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개월] 자녀의 자율적 동기부여를 위해 부모가 해야할 일

readelight

밥먹는 첫째

1. 밥 먹이기의 어려움

제법 오랫동안 우리 부부의 속을 썩여 온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아이가 식사 때 밥을 잘 먹지 않는다는 것. 아마 아이를 둔 부모라면 한 번쯤은 고민해 봤을 법한 일일 것이다. 어린이집에서는 남기는 것도 없이 그렇게 잘 먹는다고 칭찬이 자자한 아이가 집에서만큼은 뺀질거리면서 밥먹기를 거부하기 일쑤다. 이 때문에 아내는 식사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어르고 달래면서, 그래도 안되면 협박(?)까지 동원해 어떻게든 먹이려고 갖은 애를 쓰게 된다. 그렇게 집에서의 식사는 어떻게든 먹이려고 하는 엄마와 거부하는 아이와의 전쟁터가 된지 오래였다. 또래보다 작게 태어나기도, 또 여전히 작은 편에 속하는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다만 한 입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아이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니 도무지 입을 벌릴 재간이 없다.

이미 아이는 일상적인 대화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고, 밥을 왜 잘 먹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는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정하고, 그 때가 아니면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설명한 뒤 그대로 해보자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식사를 시작할 때만 먹자고 이야기하고, 따로 먹으라는 얘길 하지 않고 있다가 다른 가족이 식사를 모두 마치면 아이의 식사도 그대로 정리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동안 꼭 식사 시간이 아니어도 언제든 필요할 때 간식 등을 먹을 수 있어 식사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았으니 그 중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질서를 세우자는 의미였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로 동의해도 그것을 마음으로 참고 인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나마 아이의 식사 거부가 아주 심한 편은 아니다보니 규칙을 정할 필요성을 크게 못느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뒤따르는 식사는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다.

2. 삶의 동기를 깨닫게 하는 순수한 주관성

사실 따라다니면서 먹이는 것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다. 비록 집에서의 식사시간이라는 게 그다지 즐거운 경험이 되지 못한다는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라도 먹을 수만 있다면야…….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게 우리가 무심결에 잘못하는 방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아이를 설득시키기 위한 보상 (먹으면 맛있는 간식 줄게) 과 처벌 (밥 안먹으면 아무 것도 못 먹어) 의 태도였다. 그냥 말을 해서는 행동이 바뀌지 않으니 자연히 극적인 예를 들어 아이를 설득시키려고 하는 것 말이다.

사실 많은 경우 설득을 위해 상대방의 입장에서 좋은 제안을 제시하는 것은 협상의 기본이긴 하다. 하지만 그건 상대가 적어도 제안을 할만큼의 내적 동기가 이미 충분한 상태일 때만 시도되어야 하지 않을까? 상대가 보상 또는 처벌을 주든 안주든 그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태에 있다고 여겨질 때만 조심스럽게 제시될 수 있는 것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아이의 경우에는 끼니를 거르지 않고 잘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먹어야 할 이유가 딱히 없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의 협상 시도는 밥먹기를 졸지에 ‘보상의 획득’ 또는 ‘처벌의 회피’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또한 내키지 않아도 참고 먹어야 하는 의무마저 형성되는 문제가 생긴다. 외부의 시선에 종속된 삶을 지독하게 경험해 온 우리는 이미 이런 상황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바로 내가 무엇을 하고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일반화 된 고민이 이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주관적으로 내게 기쁨을 주는가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단계로 넘어가기도 전에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주입시키려 애쓰고 또 이를 불가피하게 수용한다. 성공을 위해 학교에 가기 전부터 조기교육에 목메는 현실과, 이를 따라가지 않으면 뒤쳐질 것이라고 하는 불안감이 한데 어우러져 거대한 종교적 관념마저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많은 경험과 기억들이 이런 방식으로 조직되었다면 결국 나를 순수하게 기쁘게 하는 것은 지극히 적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분명 내가 선택한 것인데 그것이 진실로 내 것이었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상황 말이다. 그런 가운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3. 주관성을 존중받은 한국의 사례들

사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게 된 계기는 힐링캠프에서의 이적의 인터뷰 때문이었다. 공감이 돼 보자마자 아내에게 공유해 주었는데 주된 내용은 이렇다. 이적을 포함한 삼형제가 모두 서울대를 나와 어머니의 교육 방법을 물었는데, 이적은 교육을 시키지 않으신게 교육 방법이었다고 하는 얼핏 이해되지 않는 답변을 내놓는다. 즉, 공부하라는 얘기를 전혀 하지 않으셨다는 것으로, 여기에 더해 공부하면 뭘 해줄거냐는 아이의 일반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공부는 너를 위한 것으로 잘되면 네가 좋은 것이기 때문에 보상을 해줄 이유가 없다고 선을 그으셨다고 한다. 지금 들어도 상당히 놀라운 어머니의 반응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이 관심있는 학문(여성학)을 배우기 위해 거실에 큰 책상을 놓고 공부를 하시니, 형제들도 자연스럽게 공부의 가치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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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캡쳐, SBS Entertainment, 힐링캠프 102회>

중요한 것은 서울대 자체가 아니라 앞으로 평생 해나가야 할 공부를 대하는 삶의 태도일텐데 공부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것은 비단 공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우를 영재발굴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1살의 수학 천재로 방송에 소개된 홍한주 군이 그 예인데 그 전까지는 그저 평범한 학생에 지나지 않았던 것에서 7개월만에 대학 수학을 풀어낼 수 있을만큼 가히 엄청난 성취를 거둔 것이었다. 아이의 어머니 또한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행복할 수 있다면 기꺼이 지지해주겠다는 태도로 기다려주고 경청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특히 교육과 관련한 정보들을 접하고 모으다 보면 아이에게 적용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아예 귀를 닫고 아이를 풀어주었다고 하니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쉬운 교육 방법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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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캡쳐, 스브스뉴스, 7개월 만에 대학 수학 끝낸 초딩 영재>

4. 아이의 기쁨을 빼앗는 스포일러가 되지 않길

동기부여에 관련된 이같은 사례는 일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다수의 심리학적 연구는 물질적 보상과 처벌의 동기부여 방식이 단기적 효과는 줄 수 있지만, 이를 지속시킬 이유를 빼앗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음을 지적한다. 앞서 본 예를 통해 알 수 있듯 아이가 꼭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일수록 역설적으로 그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아이의 의지를 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주고 기다려 주는 것, 아이와의 관계는 그렇게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디씨는… “돈이 어떤 행위에 대한 외적 보상으로 사용될 경우 사람들은 그 행위에 대한 내재적인 관심을 잃는다”라고 말했다.[1] 카페인을 섭취하면 몇 시간 잠을 쫓을 수 있는 것처럼 보상은 단기간의 촉진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결국 사그라지며, 심지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장기적인 동기마저 줄어든다…. 128회에 걸친 실험에서 보고된 보상의 효과를 세밀하게 고려한 후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보상이 내재 동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가족, 학교, 사업, 운동 팀 등 어떤 단체라도 단기간의 결과를 강조하고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기로 선택할 경우 장기적으로 상당한 해를 가져올 수 있다.”[2]
[1] Edward L. Deci, “Effects of Externally Mediated Rewards on Intrinsic Motiva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8 (1971): 114.
[2] Edward L. Deci, Richard M. Ryan, and Richard Koestner, “A Meta-Analytic Review of Experiments Examining the Effects of Extrinsic Rewards on Intrinsic Motivstion,” Psychological bulletin 125, no. 6 (1999): 659.
다니엘 핑크, 『드라이브』, pp. 14, 57 에서 재인용.

세계적인 미래학자로 잘 알려진 다니엘 핑크의 ‘동기(Drive)’에 대한 연구서에서는 지난 시대를 풍미했던 외재적 동기부여가 가장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여기서 다른 두 개의 욕구란 제 생물학적 욕구(동기 1.0)와 보상추구, 처벌회피형 욕구(동기 2.0, 여기에서 저자는 이러한 방식이 인간을 짐승처럼 생각하는 것이라는 충격적인 말까지 한다.)를 의미한다. 제 3의 드라이브(동기 3.0)는 보다 창조적으로 세계를 맞이할 세대들을 위해 중요하게 다뤄야 할 자율성, 몰입을 통한 숙련, 목적의식이다.

정신분석의 입장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정신, 신체적으로 두드러진 이상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의 내면세계를 분석해 그 원인과 해법을 밝혀낸 공로는 철저히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환자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려드는 것이 아닌, 설령 그의 믿음이 누가봐도 비현실적이고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기꺼이 존중함을 통해서만 환자는 서서히 현실감각을 되찾을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지난 라깡 탐구 글들은 모두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었다. 어머니와의 융합된 관계 속에서 아이가 발달시킬 수 있는 것은 주체를 탄생시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뿐이다. 증상이 드러내는 것은 주체의 진리, 즉 자율성을 획득하기 위한 간절함이 살아있음을 온 몸으로 증언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은유 작업을 통해 두 사람의 심리적 정서가 분리될 때에만 주체적 욕망의 첫 걸음은 비로소 뗄 수 있다. 이 때문에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종용하려는 그 요구 속에 자신의 욕망이 담겨있음을 깨닫는 것은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결국 부모인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자신의 욕망을 전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앞선 사례들처럼 아이가 스스로의 욕망을 찾아낼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자신의 욕망을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뿐이다. 물론 100%란 있을 수 없는 것이겠지만 아이를 이끌려고 하면 할수록 아이의 주체성이 약해질 수 있음을 늘 염두하고 선택권을 넘겨줘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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