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과 아편전쟁을 통해 본 지식의 중요성, 『본격 한중일 세계사 – 01. 서세동점의 시작』, 굽시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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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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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올라오는 다양한 뉴스들을 보다보면 어느 순간 시선이 머물게 되는 때가 있다. 각 국가의 옷을 입은 캐릭터들의 뼈 있는 만담 대잔치에 공감이 가 어느새 그의 웹툰이 눈에 띌 때면 빠짐없이 읽게 됐던, 오늘 리뷰할 책의 저자인 ‘굽시니스트’가 그 주인공이다. 어렵고 복잡한 국제 정세의 포인트를 짚어 이를 유머러스하게 풀어 전달할 줄 아는 작가라는 기억과, 관심있는 나라들의 역사에 대한 궁금증까지 더해져 망설임없이 서평용 책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만화다보니 글로 풀어내기 까다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살짝 들긴 했으나 저자와 내용에 대한 호기심은 이를 극복하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한중일을 중심으로 벌어진 근현대사의 서막을 알리는 첫 번째 책이다. 일본으로 인해 뒤엉키게 된 세 나라의 역사를 탐구 주제로 삼았기에 제한된 범주 내에서 풀어낸 역사 안내서라고 할 수 있겠다. 간혹 역사를 전하는 방식에 있어 그만의 유머러스함이 다소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의 핵심을 간명하게 표현하는 그의 능력에 흠뻑 빠져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어나갈 수 있었다. 서세동점의 시작, 즉 ‘서양 세력의 동양 지배’의 출발점에 서서 각 나라의 성장 과정을 거시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현재의 정세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책은 먼저 19세기 이전 중국사, 일본사를 훑어본 다음 산업혁명의 중요한 계기가 된 면직물의 발달사, 그리고 무역 수지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발한 아편전쟁을 상세히 소개해 영국발 제국주의의 신호탄을 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1. 산업혁명의 중요한 계기가 된 면직물

먼저 훑어본 19세기 이전의 중국사와, 생각해보니 사실상 전혀 모르고 있었던 일본사에서는 이렇다하게 와닿는 부분은 없었다. 아마도 큼직한 사건들을 한 두 컷 정도로 압축하고 넘어가다 보니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 어려웠기 때문인 듯 싶다. 하지만 이어서 등장한 ‘면직물이 촉발한 산업혁명’에 대한 내용은 부쩍 관심이 갔다. 책의 대미를 장식한, 구체적이고도 흥미진진한 아편전쟁 이야기는 책을 통해 직접 읽어보시길 권해 드리면서 영국이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하는 모습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처음에는 가죽옷만 걸치고 다녔던 우리의 조상들은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식물 섬유(마)를 실로 꼬아 가로 세로로 엮어서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한다. 이후 양털을 사용한 모직물(1만 1천년 전), 누에고치를 통한 견직물(비단, 기원전 6,000 ~ 3,000년) 이후 마침내 인도 북부에서 면화 재배를 통한 면직물(기원전 3,000년) 시대를 열게 된다. 풍토와 맞지 않아 중세 시대까지도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유럽, 그 중에서도 오직 모직 산업 보호에만 열을 올렸던 영국은 17, 18세기 인도산 면직물을 접하게 되면서 그 편리함에 매료되게 된다. 하지만 오랜 기간 보호해왔던 (권력층이 향유하던) 모직 산업이 붕괴될 위험에 처하자 면직물 수입을 금지하게 되고, 업자들은 면화만을 수입해 직접 국산 면직물을 제작하게 되는데 생산 효율이 낮다보니 풍부한 인력을 늘려서 대처할 수 있었던 인도, 중국 등과는 달리 도구를 개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다. 면직물을 짜는 기계인 방직기와 그 생산량에 맞추기 위해 실 뽑는 기계인 방적기, 이들의 지속적인 개량과 수력을 통한 자동화, 증기기관, 제련 기술의 발달 등 다양한 분야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폭발적으로 성장해 동양과의 차이를 극적으로 벌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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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년, 직조 창고의 로버츠 베틀 [1]

이러한 특이점이 단순히 척박한 환경에서 우연히 좋은 선택을 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이미 종교, 철학, 정치, 과학 등 정신세계를 뒷받침하는 사상체계가 오랜 기간 견고하게 쌓여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중국과의 무역수지 적자(귀족층을 중심으로 한 차, 도자기의 수입 대비 영국이 자랑하는 면직물은 베틀로 생산하는 중국산보다 비쌌다고 함)를 극복하지 못해 힘으로 이를 상쇄시키는 제국주의적 움직임을 시작하게 된다.

2. 결국 아는 만큼 보인다

종종 만화로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을 저자의 친필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파트가 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타 문화, 제도를 내 것으로 수용하는 능력이었다. 중국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뿌리내려온 관료제, 과거 제도는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제도였다고 한다. 당시까지도 권력자들이 주먹구구식으로 나라를 경영해 왔던 유럽은 이를 적극 받아들여 경영의 효율성(표준 관료제 도입)과 공정성(영국 동인도 회사에서 최초로 입사시험 통한 직원공채 시작)을 두루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분명 동양이나 서양이나 피차 문물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지식을 부분적으로나마 나눠 왔음에도 동양의 문화는 서양으로 건너가 꽃을 피웠고, 서양의 것은 흠씬 두들겨 맞고 나서야 수용하게 되었다는 저자의 설명은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나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큰 충격이었다.

분명 동북아 3개국이 모두 두들겨 맞은 뒤에 서양의 문명을 받아들였지만 그 시기와 수용 태도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일찍이 국경을 맞대 보기도 했고 또 가장 오랜 교역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은 아편전쟁을 통해 가장 먼저 두들겨 맞고 개항을 했음에도 변혁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한다. 오랜 관치주의와 풍부한 자원,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는 뿌리깊은 중화사상(한족의 문화를 자랑스러워 하며 타국의 것을 배척하는 사상[2])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가 아니었을까. 중국이 오늘날의 경제력을 갖게 된지 불과 20년이 채 되지 않았음을 떠올려 본다면 의식이 바뀌어 문화를 형성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기간이 필요한지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한편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이라는 결과만 알고 있던 것에서 중세 네덜란드와의 지속적인 교류(임진왜란 이후 1,600년 경부터 400년 간 지속)라는 중요한 힌트가 더해졌다. 그들의 ‘풍설서’를 통한 정세보고를 통해 유럽의 변화상을 해마다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유럽 국가의 세력이 점점 확장하며 동쪽으로 뻗어나가는 흐름과 성장세를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기에 문제를 아는 자만의 ‘위기 의식’을 앞서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당시에도 네덜란드를 통해 ‘난학’이란 이름으로 서양 학문이 전파되긴 했지만 이를 수용하는 사람은 극소수로, 그래도 이런 경험들이 있었기에 서구 세력의 위협에 가장 먼저 자신을 철저히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으로 삼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한편으로 오직 중국 바라기에 일본은 멸시하고, 유교를 통한 형식, 체면주의와 상공업을 경시하는 당시 조선의 풍조는 이러한 시류를 읽을만한 눈을 갖기 어려운 상태였다. 결국 서글프게도 세계사의 가장 역동적인 시기에 멀찌감치 뒤쳐져 열강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견고하게 짜인 폐쇄적인 봉건사회에 서양물이 살짝 스쳐 몇몇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한들… 서양에 대한 흥미와 관심은 수박 겉핧기 수준을 넘지 못했습니다…. 서양 문명의 거대한 총체, 과학적 방법론과 근대철학, 자연과학과 각종 공학, 시민혁명, 인본주의, 자본주의 등 서양인들 스스로 문명이라 일컫는 모든 것. 난학이라는 작은 구멍만으로는 도저히 그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는 다른 우주였습니다. pp. 222 – 223

필자에게 있어 늘 부러웠던 것은, 우리의 내면을 충실하게 다지는 저들의 진리 탐구를 향한 진중함이었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압축 성장을 일군 성공적인 나라다. 요즘은 쏙 들어갔지만 우리가 한창 높은 성장률을 구가할 때 유럽이 200년이라는 세월을 걸쳐 이룩한 것을 50년도 채 되지 않아 이루어낸 것에 대해 자족하는 모습을 자주 목도하곤 했었다. 하지만 세계사를 새롭게 쓴 산업혁명을 이끈 것은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단순한 기술력의 문제가 아닌 기술 발달에의 의지를 이끈 사상 체계의 발달, 즉 ‘주체성에 대한 확신’ 이었다. 세계적인 사상가들이 인생의 선배로서 교단에 서고, 이들의 사상이 사회적으로 진지하게 소비되어 깊이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며, 시민혁명을 통해 진정한 힘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몸소 경험하고 (물론 이 경험치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나라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결국 개개인이 무언가를 유의미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경험을 쌓아올린 것은 결코 단시일 내에 대체하기 힘든 내적 자원이다.

유럽의 채용시험 내용은 유교 경전의 인용구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간증이 아닌, 서구의 다양한 학문 은하계가 달성한 지적 성취였습니다. p. 114

결국 같은 방식을 사용하고도 전혀 다른 결과를 이끌어내도록 이끈 힘은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자각, 그리고 이를 있게 한 지식의 깊이에 있었음을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었고 이에 전적으로 공감이 갔다. 오늘날 우리는 외형적으로는 성숙한 듯 보이지만 스스로를 뒷받침하는 이론이 견고하지 않아 도무지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경우를 도처에서 마주하게 된다. 빈곤한 정신을 채우는 것은 환경의 변화를 통해서가 아닌 지식을 통한 내면의 변화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보다 진지하게 여기는 오늘날이 될 수 있기를, 그렇게 보다 깊이 있는 앎을 향한 도전들이 넘쳐나 이를 통해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한 내면의 쇄국적 태도를 극복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 이 책은 성장판 서평단 2기 활동으로 출판사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평의 내용은 전적으로 제 주관적인 감상임을 밝힙니다.

[1] 위키피디아, 산업혁명
[2] 위키피디아, 중화사상

* 썸네일 이미지 출처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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