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개월] 동생에 대한 질투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이유

readelight

동생을 안은 언니

두 달 전 (8/7) 에 있었던 일이다. 아이들과 놀아달라는 아내의 요청에 며칠간 우리집에 묵었던 동생(처남)이 아내가 첫째와 둘째를 대할 때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잠깐 같이 계셨던 장모님도 같은 의견을 주셨다고 해, 며칠 보지도 않은 동생이 그렇게 느낄 정도면 얼마나 심했다는 거냐며 반성하는 눈치였다.

나는 민망해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른 사람이 그렇게 느끼는 건 당연하다고 답해 주었다. 차이에 따른 차등 대우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르게 대하는 것을 차별로 느끼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지, 나이 차가 4년이 넘게 나는 두 아이를 동일한 방식으로 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물론 바라만 봐도 웃음이 절로 나는 동생만큼은 아니더라도 (한창 우리 속을 긁는) 첫째를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줘야겠다는 다짐이라는 점에서는 공감이 갔다. 그래도 지금까지 첫째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해 왔던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격려의 반응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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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으로 중무장한 둘째

1. 다르게 대하는 것의 어려움

당연한 얘기지만, 태어난지 4개월밖에 되지 않은 둘째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또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없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것을 허용해 줄 수 있다. 몸이 힘들어서 그렇지 오히려 대하기는 한결 수월한 셈인데,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할 언니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일상에서의 옳고 그름을 어느 정도 분간할 수 있고,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도 알고 있어, 이에 걸맞는 행동을 기대하고 또 요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충동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지만, 우리도 그로 인해 불편해진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식으로 차등 대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설명을 하더라도 아이 입장에서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부모의 관심을 빼앗겼다는 상실감에, 신체적으로도 우월 (아기만의 귀여움) 한 데다, 시시 때때로 간섭받는 자기와 달리 마냥 받아주는 존재를 곁에 두고 봐야 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순 없지만, 이런 조건에서라면 질투를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사람 마음이라는 게 아무리 잘해줘도 한 번 서운하게 한 것을 더 분명하게 기억하다 보니 (서글프게도 잘해준 것은 당연한 것이 된다), 아무리 첫째를 먼저 챙겨줘도 한동안 돌아왔던 반응은 “동생만 예뻐하고!” 였다. 불안한 아이의 입장에서 차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좀처럼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아이의 마음을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잔소리 하면서, 정 안될 땐 화를 내면서도 엄마, 아빠가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우리 부부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였다.

2.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

그래도 언제부턴가 이런 엄마, 아빠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동생만 예뻐한다고 투정 부리는 경우가 부쩍 줄어 들었다. 덕분에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시 나는 동생처럼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 포기하게 된 건 아니었을까하고 말이다. 자기가 아무리 아기처럼 행동해도 이제는 동생과 같은 반응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상실감에 압도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불만에 찬 아이의 행동을 최대한 받아주려 했던 우리의 노력을 아이가 조금이나마 인정해주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기처럼 행동해도 사랑받을 수 없어가 아니라 굳이 아기처럼 행동하지 않아도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동생과의 동일시를 포기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는 뜻에서 말이다.

‘엄마, 아빠는 동생만 예뻐해! 근데 내가 아기처럼 굴면 동생처럼 나를 다시 예뻐해 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너무 속상해. 하지만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도 여전히 나를 사랑해 주긴 하는 것 같아. 오히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기뻐해주고 칭찬해 줘서 신나니깐,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자랑해야지!’

소설이긴 하지만 동생이 태어났던 4월 전후로 시작된 첫째의 심경 변화를 상상해 보자면 아마 이런 식이지 않았을까 싶다. 내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 덕분에, 이제는 조금 더 동생에게 관심을 보이더라도 예전처럼 불만을 표시하거나 아기 흉내 (퇴행) 를 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부모를 빼앗겼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동생을 경쟁 상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동생을 좀 더 편안하게 예뻐해 주기 시작한 게 비교적 최근 일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아이 내면에서 무언가 의미있는 변화가 생긴 것은 분명해 보였다. 물론 앞으로 둘째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언니의 물건을 망가뜨리기라도 하면 새로운 라운드가 펼쳐지겠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첫 고비는 어느 정도 넘긴 셈이다.

3. 친절한 엄격함의 교훈

분명 첫째가 동생을 질투하고, 아기 흉내를 냈던 것은 자신을 동생처럼 (아니, 보다 더) 사랑해달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요구였다. ‘저렇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구나’ ‘라는 아이 나름의 판단에 따른 구애 행동 (노력) 이었던 것이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는 힘없이 주저앉는 증상도 있었는데 (참고 글 : [55개월] 동생을 질투하는 언니의 마음), 현상만 다를 뿐 본질은 동일하다는 점에서 어떻게 받아줘야 할지 무척 난감했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마냥 받아줘서) 증상을 해결책으로 삼게 만들 수도, (엄하게 가르쳐) 사랑의 요구에 대한 거절로 상처를 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이의 마음을 물으며 기다려주는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데, 지나고 보니 이번 경우에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었고, 아이가 거기에 응답해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한 엄격함, 언젠가 책에서 접한 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표현이다. 풀어서 얘기하면 ‘너의 행동이 엄마, 아빠 입장에서는 적절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서 마냥 받아줄 수는 없지만, 분명 너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기다리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해 볼게’ 정도가 될 수 있겠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상황에서의 제스처이긴 하지만, 이런 기준 덕분에 위기의 순간을 그나마 잘 넘어갈 수 (반성도..) 있었던 듯 싶다. 그렇게 아이는 부모의 따뜻한 시선을 느끼면서 자신의 원망을 마음껏 쏟아내고, 자신의 과함 또는 불필요함을 깨달은 뒤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자신만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아이의 부당한 (?) 요구와 원망을 참아내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이를 감당해 냈을 때 찾아올 가족 간의 신뢰와 행복이 그 괴로움을 덮고도 남음이 있을 거라 믿기에 오늘도 어김없이 글을 통해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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