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서 하원할 때 원장 선생님이 우리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아이들을 이끌며 놀고, 낮잠을 잘 땐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깨우다 혼날 것 (제지를 당할 것) 같으면 애교를 부리면서 웃음을 유발해 미워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염려되는 부분 중 하나가 마냥 받아줬을 때 버릇없는 아이로 크는 것일텐데, 스스로의 한계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을 (현재로써는) 잘 설정한 듯 싶었기 때문이다.
1. 공격성에 대한 염려
우리 부부도 이 문제 때문에 한동안 티격태격 해왔다. 아이의 공격성을 마냥 긍정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내와 아직은 아무 것도 몰라 마음껏 표현할 뿐인, 어른들이 느낄 때의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태도가 때가 되면 내면화 되어 자신의 삶을 추동하는 매우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내 입장의 시차로 인한 갈등이었다. 한마디로 ‘알려주자’와 ‘기다려주자’의 입장차였던 것으로 고맙게도 아내는 일단 내 입장에 공감해 주었으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잘못된, 때론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행동을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최대한 기다려 주는 가운데서도, 그릇된 태도를 보일 경우 그런 행동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반복적으로 설명해 주는 인내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거듭된 설명은 그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어떤 행위가 엄마와 아빠의 설득 (잔소리) 을 유발하는지를,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아이가 행위에 앞서, 또는 당돌하게도 행위를 하는 가운데 자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 아빠, 이렇게 하면 시끄러워?”
“엄마 아빠, 이렇게 하면 아파?”
그래도 엄마와 아빠가 제지하는 이유를 알기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내려 놓는게 아쉽기는 할지언정 분노와 투정을 유발하지는 않았던 듯 싶다. 불안을 유발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현상, 곧 설명되지 않은 이유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증상을 형성한다는 것은 정신분석이 밝혀낸 중요한 병인 해석으로,
왜 우리는 그 장면이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못한 어린아이에 대해 필연적으로 외상을 야기한다고 말하는가?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못했으므로 지각은 심리 장치 속에서 혹은 심리 장치를 통해 번역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장면으로부터 유래하는 하나의 잔여, 문자, 표식(indice) 혹은 기호가 남아 있다. 그것은 나중에 번역될 수 있지만 당장은 번역될 수 없었으며 “수수께끼 같은 지표로서” 혹은 “그 자체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메시지로서” 저장되었다. 환상은 향유와의 만남과 주체 사이에 자신의 스크린을 설치한다.
드니즈 라쇼, <강박증 : 의무의 감옥> pp. 218 ~ 219
강박증의 경우 외상을 야기할 만큼의 강렬한 사건이 (아이의 입장에서) 이해 (번역) 되지 않은 채 어떤 이미지로 남아, 끊임없이 주체를 괴롭히는 유령 (환상)이 되는 것을 설명한 내용이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아이가 외상의 흔적 (포기할 줄 모름) 을 간직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배경으로 인해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표현과 행동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가정에서의 경험이 어린이집에서도 자연히 발현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 대장 노릇의 의미
대장 노릇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이를 앞장서서 해나가는 것을 일컬을 것이다. 소위 리더라고 하는 이런 모습은 모든 부모가 원하는 자녀상이 아닐까. 하지만 그와 같은 삶의 태도는 어느날 갑자기 형성되는게 결코 아닐 것이다. 어딘가에서 먼저, 또 반드시 이런 경험을 충분히 해야만 다른 곳에서도 자연스레 표현되고, 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스스로 강화시켜 나갈 것이다. 그곳이 사랑으로 결속된 가정 안에서임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어린 시절 경험한 충만한 만족감은 이후 경험할 좌절을 통해 영원히 상실된 대상으로 상징적으로 (환상 속에서) 내면화 된다. 즉, 주체는 상실을 상징화하는 것을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상실되지 않은 주체의 예는 정신병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상실에 앞서 중요한 것은 상실한 대상이 ‘얼마나 내게 가치있는 것인가’가 핵심이 될 터다. 되찾을 이유가 없는 대상을 향해서는 이를 회복하기 위한 욕망이 나올 수 없을 (되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부부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 완벽할 순 없기에 아이의 마음 속에서 언제까지고 꺼지지 않는 에덴으로 기억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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