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다는 칭찬은 정말 하면 안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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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고래와 조련사

🔔 요약 : 문제는 ‘불성실한 칭찬’에 있다. 과도하거나 빈번하지 않게, 구체적으로 칭찬해 주자.

1. 똑똑하다는 칭찬에 대한 불편함

꽤 오랫동안 나를 불편하게 하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이를 두고 벌어지는 칭찬 릴레이가 그것인데, 야무지다, 똑부러진다, 똑똑하다 등 모든 부모들이 자주 사용할만한 표현들 중 유독 ‘똑똑하다’라는 칭찬이 마음에 걸렸다. 이 때문에 다른 식구들은 이 칭찬을 애용하는 편이었지만 나는 다른 식으로 바꿔서 – 오 잘했다, 어떻게 한거야? – 라는 식으로 아이의 설명을 유도하곤 했다. 생각해보면 대단하다고는 했을지언정 똑똑하다고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 표현이 불편했던 것은 지능, 곧 타고난 능력이 성공을 좌우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예전에 EBS의 ‘칭찬의 역효과‘ 라는 프로그램에서 지능 칭찬의 부작용을 보여준 것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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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학교란 무엇인가 6부, 칭찬의 역효과

아이들에게 지능에 대한 칭찬이 아닌 노력에 대한 칭찬 또는 인정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 방송의 요지였다. 똑똑하다는 칭찬은 아이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워줄 수 있으며, 기대만큼 하지 못했을 경우 지능이 뛰어나지 못함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컨닝을 하거나, 어렵거나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들이 실험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실수와 실패를 편안하게 여기고 기꺼이 도전할 수 있도록 칭찬을 하더라도 노력한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거나, 심지어 굳이 애써서 칭찬하지 않아도 됨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아이는 마음으로 존중받는다고 느낄 때 바람직한 행동을 하게 되니 관심과 믿음만 보여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똑똑하다는 칭찬에 대한 불편함은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똑똑하다는 표현 자체가 결코 나쁜 것일리는 없다. 단지 두뇌 회전이 빠르다, 아는게 많다 등 사고 활동이 유달리 뛰어난 사람을 특징짓는 하나의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표현이 이처럼 금기시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똑똑하다는 표현은 아이에게 정녕 ‘악’인 걸까?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이 표현을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었을까? 어쩌면 그 안에 우리의 왜곡된 욕망이 담겨있기 때문은 아닐까? 달리 말해 그 표현이 문제가 되는 것은 오늘날 어느 때보다 가치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남용’ 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라는 탈을 쓴 왜곡된 욕망을 통해서 말이다.

2. 똑똑하다는 칭찬은 왜 금기시 되어야 하는 걸까?

2.1. 똑똑해야 성공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있기 때문일까?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잘한다는 것은 똑똑하다라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잘 알아야만 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두뇌의 능력이라는 것은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오늘날 이뤄진 인간의 성공과 관련한 수많은 연구들은 장애가 있는 수준이 아니라면 지능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 가치를 낮게 평가한다. ‘끈기있는 노력’이라는 후천적 재능이 이끄는 성공의 새로운 방정식이 곳곳에서 열매를 거두는 모습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더욱 빈번하게 목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점을 알고 있고 이 때문에 옛날처럼 머리가 좋아야 성공한다는 믿음은 많이 옅어진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지나치게 노력만을 강조해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오늘날 부각되고 있는 문제라 할 수 있을터다. 이렇게 처음 떠올랐던 내용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나름 오랜 시간을 고민해 봤지만, 지능의 성공 방정식이라는 믿음은 똑똑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면 안되는 적절한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2.2. 똑똑함이라는 단어가 편향적인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한 가지 의미만 담고 있어 다른 가치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은 EBS 프로그램의 핵심 내용이다. 하지만 똑똑하다는 칭찬이 지능에 대한 것이라는 것은 사실일까? 사전에서는 ‘사리에 밝고 총명하다’라고 되어 있지 ‘머리가 좋다’라는 식의 설명은 나와 있지 않았다. 물론 머리가 좋다고 이해해도 크게 무리가 가는 해석은 아니라는 점이 똑똑함을 지능과 연관짓게한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총명함이라는 것이 지능 뿐 아니라 지식에 대한 소화없이 이뤄질 수 없다는 점에서 봤을 때 이는 분명 지능 + 노력 + 지식에 대한 설명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해하기에, 나 또한 사전을 찾아보기 전에는 사실상 ‘지능’에 대한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기분이 좀 이상했다. 어쨌거나 똑똑하다는 것은 분명 지능이 높다는 것과는 사실상 다른 개념인데 이를 한 가지 뜻으로만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었던 것은 명백한 오해라 할 수 있었고, 본래의 뜻은 그렇지 않았지만 한 가지 가치만 전달되는 것은 분명 문제라고 볼 수 있을만한 부분이었다.

2.3. 문제는 남용되고 있는 것 자체이다.

하지만 여전히 개운치 않았다. 앞서 생각했던 ① 성공을 이끄는 지능이라는 잘못된 믿음도, ② 지능만을 부각시키는 표현이기 때문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긴 해도 만족스러운 답변이 되지는 못했다. 문제의 실마리를 푼 힌트는 다시 ‘칭찬의 역효과’에 있었다. 영상 속에는 4시간 동안 공원에서 다양한 부모와 아이들을 관찰하는 모습이 나온다. 아이들이 하는 활동에 대해 칭찬을 해달라는 것이 유일한 요구사항이었다. 실험에 참여한 부모들은 잘한다, 최고, 똑똑하다 외의 칭찬은 하지 못했고, 생각보다 칭찬하는 것이 어렵다며 어떻게 해야되는 거냐고 되묻곤 했다.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자 하는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유명한 책은 칭찬의 중요성을 중요하게 상기시켜준 반면에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으로까지 이끌진 못했다. (물론 책이 잘못 됐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간절하나 표현이 따라주지 못하는 심언불일치 상태가 바로 부모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자녀들의 동기부여를 위해 익숙한 방법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결론은 (한국식 교육으로 인해) 본능적으로 정답을 찾는 우리 사회 분위기와 맥을 같이한다는 생각으로 확장 되었는데, 한 가지 방법만 고수할 때의 문제점이라는 것은 그것이 금세 형식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해진 틀이라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우리의 욕망을 위해 계속해서 틈을 열어주고 여지를 두어 지속적으로 새로움이 유입되게 만드는 것, 그것은 정답을 추구하는 것이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 꼭 찾아나갔으면 하는 삶의 풍성함이었다. 결국 ‘남용’된다는 것은 결국 그것이 동어반복, 즉 잔소리와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과정에 대한 칭찬은 언제나 새롭다. 그것이 아무리 같은 방향을 지시한다 하더라도 아이가 경험하고 있는 순간은 늘 새롭기 때문이다.

3. 담백한 격려가 필요할 때

이제서야 어떤 것 (지능 vs 노력) 을 칭찬했느냐가 아니라 구체적이지 않으면서도 과도하기만 한 ‘불성실한’ 칭찬이 오히려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점이 명확하게 이해됐다. 담백한 메시지가 아닌 기대가 듬뿍 담긴 불투명한 메시지의 반복이 아이를 알 수 없는 불안으로 몰아 넣었으며, 이러한 무의식적 요구 때문에 아이 또한 필요 이상의 부담을 느끼게 됐고 이를 행동화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 또한 분명하다. 과도하거나 빈번하지 않게, 구체적으로 칭찬해주면 되는 것이다.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연약하거나 어리석지만은 않다. 오히려 조급함으로 인해 아이가 누릴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박탈하지 않도록 아이에게 선택권을 넘겨줘 보는 것은 어떨까? 덕분에 나도 이제는 그 불편함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재능에 대한 칭찬이 됐든, 노력에 대한 칭찬이 됐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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