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밝힌 15년 연구의 결정판이다. 이런 귀한 지식을 한 권으로 습득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늘 그렇듯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잘 정리하고 공유해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한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어떻게 노래의 일부만 듣고 제목을 맞출 수 있을까? 어떻게 눈을 감고도 익숙한 공간을 떠올리고, 그 안에서 돌아다니고 물건을 찾는 것이 가능할까? 몸의 무수히 많은 감각기관들이 수시로 자극을 주는데 어떻게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을까? 책 제목이기도 한 ‘천 개의 뇌 이론’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다.
저자는 1.5kg에 불과한 세포 덩어리인 뇌, 그 중에서도 70%를 차지하고 있는 신피질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① 신피질은 최소 단위(피질 기둥)를 기준으로 다양한 기능을 같은 방식으로 수행한다.
② 피질 기둥들은 대상에 지도 같은 좌표(기준틀)를 부여해 종합적으로 인식한다. 이 방식으로 환경과 몸, 사물 뿐 아니라 추상적 개념도 이해 가능하다.
③ 기억된 기준틀을 통해 우리 뇌는 효율적으로 예측하고 반응할 수 있다.
④ 피질 기둥 각각에 입력된 무수히 많은 감각은 투표를 통해 하나의 인식에 이르게 된다.
아마 설명한 내용이 별로 와 닿지 않으실텐데, 이 글을 읽고 나면 이런 작동 방식이 당연하게 여겨질 것이다.
1. 천 개의 뇌 이론이란?
우리 뇌는 세계 모형을 배운다. 자전거를 떠올려 보면 각 부위 별 정보들을 개별적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모양, 상대적 위치, 촉감, 조작 방식 등을 한꺼번에 기억하는 식이다. 저자는 신피질의 각 영역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능 활동을 담당한다는 일반적인 견해를 뒤집어, 참깨 크기만한 피질 기둥(1mm2 아래 2.5mm3 공간)이 완전한 대상 모형을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참고로 책에서는 쌀알 크기라고 설명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보다는 훨씬 작은 것 같아 참깨로 정정했다). 신피질 내에는 이런 피질 기둥이 약 15만 개 가량 있는데, 저자 연구팀이 시뮬레이션 한 결과 각 피질 기둥이 수백 개의 모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즉, 어떤 지식이 수천 개의 보완적 모형으로 분산 저장되어 있다는 뜻에서 ‘천 개의 뇌’라 이름 지은 것이다.
이론의 출발점
저자에게 이론적인 기틀을 제공한 사람은 존스홉킨스대학의 신경과학자 버넌 마운트캐슬이었다. 그는 1978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신피질 영역이 모두 같은 일을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① 신피질의 모든 영역은 시각, 촉각, 언어 등 영역에 관계없이 매우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고 동작 방식도 동일하다.
② 각 영역이 확고하게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③ 극도의 유연성을 갖고 있어 어떤 것이든 배울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머리 뒷 부분이 손상될 경우 실명의 위험이 있다. 좌뇌가 손상되면 언어 장애가 생기는 등 기본적인 영역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나, 선천적 시각 장애인의 경우 신피질의 시각 영역이 청각, 촉각 관련 역할을 새로 받는다고 한다. 오래된 뇌처럼 특정 기능만 수행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동일한 메커니즘이 복제되고 확장되어 신피질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피질의 모든 영역이 똑같아 보이는 것은 모두 같은 일을 하기 때문으로, 일부 영역에서 기본 기능을 발견할 경우 신피질의 전체 적용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방향성을 제시하게 된다. 물론 당시에는 가설 수준에 불과했으나, 이 주장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저자는 수 많은 연구자료들을 토대로 기본 단위가 피질 기둥임을 밝히고 실증적 자료들을 더해 자신의 이론을 완성하게 된다.
2. 신피질의 구조와 특징
신피질의 내부는 보다시피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 두 번째 이미지가 신경세포 층으로 이루어진 피질 기둥으로, 기둥들 사이에 구분이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각각 다른 자극에 반응하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각 피질 기둥에는 수십 종류의 신경세포가 약 10만 개, 그리고 이들 사이의 연결점인 시냅스는 무려 5억개나 존재한다. 게다가 뿌리 형태로 뻗어있는 축삭과 가지돌기를 연결하면 수 km나 된다고 한다. 수 km에 달하는 전선을 참깨 안에 넣었다고 보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신피질은 행동을 직접 제어하진 못한다. 신피질 세포 중 근육과 직접 연결된 것이 하나도 없어 혼자서 어떤 근육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호흡을 담당하는 뇌줄기는 신피질 입력에 상관없이 일어난다. 물론 숨참기처럼 일시적인 제어는 가능하지만, 산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통제권을 회수해 버린다. 오랫동안 신경과학자들은 신피질로 들어온 정보가 위계에 따라 오르내리면서 운동 영역으로, 그리고 팔, 다리 움직이는 척수 신경세포들로 그 정보를 보낸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신피질의 모든 영역에서 오래된 뇌 부분으로 신호를 보내 움직임을 제어한다는 것을 발견해 저자의 이론을 뒷받침한다.
3. 신피질의 작동 방식 : 예측, 판단, 투표
이론을 체계화시키는 과정에서 저자가 핵심 발견으로 꼽은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① 신경세포가 예측을 한다. (2010년)
② 예측은 신경세포 내부에서 일어난다.
③ 신피질에 지도 같은 기준틀이 있다. (2016년)
3.1. 예측하는 신경세포 (2010)
저자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부분에 집중해 이론적 틀을 떠올리게 된다. 예측에 관한 대표적인 예는 우리가 환경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알아챈다는 점이다. 익숙한 공간에 작은 변화가 생기면 우리는 그 점을 곧바로 알아차리고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이것은 뇌가 무엇을 보고 듣고 느낄지 수많은 예측을 동시에 (예측 신호와 입력 신호를 비교)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앞서 설명한 자전거 모형처럼 ‘세계 예측 모형’을 만든 것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입력될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신피질 고유의 속성이자 학습의 필수요소로, 우리는 예측이 빗나갈 때마다 오류에 집중해 모형을 수정해 나간다.
하지만 이 설명 방식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① 매순간 예측하는 신피질의 특성상 예측 신경세포 수가 아주 많이 발견되어야 했지만 발견된 적이 없었고,
② 결정적으로 매순간 수십만 개 예측을 동시에 하는 걸 어떻게 인식하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가지돌기를 따라 늘어선 시냅스는 수천에서 수만 개 가량 존재한다. 그림 왼쪽 세포체 주위의 시냅스는 몸쪽 시냅스라고 불리는데, 여기에서 충분한 입력을 받으면 극파를 발화해 축삭을 통해 다른 신경세포로 전달된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몸쪽에서 발화되는 시냅스가 10% 미만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90%는 훨씬 먼 곳에서 발화 돼 극파를 일으키지 못한다. 말단 시냅스에 입력이 도착해도 세포체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에 놀랍게도 오랫동안 90%의 시냅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90년 무렵 가지돌기 극파를 발견하게 된다. 한 가지돌기 근처 20여 개 시냅스 집단에 입력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세포체로 전압을 올리는 걸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 자극은 단순히 알리는 정도에 그쳐 극파를 일으키지는 못한다. 저자는 바로 이 가지돌기 극파의 지분거림이 예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 신경세포가 패턴을 인식해 가지돌기 극파를 만들면 신경세포는 예측 상태로 돌입해 발화를 준비하고, 예기치 못한 입력보다 훨씬 많은 활동을 촉발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각 신경세포가 수 개천의 먼쪽 시냅스를 갖고 있어 수백 가지 패턴을 예측 가능하고, 2만 개밖에 안되는 신경세포가 완전한 순서를 수천 가지나 배울 수 있으며, 기억에 사용된 신경세포의 30%가 죽거나 잡음이 섞여도 순서를 기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3.2. 기준틀의 발견 (2016)
하지만 멈춰있는 물체나, 멜로디의 순서를 기억하는 것보다 어려운 문제는 움직임에서 비롯된 자극이었다. 당장 눈만해도 초당 약 세 번씩 신속 운동을 해 그 때마다 입력되는 정보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한다. 이에 저자는 그 문제를 두고 씨름하다 2016년 2월 ‘아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당시 아내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그는 커피잔을 들고 만지는 손가락을 관찰하며, 손가락이 움직이면서 무엇을 느끼는지 예측하려면 어떤 것을 알 필요가 있는지 자문했다고 한다. 이 때 그가 떠올린 조건은 두 가지였는데,
① 손가락에 닿는 물체가 ‘무엇’인지,
② 각각의 손가락이 잔의 ‘어디’에 위치 (상대적 위치) 하는지를 아는 것이었다.
즉, 잔에 대한 기준틀에 내 손가락의 위치를 나타내는 신경세포들이 신피질에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실제로 오래된 뇌에서는 이미 ① 장소세포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고 (1871년) 한다. 쥐가 특정 환경이나 장소에 있을 때마다 극파를 발화해 지도 내에서 현재 위치를 표기하는 식이다. 이후 2005년에는 ② 격자세포를 발견해 여러 장소에서 극파를 발화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직선으로 나가면 동일한 격자세포가 일정 간격으로 반복 활성화 되었던 것이다. 익숙한 방에서 눈을 감아도 자기 머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③ 머리방향세포의 존재도 확인한 바 있다.
따라서 저자는 신피질이 이런 오래된 뇌의 작동방식을 복제했다고 설명한다.
① 오래된 뇌의 격자세포가 주로 자기 몸의 위치를 추적했다면,
② 신피질의 각 피질기둥은 연상 기억을 활용해 수천 개 위치를 동시에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질 기둥의 상단부에서 입력이 들어오면, 신경세포 수백 개가 활성화 되어 아랫쪽 기준틀에서 현재 위치를 나타낸다. 이 둘은 서로의 단서로 상호작용해 이 감각이 어디의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이처럼 저장된 지식을 불러낼 때 적절한 기준틀과 위치가 활성화 되는데, 피질 기둥들 사이에서도 영역 별로 담당하는 기능에 차이가 있다. 크게 무엇 구역과 어디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기준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무엇 피질 기둥 격자세포는 대상에 기준틀을 첨부해 대상의 정체를 확인하고, 어디 피질 기둥 격자세포는 우리 몸에 기준틀을 첨부해 몸에 대한 물체의 상대적 위치를 확인한다. 이 두 기둥이 협력해 물체의 정체를 확인하고 접근, 조작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방식에서 물리적인 고정점만 제외하면 민주주의 같은 개념도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다.
① 오래된 뇌 기준틀 : 주변 환경 지도 배움
② 신피질 무엇 기둥 기준틀 : 물리적 대상 지도 배움
③ 신피질 어디 기둥 기준틀 : 몸 주변 공간 지도 배움
④ 신피질 비감각 기둥 기준틀 : 개념의 지도 배움
3.3. 각각의 입력을 통합하는 방법
그렇다면 우리는 수천 개의 모형을 어떻게 단일 지각으로 경험할까? 기존 이론은 수많은 입력이 단일 장소에서 수렴된다고 오랫동안 가정해 왔으나, 저자는 피질 기둥들이 투표를 통해 합의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각 피질 기둥은 서로 느끼고 판단한 결과를 외부로 길게 뻗어있는 장거리 연결을 통해 전파하는데, 이 때 지지를 많이 받는 추측이 적게 받는 추측을 억눌러 하나의 답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입력이 수시로 변해도 세계를 안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이유는, 투표 신경세포 수가 2% 수준으로 극히 적기 때문이다.
4.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
살펴본 것처럼 뇌는 주어진 자극을 통합적으로 기억 (기준틀을 활용한 세계 모형) 해 예측과 반응에 끊임없이 활용한다. 또한 무수한 자극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세계를 지각할 수 있는 선별 체계도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이런 신피질은 포유류에게만 존재하며, 복잡한 회로는 종이 달라도 서로 비슷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인간만이 유일하게 고등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을까? 우리를 숙연하게 하는 영원한 수수께끼 앞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보면, 저자가 전해준 교훈은 앞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때 유용한 지침으로 활용하게 될 듯 싶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을 한 가지만 꼽자면, 이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신경과학의 목표는 1.5kg에 불과한 두뇌가 어떻게 지능을 낳을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 이를 온전히 설명하는 이론이 없어 부분적인 이해에만 머무르고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었다. 마치 수학에서 문제와 답은 주어졌는데 문제를 푸는 공식 (기준틀) 을 알지 못해 그 답이 어떻게 나왔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상태였던 것이다. 다른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체계화 된 이론을 정립하는 역할을 해왔던 저자(이론 과학자)는, 여기에 정확히 부합하는 결과를 제시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그 기간이 15년이 걸렸다는 점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론의 중요성은 이처럼 세상에 대한 고차원적인 이해와 문제 해결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데 있다. 저자는 자신의 발견에 기반해 전문가란 훌륭한 기준틀을 가진 사람이라고 적절하게 정의 내린다. 아인슈타인도 동시대 사람들과 동일한 사실을 바탕으로 시작했지만 관찰된 결과 해석에 더 나은 방법 (기준틀) 을 발견해 놀라운 예측을 할 수 있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시의적절한 이론을 갖는 것은 갈수록 더 나은 삶 이전에 생존에 직결된 문제로 치닫고 있음을 많은 분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인공지능이 다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우려도 있지만, 이를 활용해 세상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의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은 갈수록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모쪼록 변화의 한복판에서 끊임없이 학습하고 새롭게 연결하는 두뇌의 가소성을 믿고, 많은 분들이 배움을 즐길 수 있는 길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 표지 이미지 출처 : DALL.E
정리된걸 봐도 어렵군요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최대한 함축해서 정리하려고 했는데 설명이 부족했나 봐요.
좀 더 쉽게 쓸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