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무렵의 일이다. 언제부턴가 첫째가 눈을 빠르게 깜박여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 빈도가 갈수록 높아졌다. 거의 초 단위, 어쩌면 그보다 더 빠르게 두 눈을 반복적으로 깜박이는 통에 바라보고 있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어떤 느낌일까 싶어 따라해 봤더니 금세 눈 근육이 뻣뻣해져 1분도 지속하기 힘들었다. 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도 금방 알아채겠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기 저기서 제보가 들어왔다. 유치원 선생님이, 상담 선생님이, 함께 놀던 친구가, 다른 가족들도 보고는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거나 우리에게 알려왔던 것.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이에게 눈을 자꾸 깜박이는 이유에 대해, 또 계속하면 힘들지 않느냐고도 물어봤지만 자기도 모르게 반복되는 증상을 아이가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라고 대답해 주긴 했는데 이해하지 못했다).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우리 부부는 두어 차례 물어보고는 일단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그리고 증상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척 하)기로 했다. 금지가 증상 해결에 있어서 최악의 방법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 증상의 인정
아이의 증상을 며칠동안 지켜보던 엄마는 ‘틱’이라며 처음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까지 틱을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과격한 행동’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강한 거부감이 들었는데, 내용을 찾아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신체 일부분을 빠르게 움직이는 이상 행동이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함…. 전자를 운동 틱(근육 틱), 후자를 음성 틱이라고 하는데, 이 두 가지의 틱 증상이 모두 나타나면서 전체 유병기간이 1년을 넘는 것을 뚜렛병(Tourette’s Disorder)이라고 한다. … 근육 틱과 음성 틱이 있으며 다음과 같이 각각 단순형과 복합형으로 나누어진다.
단순 근육 틱: 눈 깜박거리기, 얼굴 찡그리기, 머리 흔들기, 입 내밀기, 어깨 들썩이기
복합 근육 틱: 자신을 때리기, 제자리에서 뛰어오르기, 다른 사람이나 물건을 만지기, 물건 던지기, 손 냄새 맡기, 남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기, 자신의 성기부위 만지기, 외설적인 행동하기…틱은 소아에서는 매우 흔한 질병이다. 전체 아동의 10~20%가 일시적인 틱을 나타낼 수 있는데, 증상은 7~11세에 가장 많이 나타난다.
틱 장애, 서울대학교의학병원 [1]
심지어 5월 중순 무렵부터는 깜박임과 별개로 인상을 찡그리는 동작까지 추가 되었다. 단순한 깜박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가 아이를 더욱 강하게 사로잡았던 것이다. 아무리 흔한 증상이라 하더라도, 만 5세에 불과한 아이가 경험하기에는 너무 이른게 아닐까? 어쩌다 이런 상황까지 가게 됐는지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2. 고통의 이유
라캉 정신분석에서는 증상을 일종의 최후의 보루, 그러니까 이해할 수 없고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우회적인 호소로 본다. 『라깡과 아동 정신분석』에서 정신적 고통이 다양한 신체 증상을 형성하는 사례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참고글 : 아이의 증상이 부모의 거울반응인 이유). 기본적으로 이런 관점에 동의하는 입장에서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아이 고통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였을 우리 부부의 태도를 돌이켜 보는 것에 있었다.
2.1. 기대와 실망 사이 (당시 있었던 일들)
사실 올해는 육아일기를 쓰는 것에 회의감이 밀려올 정도로 아이와의 갈등이 심해졌다. 한국 나이로 7살, 말을 지독하게 듣지 않고, 일부러 화를 돋우는 상황을 빈번하게 경험하다 보니 안부를 묻는 지인에게 ‘만성 분노 상태’라고 답하는게 자연스러울 지경이었다. 특히 이제 갓 돌이 지난 동생의 행동 (언니의 물건을 만지거나 때리는 등) 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일 때나, 여러 번 불러도 들은 척도 하지 않을 때, 자기도 화난다고 해서는 안될 말을 함부로 내뱉을 때 밀려오는 분노를 좀처럼 감당하기 어려웠다.
내년에는 ‘초등학생이 될 아이’라는 생각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주의를 주거나 알려주려고 하는 것도 자기만 혼낸다고 받아들이고, 특히 어른들에게 부끄럽다며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거나 반말을 하는 태도들은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꼭 고쳐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인사하면 어른들이 기뻐해 주신다며 기대도 심어주고, 기다려주기도 했지만 아이는 태도를 쉽사리 바꿔주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한 번만 잘해보자며 목표로도 제시해 보고, 주의를 주거나 으름장을 놓는 식으로 처음 의도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이 때문에 평소 아이 둘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내도 자주 한계 상태에 빠졌다. 특히 약속 시간에 맞춰 준비시키는 걸 가장 힘들어 했는데, 그 무렵에는 퇴근하고 들어왔더니 둘째를 데리고는 밖으로 나가버리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기도 했다. 씻고 잘 준비를 하라고 해도 빈둥거리며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첫째에게 차라리 자기가 나가겠다고 하며 집을 나선 것이다. 물론 아이는 울고 있었지만, 아내와 마찬가지로 감정이 별로 좋지 않았던 나도 아이를 달래주기 보다 퉁명스럽게 대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아이는 엄마를 적극적으로 막아서거나 붙잡지 않아 크게 충격받진 않았나보다 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한밤 중에 갑자기 울면서 “엄마 이리와!”라고 외치고 다시 잠드는 모습을 보면서 드러나지 않았던 아이의 아픔을 너무 가볍게 여긴게 아닌가 싶어 미안하기도 했다. (다음날 물어보니 엄마를 잃어버리는 꿈을 꿨다고…)
2.2. 뜻 밖의 정치
그 때는 마침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평이 돌았던 20대 대선 기간이기도 했다. 이미 대선 후보가 되기 한참 전부터 매우 부적절한 인물 – 판사 불법 사찰, 불법적인 항명에 따른 징계 처분, 대장동 사업 불법 대출 봐주기 의혹, 장모, 배우자의 주가 조작 연루, 배우자 허위 이력, 논문 표절 등 – 이라고 생각해왔던 윤석열 (현 대통령) 의 높은 지지도가 크게 걱정됐던 상황이었다. 이런 염려를 분노로 바꿨던 것은 그런 인물을 단지 ‘무능한 민주당은 안되기 때문에’ 뽑아야겠다는 엄마와,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해 줘야 한다는 동생의 한가로워 보이는 듯한 태도였다.
물론 동생은 당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지도 않았고, 나 또한 입장 존중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고를 눈 앞에 두고 서 있는 아이를 존중한답시고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것처럼, 국내외적으로 매우 위태로운 상태라는 생각이 마음의 여유를 가로막았다. 물론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앞서다보니 설득력보다는 거부감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지만, 반성하지도 않을 민주 정권 심판으로 인해 무려 5년 동안이나 국민들이 고통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취임 3개월 만에 뜬금없는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과 무책임한 강남 침수 사태 대응이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끝나지 않는 러우 전쟁과 치솟는 물가, 이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과 경제 블록화,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는 환경 문제와 고장 난 자본주의, 그리고 전례 없는 기술발전 속도가 취약계층의 생존부터 가파르게 위협해 나가고 있다. 출생률이 아니라 생존률 자체가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정부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질텐데, 전 정권 타도만을 외치며 등장한 인물이 과연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정말 매일 매일이 한숨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대통령에 당선되기 무섭게 오랜 기간 구축해 온 시스템조차 너무나 손쉽게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와서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고 한들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일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두고 국민들은 또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하나?
갑자기 정치 얘기를 길게 꺼내 불편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분명 아이와의 갈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요소임에도 글을 쓰기 전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아무래도 외부로 공유하는 글에서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을 자제해 왔다보니, 무의식적으로 글감에서 배제했던게 아니었을까 싶다.
3. 증상의 회복
사실 아이의 증상을 처음 해석할 때는 억울한 마음이 컸다. 평생동안 영향을 미친다는 만 3세까지의 전능 경험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야속하게도 아이는 이런 대우가 충분치 못하다고 불평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냐 오냐 하다가 버릇된다고, 한껏 커진 자아가 절제를 배우지 못한 채 요구만 늘어놓는 일종의 신경증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연관된 문제를 찬찬히 정리해 보니 ‘아이도 많이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겉으로 요구하지 않았을 뿐, 어쩔 수 없는 부모의 함정 – 초등학생이 될거니까, 언니가 되었으니까라는 기대 – 에 빠졌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이 입장에서는 동생에게 함부로 대할 때 개입하는 부모로 인해 눈치를 보게 된 것과, 때때로 급발진하는 내 태도로 인한 놀람을 해결하기 위해 눈을 감는 방법 (보지 않기) 을 선택한 게 아니었을까. 빠르게 깜박이는 만큼, 그리고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만큼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아 함께하지 못하고 감정에 치우친 반응을 자주 보인 것이 못내 미안했다.
유아에서 어린이로 넘어가는 과정을 쉬이 기다려주지 못했던 것, 합리성에 대한 나의 강한 믿음은 결국 믿음의 크기 만큼이나 그렇지 못한 대상을 향한 분노로 되돌아 왔다. 정의가 가출한 사회에 대한 분노도, 가족에 대한 분노도, 질서를 따르지 않는 아이에 대한 분노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했던 다짐 – 아이에게 부담이 될만한 요구를 줄이고, 증상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기 – 을 지켰다는 점이었다. 비록 원치 않는 선거 결과로 인한 답답함은 여전하지만, 감정이 아이에게 전이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한 덕분인지 눈을 찡그리는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고, 7월을 지나는 시점에는 다행히 이전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결코 쉽진 않겠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과도한 요구에 압도되지는 않았는지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일 것을 다짐해 본다.
[1] : 틱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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