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부지런히 집에 돌아와 장난꾸러기 아이와 잠깐이나마 콩순이 아이스크림도 먹고, 찰흙도 갖고 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곧 잠잘 시간이 되어 칫솔을 쥐어주고 콩순이 치카송을 틀어주니 부리나케 핸드폰으로 달려왔지만 노래만 나온다는 것을 확인했을 따름이었다. 다시 양치에 집중하는 모습에 안심이 된 나는 장모님으로부터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사진과 영상을 함께 보았다. 어제 처음 등원해 아직은 어색한 곳이었지만 오늘은 레크레이션 선생님과 체육활동도 하면서 아이들과 곧잘 어울려 노는 것 같았다. 선생님 중 한 분은 아이가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다 왔냐고 물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영상을 보니 정말 자신감 있고, 활동적으로 참여해 그렇게 봐주실만 해 보였다. 아무래도 평소 계단 오르기나 (한 번 꽂히면 3~40분을 반복해서 오르내린다) 집에서 아빠 손 잡고 방방타기 등 아이가 관심을 갖는 놀이를 열심히 지원해 준 덕분 아니었을까 싶어 잠시나마 뿌듯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잠시 한 눈을 팔다 아이에게 돌아갔더니 콩순이의 목소리는 쥐도 새도 모르게 영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헐……. 순간 이걸 어떻게 되찾아오나 싶어 고민하면서 핸드폰에 손을 갖다 대자 잽싸게 뿌리쳤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영상이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이가 보니까 절제를 잘하더라. 아침에도 콩순이 보다가 이것만 보고 끄자 했더니 ‘응’하고 대답하고는 끝나니까 ‘안녕’하고 껐어. 애가 결단력이 있더라구.”
맞다. 어느 정도 보고나서 끄자고 이야기하면 크게 반발하지 않고 손을 흔들며 콩순이와 작별하곤 했던 아이다. 하지만 지금은 본지 5분도 안됐기 때문에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아빠 이거 가져가면 안돼?”
(절레절레)
“그럼 이것만 보고 아빠 주세요.”
“응~”
그렇게 대답하고는 곧 다른 영상으로 바꿔 버린다. 그럼 무한 루프잖아. 조급해진 나는 아이에게 다시 한 번 물어봤다.
“아빠 이거 써야 되는데 어떡하지? 아빠 돌려주면 안될까?”
그러자 갑자기 아무 망설임도 없이 핸드폰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넘겨줘서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고마움의 표현은 잊지 않았다.
“우와, 대단하다. 고마워요~”
외할머니도 대견하다는 듯 ‘최고!’를 연발하셨다.
참 놀라운 일이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기꺼이 내줄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사실 처음에는 별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머리를 식히는 가운데 떠올랐던 것은 결국 주는 만큼 받는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어리다 할지라도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해주고자 했던 그간의 노력들에 아이가 반응해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행위 뿐만 아니라 언어적, 무의식적 폭력에 대해서도 매우 민감하게 생각해 왔기에, 우리 가족은 그동안 아이의 감정에 발맞추는 것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아이가 원하는 것과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에 대해 최대한 인내하고, 들어주고, 때론 설명해주면서, 이해하든 못하든 언제든 반복해 줄 요량으로 말이다. 그렇게 아이는 자기의 즐거움보다 엄마, 아빠의 부탁을 더욱 가치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을 만큼 우리를 신뢰하고 또 존중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맛에 아이를 키우는구나 싶은 밤이었다.
- 이미지 출처 : 영실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