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회복탄력성은 지지경험을 통해 완성된다, 『회복탄력성』, 김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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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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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연히 찾아온 선물

이번 책은 『굿 라이프』 이후 성장판 서평단 활동 덕분에 두 번째로 읽게 된 자기계발 서적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글을 다시 읽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두 권의 선택지 중 제목에 호기심이 생겨 고르게 되었다. 요즘은 다른 분야에 빠져 있긴 하지만 자기계발 서적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단순한 긍정 이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다. 설령 그들의 이야기가 아무리 뻔하다 할지라도 이를 보다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자료의 의미를 통합한 저자의 노력과, 그로 인해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을 한번쯤 짚어주는 부분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또는 이해할 수 없어 그냥 넘어갔던 현상의 의미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또는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건 분명 동기부여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너무 직접적이어서 오히려 강렬하진 않더라도 서서히 스며드는 가랑비처럼 나의 의식을 조금이나마 바꿔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것에 어떤 새로움을 더해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고, 생각보다 내용 구성이 탄탄해 전반적으로 기분 좋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특히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의 대부분에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 저자가 얼마나 오랜 기간 공들여 글을 완성시켰는지 엿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 이 책은 내게 큰 깨달음과 감동을 주었다. 책에서 소개한 내용을 통해서가 아니다. 얄궂긴 하지만 오히려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무언가가 빠져있다고 느끼는 불편함이 나로 하여금 그 실체를 찾아나서도록 이끌었고, 바로 그 덕분에 보다 분명하고 또 절절하게 그것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화룡정점이라는 표현이 지나치치 않을만큼 우리나라에 있어서 핵심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만’ 해왔던 부분을 비로소 ‘가슴으로’ 느끼도록 해준 것은 정말이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선물이었다. 자꾸 대명사로만 표현해 ‘그’게 대체 무엇인지 아마 적잖이 답답함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필자가 느꼈던 감동을 본문의 흐름 속에서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임을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2. 회복탄력성은 무엇일까?

제목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좌절의 고통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쓰여졌다. 회복탄력성이라는 말 자체가 주어진 역경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일컫는 것으로, 결국 핵심은 관점의 전환,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꾸준한 연습에 있었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중요하기에 평소에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연습하고 대비해야 한다, 어디서 많이 듣는 얘기지 않나? 헬조선을 부르짖는 청년들에게 하는 윗 세대의 그 흔한 처방전 말이다. (물론 여기에서 윗 세대가 무조건 잘못했다거나, 또는 아랫 세대가 무조건 앓는 소리만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아니, 실은 이미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하고 있는 조언일지도 모르겠는데, 아마 저자도 이에 대한 도전을 꽤 많이 받았던 듯 싶다. 본문 곳곳에서 그런 조언을 하는 이유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엿보이는 연구자료들을 계속해서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보기에 회복탄력성을 갖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자기조절 능력과 대인관계 능력을 가져야만 한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 같은 조언은 각각 세 가지 요소로 나뉘어 뒷받침되고 있었는데, 먼저 나를 이해하기 위한 감정 조절력과 충동 통제력, 원인 분석력을, 남을 이해하기 위한 소통, 공감, 자아확장력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2.1. 감정 조절은 사건을 새롭게 해석하는 창의성을 통해 가능하게 된다.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것은 고난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창의적’이라고 정의한 점이었다. 보통 창의성이라고 하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거나, 다른 사람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즉, 내면보다는 외부에 적용되는 능력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데, 저자가 이러한 시선을 내면으로 확장시킨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압정이 담겨있던 ‘상자’를 뒤집어 ‘받침대’로 써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촛불 실험을 통해 창의성이란 고정된 생각의 틀을 깨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 즉 던커의 표현을 빌어 ‘기능적 고정성(functional fixedness)의 극복’ 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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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창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은 긍정적 태도가 주는 여유를 통해 보완될 수 있었다. 학생, 의사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의 실험을 근거로 아주 사소하게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창의성이 향상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어떤 이들은 코미디 영화를, 어떤 그룹은 단지 사탕만 받았을 뿐이었음에도 그렇지 않았던 통제집단보다 간질환과 관련된 단서를 더 일찍 발견하고, 틀에 박힌 생각에서도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한다.[1] 이러한 긍정성은 업무 효율 뿐 아니라 진취성과 도전성도 키워주어 오늘날 구글을 있게 한 펀 문화 (일주일의 20%를 놀이에 사용하도록 허용한 결과 많은 서비스들이 해당 시기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의 성과와도 연결될 수 있음을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2.2. 학습된 인내심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충동 통제력이 아니다.

여기서는 아주 흥미로운 주제이자 저자의 입장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주제가 제시된다. 바로 우리나라의 교육. 충동 통제력이 단순한 인내, 참을성과 다른 것은 자기 동기를 스스로에게 부여하여 절제하는 것, 즉 자발성에 있다. 만약 이 절제가 긍정성, 자율성과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는 단순한 인내에 불과할 따름으로 어렸을 때부터 참을성을 강요받는 우리나라의 경쟁적 교육 문화를 꼬집는다. 여기서 제시된 자료는 두 가지로 한 가지는 미국의 회복탄력성 지표과 비교한 결과와 국가간 학력 비교 조사인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과) 결과였다. 레이비치와 샤테의 회복탄력성 검사 도구를 통해 미국인과 비교했을 때 한국인들에게 유일하게 높은 것이 바로 이 ‘충동 통제력’이었다고 하는데, 이 내용을 PISA 자료 해석과 함께 보면 의미심장하다. 2009년 (이 책이 2011년에 쓰여졌음을 감안하도록 하자) 65개국 학력 비교를 보면 학업 성취도는 최상위 수준 (종합 4위 이내) 이었음에도 학습동기, 협동학습,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 등에서는 최하위 수준이었다. 어려서부터 오로지 교육이라는 수단을 위해 삶이 억압된 결과가 고스란히 지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 10대 2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 것은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고진감래라는 이데올로기, 아니 신앙을 무기로 입시위주의 경쟁적 학교 교육과 불안한 부모의 조바심이 아이들로 하여금 공부의 의미 자체를 앗아가고 있음을 저자는 신랄하게 지적한다.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 다른 어떤 놀이보다 즐겁다는 것을, 창의적으로 설득력 있는 자기만의 주장과 이론을 만들어내는 너무나 즐거운 놀이가 곧 학문[2]임을 깨닫을 때가 오기를 저자는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2.3. 내가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원인분석의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짚을 수 있는 부분은 부정적 감정이 내 해석의 결과라는 점이다. 긍정성, 창의성, 자율성을 박탈당하면 원인분석은 결코 온전해질 수 없다. 지극히 제한된 이해로 인한 극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마틴 셀리그만의 ABC (Accident : 사건, Belief : 믿음, Consequences : 결과) 를 소개하는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AC로만 사건을 바라보지만 그 속에 이를 바라보는 개인의 믿음(B)이라는 연결고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경험이 내 삶의 이야기로 기억되고 전달되려면 나만의 해석, 즉 의미가 주어져야만 한다. 그렇게 사건을 대하는 반응 속에 나의 믿음이 존재함을 기억하고, 부정적인 사건을 접했을 때 나에게만 (개인성), 모든 면에서 (보편성), 늘 일어나는 (영속성) 일로 바라보기 보다는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이 부분에 있어서만, 그리고 일시적인 일로 해석하는 습관을 들일 것을 권고한다.

2.4. 두뇌는 본래 사회적이다.

대인관계 능력을 구성하는 소통, 공감, 자아확장력은 나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커뮤니케이션의 본래 의미인 ‘경험 나눔’에 초점을 맞춰 내용 중심 말하기 (남성의 대화 방식) 를 관계와 공감 중심 말하기 (여성의 대화 방식) 와 잘 조화시킬 것을 당부하는 저자. 그리고 두뇌는 본래 사회적인 것으로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성장하고 완성될 수 있음을 언급하며 회복탄력성과 관련된 설명은 마무리 된다.

격리된 채 다른 원숭이들과 상호작용을 못하는 조건에서 자라난 원숭이들은 감정적인 불안뿐만 아니라 학습과 기억 능력에도 현저한 저하를 보였다. 해부해보니 그 원숭이들의 뇌는 쪼그라 들어 있었다. 사회적 상호작용 없이 자라난 원숭이들의 뇌는 제대로 발육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랑을 받아야만 사랑을 줄 수 있고 사랑을 받고 자라야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어려서 엄마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사랑을 받고 자라야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할 수 있는 뇌의 부위가 제대로 발달한다. 인간관계 속에서만 뇌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레스텍이 말하는 ‘뇌는 사회적 실체다’라는 명제는 은유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직설적 표현이었다. p.p. 199-200

3. 회복탄력성을 키우기 위한 방법은?

앞서 살펴본 회복탄력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핵심은 긍정적인 정서를 키우는 것이다. 긍정적인 정서가 밑받침 될 때에만 나와 남을 보다 여유롭게 수용해줄 수 있게 되는 것으로, 후천적으로 이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은 우리의 두뇌가 나이에 관계 없이 늘 향상될 수 있음을 믿고, [3] 자신만의 강점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것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를 부수적으로 지원해주는 마음에 좋은 습관인 감사와 몸에 좋은 습관인 운동을 병행함으로써 말이다. 사실 강점에 집중하는 것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될만큼 일반화된 방법이다. 그런 만큼 저자는 셀리그만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강점을 수행하는 것이 일상에서 긍정적 정서를 오랫동안 유지시키며 부부, 부모, 리더십 등 관계성의 회복에 있어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이 발견한 긍정적 정서 향상법에는 명상, 선행, 좋은 기억 회상 등 여러가지가 있으나 감사하기 훈련이 최고의 효과를 지니고 있음을 최근의 신경과학 연구(심장박동수의 안정성), 6주간의 감사일기 작성 습관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연구의 역사가 훨씬 오래된 운동의 효과에 대해서는 자료가 더욱 풍성해진다. 가벼운 우울증 치료 효과의 입증 뿐 아니라, 꾸준히 운동할 경우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겨남을, 그렇게 학습능력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뇌 기능이 향상되는 결과가 보고되었음을 소개해 운동을 향한 의지를 자극하고 있었다.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하고도 체계적인 노력을 통해 긍정성을 단련해야 한다. 학자들은 긍정성의 자기통제능력은 일종의 근육과도 같아서 사람마다 제한된 능력을 갖고 있으며,주어진 시간 내에 견뎌낼 수 있는 부하량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자기통제력이라는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적절한 부하가 걸리도록 ‘훈련’을 하되,지나치게 무리해서 ‘정신적 근육피로나 부상’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p.p. 220-221

4. 의지를 이끄는 힘의 원천

4.1. 진정한 의지가 과연 노력으로 생길 수 있을까?

여기까지가 회복탄력성을 향한 저자의 연구에 대한 아주 간단한 소개이다. 저자가 우리가 갖고 있는 상식, 또는 잘못된 선입견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길 바라는 마음이다. 저자는 앞서 억압된 삶에 고통스러워하는, 그렇게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젊은 사람들을 구해주고 싶어하는 뜻을 ‘충동통제력’ 장 전반을 통해 간접적으로 피력한 바 있다. 아마도 그 귀한 마음이 이 책을 쓰게 된 중요한 동기였을 것이다. 물론 프롤로그에서 ‘정상적인 사람들의 소통능력을 더욱 고양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4]임을 이야기하긴 하지만,

비관주의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뇌에 긍정성을 훈련시키서 향상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긍정성 항상의 문제는 여유나 사치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사람에게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한 문제다. 치명적일수도 있는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게 하고, 우울증으로 발전할지도 모르는 정신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은 우리 청소년과 국민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p. 223

이 정도로 심적인 고통을 받는 사람들까지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봤을 때, 분명 이 방법이 모두에게 효과가 있을 것으로 확신했던 듯 하다. 하지만 이처럼 정말로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의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메시지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이라 생각하는지 새삼 궁금했다. 물론 나 또한 이들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대변할 정도는 아니어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다음 장에서 소개할 개인적인 경험 뿐 아니라 관련된 책들을 지속적으로 읽어온 것에 비추어 봤을 때 분명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옳은 소리’를 넘어서는 ‘더 옳은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고통받는 이들의 숨통을 조이는 차라리 저주에 다름 아닐 수 있다. 적어도 자기계발을 위한 의지를 가질 수 있는, 즉 내면의 힘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더해 그들의 성취를 북돋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일어날 힘도 없는 사람에게 생각을 고쳐먹고 힘을 내보라고 하는 것은 경멸어린 시선 외에 좋은 반응을 얻긴 어렵기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가 왜 젊은 세대 사이에서 꽤 오랜 기간 비판과 조롱을 받았는지, 이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드러내놓고 저자의 주장만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긍정심리학 류의 자기계발 서적들이 지닌 공통적인 한계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들의 주장은 본질적이지 않다.

4.2. 중요한 연구자료, 하지만 아쉬운 결론

연구자들은 1955년에 카우아이 섬에서 태어난 모든 신생아 833명을 대상으로 해서 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추적 조사하는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카우아이 섬이 연구 대상으로 선정된 것은 무엇보다도 열악한 사회경제적 환경 때문이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겪을 수 있는 불운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 카우아이 섬이었다. 그리고 그 섬에서 태어난 사람들 대부분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그 섬에 산다. 인구유동이 적은 이 섬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닫힌 세상이었다…. 이 아이들이 30세가 넘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이 연구는 계속 되었으며, 무려 90%에 가까운 698명이 조사 대상으로 끝까지 남았다. 종단연구에서 장기간에 걸쳐 이렇게까지 높은 잔존률을 보이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워너 교수가 40년에 걸친 연구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회복탄력성의 핵심적인 요인은 결국 인간관계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제대로 성장해나가는 힘을 발휘한 아이들이 예외 없이 지니고 있던 공통점이 하나 발견되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그 아이의 인생 중에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사람이 엄마였든 아빠였든 혹은 할머니,할아버지,삼촌,이모이든 간에, 그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봐주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서 아이가 언제든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던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었던 것이다. 톨스토이 말대로,사람은 결국 사랑을 먹고 산다는 것이 카우아이 섬 연구의 결론이다. 아이는 사랑 없이 강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 사랑을 먹고 자라야 아이는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아갈 힘을 얻는 법이다. 이러한 사랑을 바탕으로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자아존중심을 길러가며 나아가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고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회복탄력성의 근본임을 카우아이 섬 연구는 알려준 것이다. p.p. 47-48, 58

저자가 서론을 통해 제시했던 중요한 연구 자료이다. 열악한 조건 가운데서도 최악의 상황에 속해있던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 그것은 곧 누군가의 전적인 지지를 통해 가능했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하지만 이어서 밝히기도 했지만 저자는 어린 시절의 건강한 성장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희망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다. 과거가 아닌 현재 가운데서, 어른이 된 이후에도 스스로의 노력과 훈련에 의해 얼마든지 회복탄력성이 높아질 수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독려하고 싶었던 것이다 (해당 연구자인 에미 워너의 주장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의 힘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최선을 다해 찾아내 전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모순에 봉착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결국 그가 우려했던 삶의 무기력함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긴 어려운, 생사가 달린 절박함 앞에서 할 수 있으니 힘내보라는 조언 그 이상이 되어주진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 받아야만 사랑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 저자, 하지만 그건 어릴 때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듯하다. 어른의 세계는 냉혹하므로 누군가로부터 공감이나 지지를 받길 바라기보다 혼자 힘으로 일어서야 함을 이야기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분명 맞는 말이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의지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향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나 성공 지상주의 교육에만 매몰돼 신체적으로만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 이 시대의 수많은 어른아이들은 아직도 진정한 사랑에 목 마르기에 이 부분을 중요하게 다뤄주는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4.3. 『그릿』에는 있는 것과 그 한계

회복탄력성을 갖기 위해서는 열정적 끈기인 ‘그릿’이 필요하다고 하는 근래 최고의 성공을 거둔 책 『GRIT』을 살펴보자. 이 책이 자기계발 분야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킨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2016년 10월 25일 1쇄를 발행한지 불과 2달만인 12월 27일 39쇄를 찍어낼 정도로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는데, 삶의 전반을 아우르는 저자의 연구 내용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저자가 관찰한 그릿의 전형은 나를 움직이기 위한 진정한 자기동기의 철학, 즉 삶의 이유가 분명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이 책의 저자 또한 자기 성찰을 통해 뚜렷한 목적의식과 방향성을 갖고 삶을 살아나가야 함을 이야기[5] 하지만 한 문장으로만 짚고 넘어갔을 따름으로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긍정성 단련’ 자체였다. 하지만 삶의 이유를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회복을 위한 진정한 움직임이 있을 수 있을까? 삶의 나침반을 가진 이들 그릿의 전형은 ① 열정의 원천인 흥미를 향한 관심, ② 이를 통한 의식적 연습 (이에 대한 내용 요약은 『1만 시간의 재발견』을 참고하기 바란다), ③ 대단히 강한 동기의 원천인 타인을 향한 목적의식과 ④ 정말로 변할 수 있다는 깊은 믿음의 증거인 희망을 토대로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이었다. 비록 『회복탄력성』이 먼저 출간되긴 했지만 『GRIT』을 먼저 접했던 필자로서는 내용의 불충분함에 아쉬움이 더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물론『GRIT』 또한 긍정심리학과 인지심리학에 기반을 둔 해법이라 분명 중요한 부분들을 부연해주긴 했지만 본질적인 면에서는 마찬가지의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4.4. 정신분석의 낮은 자를 향한 사랑

성공적인 분석에서는 환자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원초적인 자기대상 반응에 대한 욕구가 성인들이 안전감을 갖고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인 공감적인 반향에 대한 욕구로 대체된다. 이런 긍정적인 결과에 더해, 언어표현 능력의 증대, 확장된 통찰력, 보다 자율적인 자아기능, 그리고 증가된 충동 통제 능력 등이 수반될 수도 있지만, 이것들이 치료의 본질은 아니다. 치료를 성공으로 이끄는 요소는 환자 자신이 분석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 자기대상 전이를 발생시키고, 그 안에서 어린 시절에 좌절되었던 자기의 욕구를 재활성화 하는 것이다. 분석에서 이렇게 재활성화된 욕구는 유지되고 노출되면서 최적의 좌절을 반복해서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환자는 결국 자기대상이 되어주는 주변 성인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자기를 지탱할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을 획득하게 된다. 따라서 자기심리학에 따르면, 정신분석 치료의 본질은 환자가 적합한 자기대상들 – 거울 역할을 하는 자기대상과 이상화 자기대상 – 을 현실의 삶에서 발견하고 추구하며 그것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을 새롭게 획득하는 데 있다. 하인즈 코헛, 『정신분석은 어떻게 치료하는가?』, p.p. 120-121

현대 정신분석학의 거장으로 평가 받는 하인즈 코헛의 주장이다. 내용의 핵심은 분석가의 공감적 지지를 통해 어린 시절 좌절된 환자의 욕구를 재활성화시키고, 외상이 되지 않는 수준의 새로운 이해(최적의 좌절)로 나아갈 때 자기를 받아준 치료자를 내재화함으로써 비로소 자기를 지탱할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회복을 위한 자존감, 자신감의 형성은 공감 대상과 이상화 대상의 발견과 지지를 통해서만 가능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면을 다루는 과학적 방법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내를 통한 들음만이 깊은 고통 속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을 회복시킬 수 있음을 정신분석은 이야기 한다. 세상이 인과의 원리, 곧 뿌린대로 거두는 것이 진리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마음 속에 오랜 기간 축적된 독기 또한 그 강도에 비례한 배출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회복을 향한 의지는 그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움틀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이 젊은이들의 약한 의지를 바로잡기 위한 훈육에 앞서 진심으로 그들의 마음을 듣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먼저인 이유인 것이다.

4.5. 기독교의 믿음에 대하여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바울, 성경 (개혁한글판) 로마서 3장 20-2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바울, 성경 (개역한글판) 로마서 5장 8절, 6장 14절

바울의 핵심이자 기독교의 핵심은 바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 곧 은총이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결정적인 차별점으로 부각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은혜(다른 하나는 부활이다)이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노력을 통해 의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은혜를 받은 것을 깨달아 그에 대한 감동을 믿음으로 고백함으로 비로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삶, 곧 의인이 이미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이름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메시지의 요체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한국 기독교가 타인에게 믿음을 강요하는 배타적이고 자기계발적 신앙을 종용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믿지 못하는 타인에게 전해야 할 것은 그저 자신이 받았던 사랑의 실천일 뿐, 받아들이는 이의 믿음이 언제 어떻게 고백될지는 알 수도, 알려고 해서도 안되는 일이다. 본인도 그렇게 전혀 예상치 못하게 사랑에 대해 깨닫고 믿음을 고백하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 내에서도 그러한 사랑을 경험하고 고백하는 이들은 점점 더 드문 일이 되어가고 있고, 어린 세대들은 이미 썰물처럼 교회를 떠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율법은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만든 행위의 규제로 요약하면 인간적 ‘노력’ 그 자체이다. 결국 긍정심리학류의 자기계발 서적들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철저한 율법주의자이자 기독교 핍박자였던 바울을 느닷없이 목숨을 내걸 만큼의 기독교 전도자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힘은 결국 사랑의 깨달음에 있었다. (다른 제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율법, 곧 행위의 규제는 옳고 그름을 알게 해주어 분명 그 자체로 선한 것이지만 인간의 욕망이 이를 모두 지킬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에 수동성에 따른 무력감, 즉 죄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알랭 바디우, 『사도바울』 리뷰 참고)

5.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하여 – 희망은 오직 사랑을 통해 일한다.

나의 의식을 바꾼 것은 7할이 책이었다. 갇혀 있었던 생각의 틀 속에서 나를 자유롭게 해주고 내 감정적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유일한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계속해서 글을 쓰고자 했던 것은 아직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잘 소화해서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식이 주는 기쁨, 그리고 그것이 일시적 만족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바꾸고 누적되어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듯 나는 너무나도 진지한 사람이다. 간편함, 가벼움, 안락함, 즐거움의 추구가 갈수록 주류로 자리잡아가는 오늘날 나의 이런 성향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생각은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오랜 기간 주저했고, 그저 읽기만, 그리고 생각들을 정리하지 않은채 머리 속으로만, 또는 일기로만 간직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내가 글을 더 적극적으로 쓰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삶 가운데서 정말 닮고 싶은 롤 모델이자 존경하는 교수님 (일평생을 진리 탐구에 헌신하고 계신) 께서 나의 이런 글들을 보시곤 정말 잘 쓴다고 따뜻한 격려를 해주신 덕분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글에 대한 작은 확신을 갖게 되었고, 차차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쓰기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도중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출근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인데 주책맞게 계속해서 훌쩍이고 있다. 하지만 이 눈물을 통해서 나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단단한 내면의 성에 갇혀 있는 작은 어린아이였는지를, 누군가 나의 고통을 이해해주고 꺼내주길 정말 간절히 바라는 그런 아이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렇게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어둠 속에서 나를 이끌어 준 것이 그 분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고, 정확히 그런 점에서 이 눈물은 감동과 감사의 눈물 그 자체였다. 일반적으로도, 또한 수 많은 책들에서 이야기하는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존재 자체로도 귀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카우아이 섬 아이들의 경험처럼 나 혼자만의 힘으로가 아니라 나 자체가 이미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경험, 즉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경험을 하는 것에서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다. 그것이 정확히 기독교가 전해야 할, 그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구원의 열쇠,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 아닌가?

물론 난 아직 턱 없이 부족하다. 나이가 많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결코 적다고도 볼 수 없는 나이에 이렇게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당장 글을 이렇게 열심히 쓴다고 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유튜브처럼 합리적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언젠가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위해 꾸준히 준비해 두는 것을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하는 절박함이 강한 동기가 되어 나를 이끌고 있을 따름이다. 연습을 위한 의지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하다. 앞서 나의 의식을 바꾼 7할이 책이라고 했지만, 그것이 결정적으로 행위로 이어지게 한 것은 존경하는 대상으로부터의 총애 경험을 통해서였다. 책의 기여도가 설령 100%가 될지라도 이는 변치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갖고 있다 하더라도, 나를 움직이는 단 하나의 동기는 바로 내 모습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사랑의 경험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말이다.


[1] p. 114
[2] p. 129
[3]

뇌의 가소성에 대해서는 노먼 도이지의《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뇌 The Brain that Changes Itself: 우리나라에서는《기적을 부르는 뇌》로 출간됨》라는 책에 많은 사례가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특히, 도이지에 따르면 “나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서 머리가 굳어졌는데…”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의 머리는 평생 굳어지지 않는다.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의 뇌는 계속 변화한다. 뇌세포는 새로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도 잘못된 속설이다. 뇌세포는 80세가 넘어서도 계속 만들어진다. 뇌에 관한 한 “변화시키기엔 나이가 너무 들었다”는 것은 모두 잘못된 생각이다.

예컨대,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아흔 살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일흔여덟 살에 이중초점 안경을 발명했다. 창의력을 연구한 레만과 딘 키스사이몬튼에 따르면 대부분의 분야에서 창의력이 절정을 이루는 때는 서른다섯에서 쉰다섯까지의 연령대이고, 60대와 70대의 사람들은 일하는 속도는 느려도 20대 때만큼 생산성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p. 232

[4] p. 7
[5] P. 10

* 썸네일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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