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의 착각
기저귀를 떼고 2주일 동안 별 탈이 없어 기쁨의 글 ‘아이가 기저귀를 편안하게 뗄 수 있었던 이유‘ 를 남긴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글을 쓰자마자 마치 착각하지 말라는 듯 이후 열흘 동안 무려 다섯 번의 실수를 연발했다. 세면대에서 세수하다가 쉬 마렵다고 하기 무섭게 그대로 싸버리고, 키즈카페에서 오줌 마려운지도 모르고 놀다가, 장난감 통 위에서 놀다가, 오줌 싸러 가다가 등 마치 아빠 빵빠레를 너무 일찍 터뜨렸어요 하고 계속해서 상기시켜주는 것 같았다. 물론 그때마다 별 일 아닌 듯 너스레를 떨면서 바닥과 엉덩이를 닦아주곤 했지만 역시나 한 번에 되는 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5/10) 새벽, 방에 있는데 소리가 나 보니 아이가 눈을 비비며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아빠, 쉬 마여워요 (마려워요).”
잠들기 전에 물을 많이 마신 게 화근이었다. 사실 드디어 오늘은 이불에 지리겠구나 싶긴 했었다. 이제껏 그래 왔듯 설마 그 졸린 상태를 이기고 나와 소변을 볼 생각을 할 거라고는 감히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그렇게 비틀거리면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새삼 신기하고 대견했다. 사실 이불에 그냥 쌌어도 될 일이었다. 아이는 충분히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도 된다는 걸 (혼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 귀찮음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사실 다른 부모님들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해 주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아마 대부분은 우리 부부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잘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은 마찬가지로 어렵지 않게 기저귀 떼기를 달성하게 될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한 번쯤 아이의 생각에 조금 더 가까워져보고 싶었다. 아이가 아직은 자기 생각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기에 나의 경험 + 지식 + 상상력을 총동원해야 하겠지만,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것이 육아일기를 쓰는 이유다.)
과연 아이는 어떤 이유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는 것을 선택했을까? 앞선 글에서 아이의 ‘스스럼없음’을 이야기했었는데 그 부분이 중요한 힌트가 될 것 같았다. 스스럼이 없다는 것, 다른 말로 눈치 보지 않는다는 건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충분히 수용될 거라는, 즉 혼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자신의 행동이 엄마, 아빠를 얼마나 힘들게 할지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기에 마음껏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경험이 부족한 아이는 자신으로 인해 부모가 겪을 불편, 또는 고통을 알 수도, 또 알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는 것을 넘어 혼내게 된다면 아이는 그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엄마 아빠가 싫어하는 무언가 때문에 혼났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용변으로 더러워진 물건을 씻고, 치우고, 씻기고, 갈아입히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지를 아이가 대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른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이 같은 상황은 기분이 언짢을 수 밖에 없다. 그게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는데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지?라고 말이다. 아직 훨씬 더 민감하고 이해는 턱없이 부족한 아이의 입장이라면 그 감정은 이보다 더 증폭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는 특정 행위에 대해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대우를 받았을 때 나오는 반응을 잘 알고 있다. 납득할 수 없기에 더 이상 잘할 이유가 없게 되는 것 말이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갖지도 못할 정도로 크게 혼나 아이가 일종의 공포심마저 갖게 됐다면 그 행위와 연관된 모든 것은 두려움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앞선 책 라깡과 아동정신분석에서 봤던 각종 증상들을 일으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것이다. 섣불리 화를 내는 것이 본인 기분을 좀 더 빨리 풀리게 하고, 아이의 행동을 빠르게 교정시키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종국에는 이를 회복하기 위해 더 오랜 기간 더 큰 노력을 들여야만 하는 일이 되어 버린다. 화를 낸다는 건 내가 지금의 상황을 감당할 수 없다는, 내 능력이 여기 까지라는 일종의 자기 고백이다. 그렇게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이 나의 생각의 한계로 인해 조금씩 닫힐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늘 염두한다면,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마음을 다스리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아직까지 특별히 혼난 적이 없는 아이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고마움의 일종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아빠가 나를 혼내지도 않고 귀찮아하지도 않으면서 기꺼이 치워주었다고 하는 생각에서의 감사가 아닌, 쉬를 그냥 할까 하다가 ‘엄마 아빠가 싫어할 텐데’라는 생각을 했을 때 엄마 아빠의 짜증의 표정이 담긴 이미지가 아닌 어떤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이 스스로 조금 더 불편함을 감수하는 쪽으로 이끌었을 것이라는 차원에서 말이다. 그렇게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나도 잘해주고 싶은 것처럼, 아무쪼록 아이의 선택이 이러한 과정이었길 바라는 마음이다.
* 썸네일 이미지 출처 : Unsplash