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쓰기를 작정하고 실천한 지 4일, 그리고 글을 공유하지 않은 지는 5일이 지났다. 21일 글쓰기의 절반 가량이 그렇게 지나갔다. 꾸준히 참여한 30명 중 제일 저조한 성적표다. 이쯤 되면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 사실 글은 매일 쓰고 있었다.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공유할 만큼의 글’이 되지 않았다고 여겨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그저 쓰고만 있던 것이 문제였다. (현재 작성 중인 이 글 외에도 두 개의 글이 마무리를 기다리고 있다. 시기상 이 문제를 먼저 고민해보고 싶어서 순서를 바꾼 것이다.)
분명 글로 생계를 책임져야 할 것도, 대단한 업적을 세울 것도 아닌데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매일 글쓰기에 참여한 것도 애초에 그런 욕심을 내려놓고, 좀 더 편안하고 간결하게 글을 써보고 싶어서였는데, 높은 내적 기준을 조정하지 않고 시작하다 보니 결국 탈이 나고 만 것이다. 물론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고, 이제껏 이 챌린지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유이자, 결심하고 나서까지 고민했던 이유였다. 이제껏 써왔던 글들이 평균적으로 10시간 남짓 걸렸음을 생각해 봤을 때, 나의 글쓰기 성향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을 개선해보려고 도전했던 것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찾아내긴 해야 했다.
그럼 한 번 생각해 보자. 내가 글을 공유해도 좋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하게, 어쩌면 유일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 였다. 아무리 주관적이고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일말의 깨달음이 있는지를 늘 염두하고 글을 써왔기 때문이다. 배움이 없다면 공유하지 않는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느껴왔던 중요한 부분은, 어떤 주제를 두고 고민을 이어가다 보면 반드시 새로운 깨달음이 더해진다는 점이었다. 주어지는 상황, 생각들이 그 주제를 중심으로 해석되기 때문인데 책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려운 내용을 두고 씨름하다 불현듯 찾아오는 깨달음의 순간이 주는 쾌감이 수십 시간을 들여가며 글을 쓰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고통을 감내한 끝에 찾아온 쾌감, 라캉식으로 주이상스 (고통 자체가 쾌감을 주는 마조히즘과는 다르다) 라고 할 수 있을 이 과정이 없었다면 글쓰기를 지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이 글 또한 나의 내밀한 부분 – 글쓰기의 의미 – 을 설명해 주고 있어 조금씩 만족감이 높아지는 중이다).
하지만 매일 글쓰기에서는 바로 이 확고한 신념 자체가 문제가 된다. 깨달음이 올 때까지 고민을 이어갈 수 있을 만한 시간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확보하려면 지난 4일간 했던 방식 (아이들을 재우고 새벽까지 글을 쓰고 공유해 결국 퍼지고 말았던) 을 반복하면 된다. 물론 그렇게 되면 매일 글쓰기는 결국 포기하게 될 테지만 말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일단은 여기에서 한 템포 끊고 가는 것도 적절한 방법이 될 듯싶다. 모든 내용을 글 하나에 욱여넣을 필요는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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