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시작한 독서모임에 대한 소회 (+ 짧은 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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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책읽기

올 들어 매우 뜻 깊은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7년 2월 이후, 정확히 6년 만에 독서모임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책 읽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속했던 단체마다 (회사, 교회 등) 모임을 꾸려오곤 했었지만, 결혼과 출산, 그리고 쓰기 위한 책읽기로 넘어가게 되면서 남은 시간을 오롯이 내면세계 탐구에 할애해 온 터였다. 게다가 올해는 책을 보다 통합적으로 분석해서 글쓰기를 발전시킬 목표까지 설정해둔 터라 모임 이야기를 하면서도 살짝 염려가 됐다. 물론 언젠가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또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공동체였기에 스치듯 넘어가고 말았지만.

이번 독서모임이 유독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은 모임의 구성원이 교회의 구역 식구분들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독서모임을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지난 몇 년동안 삶을 나누고 함께 격려해가며 마음을 나누던 사람들이었다는 뜻이다. 혼자가 아닌 부부 동반으로, 그것도 평소에 책 읽기를 즐겨하지 않았던 분들이 독서모임이라는 도전 방식을 ‘결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 학습에 있어서의 주체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런 결단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일상의 대화를 보다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친구는 불현듯 우리를 찾아왔다.

1. 모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

모임이 시작되기 전까지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갈수록 빛을 잃어가는 한국 기독교의 모습, 젊은 세대에게 외면 당할 수 밖에 없는 안일한 현실 인식과 실천, 매너리즘에 빠진 메시지 등 제자리 걸음 중인 교회에 비해 기술과 사회의 발전 속도는 하루가 멀다하고 가속화 되면서 차이를 벌려가는 상황이다. 정의가 어디있는지 모르겠고,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한 가운데 아노미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부를 향한 과도한 집착‘에만 열중하면서 이 땅의 ’희망없음‘을 온 몸으로 증언하고 있다. 무너진 시대정신을 다시 세울 언어가 간절히 필요한 상황임에도 세상을 바로 세울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우리가, 그리고 진리를 증언한다고 여기는 기독교가 마주하고 있는 냉혹한 현실이 아닐까. 이런 문제 의식이 수시로 공유되면서, 또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계셨던 집사님도 힘을 실어주시면서 한동안 우리 모임은 사실상 성토의 장이 되었다. 함께 대안을 찾아보는게 어떻겠냐는 구역장님의 호소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냉소가 어디로 향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사회가 무너지는 속도가 너무 가팔라 어쩔 줄 몰라하던 차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만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로 공명하게 되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등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고민하는 부분들을 책을 통해 찾아보면 어떨까?”

이 제안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22년 11월 13일이었다. 문제 해결의 중요한 방법으로 책이 거론된 것은 오랜 기간 책 전도사를 자처해 온 나와, 앞서 문제 의식을 공유하던 집사님 때문이었다. 나의 경우야 이미 꾸준히 글을 쓰면서 독서의 기쁨을 증언해 오던 터였고, 집사님도 이미 다른 곳에서 꾸준히 독서모임에 참여하며 다양한 책을 읽어오신 다독가셔서 의식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독서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물론 ”책을 읽어볼까?“라는 얘기가 나오자 모두들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으면서도 내심 부담스러운 듯한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랫동안 책을 손에 들지 않기도 했었고, 젊은 부부들이다 보니 가정마다 어린 자녀들이 하나 둘씩 있어 좀처럼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지, 다 읽으려고 할 필요도 없이 읽은 만큼만, 또는 각자 파트를 나눠 읽고 나누는 방법도 있다고 마음을 달래면서 우리의 모임은 시작될 수 있었다.

2. 모임에 대한 이야기들

사실 그 날은 ‘같이 책을 읽어보자’는 이야기 외에 아무 것도 정한 것이 없었다. 그저 서로가 읽고 싶은 책을 추천해 보자고 한게 전부였다.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는 책 위주로 추천을 하고, 언제 나눌지, 주기를 어떻게 할지 등을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하나씩 만들어갔다. 그렇게 ① 부담 없는 책으로, ② 투표를 통해, ③ 매 월 마지막 주일을 나눔일로 하는 작은 규칙이 세워졌고, 1월 8일 첫 번째 모임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많이들 염려했다시피 모두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사소한 이야깃거리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수다를 떨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책이었던 『어린이라는 세계』를 통해 우리는 아이를 대하는 저자의 섬세한 시각에 감탄하기도, 한편으로 단지 3자의 시선에만 머문 것에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하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엊그제 (1월 29일) 함께 나눴던 책 『하나님, 저 잘 살고 있나요?』는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켜 특히 흥미로웠다. ① 저자가 순수하게 결단하고 실천하는 모습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② 메시지 자체의 식상함, 즉 깊이가 너무 부족하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논쟁을 부추겼다. 하지만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던 분들도 말씀대로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신앙인의 태도만큼은 본받고 싶다는 평을 내려, 결국 2번, 그 ‘깊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 책의 가치가 그 정도까지 평가절하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남겨지게 되었다. 당시의 결론은, ① 저자가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부분은 분명히 있지만, ② (22쇄나 찍은 베스트셀러이자 크리스천투데이 2022년 추천도서라는 점에서) 기독교가 이 정도 수준에 머물러서는 세상을 의미있게 변화시킬 수 없음을, ③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 뿐 아니라, 절망에서 비롯된 깊은 고뇌와 이를 통한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 어우러졌을 때만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④ 하지만 한 사람이 양립된 입장을 순수하게 견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가 같은 가치관에 서서 다르게 대화하듯, 서로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해줘야 한다는 내용으로 대화는 마무리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나눔이 너무 좋아서, 이 기념비적인 시간을 꼭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일신의 소통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성장을 함께 이어가는 동반자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책을 끝까지 읽어본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는데, 듣고보니 정말 그랬다. 앞으로 계속해서 찾아올 결코 작지 않은 성취감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감동이 되고 용기를 불어넣어 줄지 기대가 된다. 우리가 다음에 함께 읽고 나눌 책은 『종교란 무엇인가』 이다. 개인적으로 분석할만한 의미로 다가온다면, 나만의 장점을 잘 살려 깊이있는 나눔을 이어가 보고 싶다.


이미지 출처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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