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한 부족한 원인 설명의 아쉬움, 『굿 라이프』, 최인철

readelight

행복한 풍선들
AVvXsEgTamURZkB3uapc4onsO5cz8WRXb2Hl Naf4zyMiSsLLcNCSAS Kw3lovgbgq5ghzl4HAAKFXil4hZnunW62sVl dEdvCU71genqA a5yA4kJQLQPlcXff1lalU8qttSIqe

행복 전도사 최인철 교수님이 쓰신 신작 『굿 라이프』, 이전 저작인 『프레임』을 오래 전에 (자그마치 9년 전)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나 기대감에 책을 펼쳤다. 이전 책이 다른 연구 결과를 저자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책이었다고 한다면, 이번 책은 저자가 직접 ‘행복’이라는 주제를 놓고 연구한 결과물을 발표한 의미있는 저작임을 밝혀 자신의 이론에 많은 진전이 있었음을 암시했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책의 제목처럼 ‘좋은 삶’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원했던 그였지만, 책을 덮은 뒤 찾아온 감정은 조금 특별했다.

1. 저자의 이야기

책은 행복, 의미, 품격이라는 크게 세 단어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에세이 모음집인 ‘품격’ 편 외의 각 파트는 다시 세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의미를 보완하고 있었는데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1. 첫 번째 파트인 ‘행복한 삶’에서는

평소 우리가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어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지적하고 보다 폭넓게 행복의 정의를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우연히 찾아오는 복’이라는 정의 뿐 아니라 ‘쾌족 –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 흐뭇한 상태’임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 그 첫걸음으로, 행복감은 단일 감정이 아닌 다양한 감정들 가운데 긍정 감정이 보다 높은 상태임을 인식해 나쁜 감정을 유발하는 고통들 또한 행복과 공존할 수 있음을, 단지 상대적 비율의 차이임을 이야기 한다. 또한 우리 사회에 과장되게 인식되어 있는 유전의 힘을 약화시키고, 상대적으로 과소평가 되어 있는 환경과 노력의 힘을 강화시킬 것을 주문한다.

유전자와 유전자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 유전자와 환경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감안하면, 유전과 환경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이분법적 질문은 도널드 헵(Donald Hebb)의 주장처럼 마치 가로와 세로 중에 무엇이 사각형 넓이에 기여하는 정도가 더 큰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64p)

한 마디로 어느 한 쪽만 강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내 마음을 다스리는 ‘심리주의자의 기술’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쉽게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환경주의자의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행복의 기원이 전적으로 마음에 있다는 믿음 때문에 생기는 이같은 문제에 대해 ‘해야만 하는 존재 (당위적 자기)’ 가 아닌 행복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존재 (이상적 자기)’로 삶을 재정비 할 것을 촉구하고 있었다.

1.2. 두 번째 파트인 ‘의미 있는 삶’에서는

의미는 자기다운 일을 할 때 경험할 수 있으며, 굿라이프는 바로 ‘의미가 가득한 삶’이다. 우리는 목적 없는 삶을 견딜 수 없는 존재이기에 의미를 너무 무겁게만 바라보는 것을 조금은 내려놓되, 경험을 통한 기분에만 편중되어 있는 행복의 관점을 한편으로 삶을 기억하고 작은 의미를 찾아나갈 것을 주문한다. 그렇게 자기다운 일을 일상 속에서 탐구함으로써 ‘개인적인 의미’를 획득하고, 이것이 일로써, 궁극적으로는 소명을 성취하는 삶으로 나아갈 것을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이 잘되면 기분이 좋지만, 그 일이 자기다운 일이면 의미가 경험된다. 우리가 성공, 성취, 효용, 효율 등 무엇을 이루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면 순간적인 기분의 행복을 누릴지는 모르지만, 의미 있는 삶을 경험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157p)

1.3. 세 번째 파트인 ‘품격 있는 삶’ 에서는

굿 라이프를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중요한 메시지를 잔잔하게 담고 있다. 개방성, 감사, 냉소적이지 않은 비판, 한결 같은 노력, 후견지명 극복 등. 그 가운데 필자에게 의미있게 다가왔던 부분 두 가지는 인격은 가정 (주어진 정보를 넘어서게 하는 힘) 의 격을 나타낸다는 그의 정의와, 덕스러움을 유지하면서도 행복의 주관성을 잃지 않는 방법은 ‘자유주의적 개입’이라는 표현이었다.

2. 내가 받았던 느낌

이처럼 내용적으로 특별히 흠잡을 데 없는 좋은 책이었지만 뭐랄까, 느낀점을 쓰는데 이렇게 어려웠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아무리 쥐어 짜내려고 노력해 봐도 기억에 남는 감정을 찾기가 너무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허탈하게도 이 책을 통해 느꼈던 감정은 ‘무감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감각의 마비였을까? 저자의 이야기처럼 작은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후견지명의 사례였을까? 그렇지 않았다. 한 때 베스트셀러로 떠올랐으나 많은 젊은이들의 극심한 비난과 비아냥의 표적이 되었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 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은 부분은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실험들을 진행해 자신의 주장을 조금 더 설득력있게 뒷받침했다는 것 정도였다. 결국 무감각의 원인은 ‘냉소’였던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아쉬웠다. 행복을 향한 저자의 고민의 깊이와 집요함을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은 말, 공감되는 말, 옳은 말이 넘쳐났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것은 깊이의 부족, 즉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우리나라 지성을 대표하는 수장으로서의 무게감을 너무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니었을까. 훈수는 누구나 둘 수 있다. 하지만 훈수를 두기에 앞서서 그 사람들이 왜 그런 고통을 겪고 있는지에 대한 진중한 관찰과 깨달음이 더해졌으면 하는, 그렇게 좋은 말 대잔치보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날카롭게 쪼개는 비수의 메시지로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문제는 원인에 있었다.

가장 강하게 또 빈번하게 인식됐던 문제점은 앞서 밝힌 것처럼 저자가 문제의 원인 파악을 소홀히 했다는데 있었다. 일상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잘못 파악하면 그 처방이 전혀 엉뚱한 결과 –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다른 문제가 추가로 발생할 수도 있는 – 를 초래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되는데 내게는 저자의 주장이 이와 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1. 행복이 고통을 동반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게된 건 이모티콘 때문이었을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모티콘인 스마일리는 1963년 미국의 디자이너 하비 볼(Harvey Ball)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후로 스마일리는 50년이 넘도록 행복의 전 지구적 상징이 되었고, 수많은 이모티콘과 캐릭터가 넘쳐나는 요즘에도 행복을 기원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행복이 스마일리와 연합되면서, 행복은 항상 즐거운 상태일 것이라는 생각들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고뇌와 고통, 좌절과 실망, 분노와 슬픔 등 고통스러운 감정은 무조건적 기피의 대상이 되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스마일리와 같은 미소를 머금어야 진정한 행복이라는 부담감이 생겨났다. (43 ~ 44p)

3.2. 행복을 쾌락이라고 여기게 된 것은 주류 심리학자들에게 외면 당했기 때문이었을까?

인본주의 심리학은 인간 실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규정하고, 삶의 궁극적 복표로서 자아실현, 의미의 실현, 인격적 성숙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인본주의 심리학은 방법론적 엄밀성의 부족으로 인해 주류 심리학으로부터 차가운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의미와 자아실현은 개념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인해 주류 심리학자들에게 기피 대상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좋은 삶 = 쾌락’ 이라는 등식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쾌락을 측정하는 방법에 대한 나름의 합의가 존재하는 것에 비해, 의미를 측정하는 합의된 도구의 부재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오랫동안 뒷방 신세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결과, 우리는 쾌감으로서의 행복만을 좋은 삶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154 ~ 155p)

3.3. 우리가 자기를 다스려 행복을 찾고자 하는 것이, 행복의 기원이 전적으로 마음에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행복의 기원이 전적으로 마음에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리는 법, 미움받을 용기를 키우는 법, 신경 끄는 기술을 배우는 법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일체의 심리적 기법들에 큰 관심을 갖는다. (94p)

먼저는 행복과 고통과의 관계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이모티콘으로 인해 당혹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행복을 위해 쾌락을 쫓는 것과, 스스로를 다스려 행복을 찾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심리학자들 연구의 어려움 때문도, 행복의 기원이 마음에만 있다고 믿어서가 아닌 그런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 땅의 절망적인 현실 때문임을 애써 외면하는 듯 보여 속이 상했다. 내가 이런 주장을 펼쳤을 때 심리학을 공부하시는 어떤 분이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사회, 정치적인 이슈는 다루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저자를 옹호했지만 오히려 나는 학자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라도 더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두고 끊임없이 고민하여 이 사회에 빛이 될만할 메시지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인과 연결되지 않는 해법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조언으로, 또 다른 짐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 주시길, 그렇게 다음 작품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계시지만) 이 땅의 지친 독자들에게 더욱 의미있는 행복을 선물해 주시길 기대해 본다.

누군가에게 행복을 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우연을 선물한다는 의미다. (53p)


* 썸네일 이미지 출처 : Unsplash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