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아이 방은 집에서 가장 들어가기 싫은 곳 중 하나였다. 최근에 이사를 해 벙커 침대도 놔주고, 베란다도 확장해서 공간 활용도도 높여주었지만, 넘쳐나는 짐들 때문에 아무리 정리를 해도 어수선해 보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책상, 책장, 옷장 할 것 없이 수북이 쌓인 잡동사니들은 새로 들인 침대 말고는 눈길을 둘만한 (두고 싶은) 곳을 찾기 어렵게 만들었다. 게다가 아이를 재울 때만 같이 침대에 올라가 책만 읽어주고 나오면 되니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기도 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우리가 나름대로 정리를 해놔도, 얼마 지나지 않아 책상 위에는 아이가 사용한 온갖 도구들이 잔뜩 쌓여 마치 쓰레기장처럼 변해버리기 일쑤였다. 자연히 아이 방에 들어갈 때마다 표정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고, 안 그래도 둘째를 돌보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아내는 첫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 소리가 듣기 싫은 아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딴청을 부려 엄마의 화를 돋우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내심 불편했지만, 아이 짐이 너무 많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벙커 밑에도, 따로 빼둔 선반 아래에도 아이 짐을 욱여넣을 공간은 없었다. 그나마 붙박이 장에 최대한 넣어둔 것이 이 정도였으니 체념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의 방을 제대로 치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한 주말 오후, 집안의 다른 공간들은 이미 정리가 된 상태에서 아이 방을 지나치다 불현듯 청소에 대한 의지가 솟구쳤던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은 좋은 것을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그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깨끗한 상태의 방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아이에게 잘 정리해보라고 아무리 다그쳐 봤자, 짐으로 뒤덮인 공간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정리했을 때의 모습을 그려볼수도, 그리고 그 상태가 얼마나 쾌적한지도 알지 못하는 7살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애초에 별로 없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그동안 아이가 받아왔을 스트레스가 떠오르면서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 입장에서의 뜬금없는 아이 방 대청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뒤죽박죽 섞여있는 아이의 물건들을 모두 꺼내서 재분류해 담고,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것들은 과감히 버리면서 그날 저녁 늦게까지 이어갔다. 비록 하루 만에 정리한 방이라 완벽하게 깨끗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게 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이는 “너무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날 이후로 아이의 책상은 더 이상 이전처럼 어지럽혀지지 않았다. 이제는 자기 물건들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도, 그리고 깨끗한 공간에서 지내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아이가 색종이를 접거나 장난감을 갖고 논 뒤 자리를 다시 정리하고는 뿌듯해 하며 자랑하는 모습을 보니 어느 정도는 그런 듯 싶었다. (참고로 오늘 밤에도 동일하게 자랑을 해 글로 남기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를 지적하는 태도가 아니라 먼저 나서서 대안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넌 왜 이걸 안하니?!’ 가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해보는 건 어떨까?’ 라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말이다. 물론 애초에 몰랐던 내용이 아니었음에도 어떤 상황에서는 전혀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할 듯 싶다.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많은 경우, 내가 직접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의 동의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한 발 떨어져 볼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우리는 언제든 잔소리라는 쉬운 선택에 머무를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 아이의 변화를 통해 깨닫게 된 작지만 소중한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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