없는 원인에 대한 단편적인 가설을 지나치게 신봉했던 것이다.

1.3. 충동의 이중성

한편 프로이트는 「쾌락 원칙을 넘어서」 (1920) 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충동이 있음도 발견하게 된다. 이전까지 쾌락 원칙을 통해 원래의 만족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생명 충동만 존재했다면, 전혀 다른 차원으로의 회복, 즉 스스로에게 위해를 가하는 등의 (죽음) 충동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으로 인해 불현듯 찾아오는 죽음을 향한 마음, 안타까운 일이지만 근래 우리나라에 상당히 만연해 있는 충동이라 할 수 있을 듯 싶다.

2. 라캉의 주체 개념

2.1. 프로이트 이론의 수용과 진보

라캉은 기본적으로 주체의 출발점이 최초 만족의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고, 이로 인해 (부분적인) 충동이 발생하며, 쾌락 원칙 (편입과 배척) 의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고 본 프로이트의 입장에 동의한다. 특히 주체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충동과 그 이중성 (생명 충동과 죽음 충동) 의 모호함은 실재와 관련한 그의 중요한 참조점이었다.

그러나 자아를 둘러싼 세계를 내부와 외부로 바라본 프로이트의 이체 심리학적 사고까지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초기에는 헤겔을 따라 변증법적 주체 (상호 주체성) 를 언급하긴 했지만, 60년대 초부터 그러한 표현을 더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의 내면 세계는 내부와 외부가 서로 뒤엉켜 있어 사실상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내부는 쾌감을 주는 외부를 받아들인 결과고, 외부는 불쾌감을 주는 내부를 배제한 결과다. 60년대 라캉이 뫼비우스의 띠, 클라인 씨의 병 등을 도입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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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학적 도형 (왼쪽부터 뫼비우스의 띠, 크로스 캡, 클라인 병)

2.2. 주체 개념의 변화

그의 주체 개념은 1964년 『세미나 11권: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을 기점으로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1960년대 초까지 (동일시를 통해 소외된) 상상적 자아와 상징적 주체를 대립시켜 바라봤던 것에서, 언어를 통한 ‘주체 자체의 분열’로 관심이 옮겨갔기 때문이다. 특히 해당 시기 이후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 실재 개념은 주체와 증상, 치료에 대한 그의 기존 관념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된다. (실재를 포괄한 주체관은 이후 70년대 보로메오 매듭을 통해 정식화 된다. (※ 참고글 : 라캉이 말하는 글쓰기의 가치, 보로메오 매듭)

2.3. 두 가지 결여

앞서 살펴본 것처럼 결여에서 비롯된 충동 (결여 주위를 맴도는 충동) 은 프로이트, 라캉 이론의 출발점이자 주체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상실된 만족을 회복하기 위한 여정은 언제나 실패로 돌아가면서 (잇따른 소외) 새로운 시도를 반복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여기서 새로운 결여의 등장은 이 논문의 핵심이자 라캉 이론의 중요한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다. 원인의 원인을 알 수 없음, 즉 실재적 결여를 통해 사실상 기존 이론들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기 때문이다.

2.3.1. 첫번째 결여 : 기표적 결여 (상징적 – 욕망 – 불가능성)

기표적 결여는 대다수의 이론들이 머물러 있는 과학적 수준의 결여라고 할 수 있다. 초기 라캉 뿐 아니라 프로이트, 철학적으로는 사르트르, 알튀세르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는 언어적 한계를 지닌 인간을 뜻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경우, 언어 습득 이전의 지각들이 언어로 대체되자마자 생물학을 떠나 인간의 영역에 진입했음을 이야기 하는데, 대표적인 효과는 이분법이다. 쾌/불쾌, 동일시/억압, 자아/비아, 의식/무의식 등 무한대의 스펙트럼을 포괄적인 개념으로 묶다보니 필연적으로 양극단으로 분리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라캉은 언어에 대한 프로이트적 설명에서 나아가 소쉬르의 언어학을 토대로 증상 형성의 과정을 정교하게 풀어나간다. 대타자의 욕망의 수수께끼와 마주친 주체는 대타자의 표현들 (기표들) 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며 이를 언어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단지 텅 빈 기표일 뿐인 언어를 통해서는 대타자와 주체의 간격을 결코 좁힐 수 없으며, 기표 사이를 끝없이 이동하면서 (기표의 연쇄) 주체적 등장과 사라짐을 반복하게 된다.

2.3.2. 두번째 결여 : 원초적 결여 (실재적 – 주이상스 – 불능)

한편 이전까지의 라캉이 언어로 인해 분열된 주체의 해석에 몰두했다면, 또 다른 (원초적) 결여, 즉 실재의 등장은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고 한다. 프로이트의 이중 충동과 자신의 기표적 결여를 딛고 제 3의 길로 한 단계 더 나아갔기 때문이다. 라캉은 탄생의 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리비도적 대상, 즉 대상 a 로 원초적 결여를 설명한다. 프로이트식으로 원초적 억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대상은 인간이 언어를 배우기 이전의 경험으로, 충동의 알 수 없는 원인이 되어 무의식의 중핵을 구성하게 된다. 이를 통해 예측 가능성, 법칙으로 대표되는 과학의 상징적 차원을 넘어서는 빈 구멍이 비로소 주체에게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2.4. 주체의 궁핍

라캉에게 있어 주체는 이런 두 결여가 끊임없이 실패하며 상호 작용하는 것으로, 이 때 주체의 중심부는 텅 비어있다. 언제나 주체될 것 (Subject to be) 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주체는 대타자와의 동일시를 통해 겹겹이 구축한 양파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나만의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전(前)-미래시제, 즉 논문의 제목처럼 주체가 전(前)-존재론적이고, 불확정적이라고 한 것은 사후적으로 결정될 수 밖에 없는 주체의 이러한 특수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주체는 다만 자기 자신을 나타낼 기표를 찾을 수 없는, 재현의 불가능성이다. – 슬라보예 지젝 [1]

결국 언제나 소외된, 기표로써의 주체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대타자 (원초적 결여의 대상) 를 만나게 되는데, 라캉의 담론은 이러한 두 결여를 처리하는 네 가지 방식이라고 한다. (※ 참고글 : 히스테리 담론의 특별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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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출발점인 주인 담론 (p. 222, 직접 스캔)

S1 : 절대 권위를 상징하는 주인 기표
S2 : 체계적인 지식
$ : 분열된 주체
a : 잉여 향락

기본적으로 주체 (S) 는 아버지라고 하는 주인 기표 (S1) 로 인해 소외되어 원래의 만족을 회복시키기 위한 방법들 (기표들, S2) 을 찾아나서게 된다. 프로이트와 초기 라캉의 관점은 여기에 머물러 있지만, 후기 라캉적 관점에서 이런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기표의 연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상실된 대상 (a) 일 뿐이기 때문으로, 심지어 이런 시도가 반복될수록 잉여 대상은 갈수록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잉여 향락 (주이상스) 문제에 있어 주체는 철저히 무능력 ($) 하며, 에덴으로 향하는 길은 원천적으로 차단 (//)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2.5. 이중 결여의 의미

이처럼 저자는 이중 결여를 통해 라캉과 프로이트의 결정적인 차이를 설명한다. 프로이트에게 있어 원초적으로 억압된 것은 필연적으로 분출 (억압된 것의 회귀) 될 수 밖에 없다. 이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적 필연성, 즉 인간의 결정론적 확신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극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본래 모습 그대로만 존재 가능하다. 사실상 치료의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정교한 타자적 구조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원인을 ‘무’로 돌려놓는 것을 통해 우리는 선택이라고 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결여를 통해 소외된 존재, 즉 이전까지는 어떻게 해도 소외의 자리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것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분리) 여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3. 정신분석적 주체

이처럼 소외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주체를 대하는 정신분석의 목적은 대타자의 영향력을 인지하고 점진적으로 분리를 돕는 것에 있다. 물론 종속된 강도에 따라 증상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펼쳐지겠지만 (그 극단에는 정신병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분석가와의 동일시도 라캉에게는 혐오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사실상 대타자가 점유했던 자리를 분석가가 대체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재를 통해 상징계에 근본적인 균열점이 마련됐듯, 주체에 있어서도 동일한 해결책이 제시될 필요가 있었다. 라캉이 환상의 가로지르기, 즉 분석가와의 절대적 차이를 목표로 한 새로운 형태의 동일시를 고안하게 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분석 이전의 주체는 대타자의 영향 범위 내에서 자신의 증상을 통해 대타자의 결여를 상징적으로 보충하고 있었다. 대타자와 주체를 동시에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시도, 프로이트식으로 일종의 타협형성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분석 과정을 통해 대타자의 비일관성, 즉 대타자의 대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으로 인해 기존의 대타자적 지위는 상실되게 되며, 여기에 의존하고 있던 주체도 거울 효과로 동일한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주체적 궁핍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환상 공식 ($ ◇ a) 으로 요약되는 상실된 대상, 즉 증상의 실재와의 동일시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주인담론에서처럼 결코 도달 불가능하지만 ($ // a) 그럼에도 욕망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a) 하는 것. 라캉이 병증 (sinthome, 증상symptôme과 성자saint homme의 결합) 이라는 신조어를 창안한 것도 대타자적 증상과 주체적 증상을 구분짓기 위함이었다. 분석의 종결 시점에 이르러 분석수행자 (환자) 가 스스로 창조한 자신의 증상 (병증) 과 동일시가 기존의 증상과의 동일시를 대체하면서 그의 분리 개념은 완결점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1] p. 202에서 재인용. S. Zizek,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London/New York NY: Verso, 1989,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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